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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뒤진 후 매일신보(每日申報) 1926년 2월 18일 자 기사
요지 : 사이토 총독에게 3만원을 갖다 바쳐라
이완용이 사망하자 가문에 쏠린 거센 비판 여론을 의식해, 가문의 대변자 역할을 하던 친일 기업인 한상룡(당시 한성은행 두취)을 총독부에 보내 기부 의사를 밝힘
기사내용 :
사회사업에 삼만 원(三萬 圓) 기부
고(故) 이완용 후작 가에서 고 후작의 유지에 의하여
고(故) 이완용 후작 가(家)에서는 16일 오전 11시에 한성은행 두취(頭取·은행장) 한상룡(韓相龍) 씨로 하여금 사이토(齋藤) 총독을 방문하고, 고 이완용의 유지(遺志·남긴 뜻)에 의하여 3만 원을 사회 사업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전하였다는데,
후작 가의 재산에 대하여는 1천만 원 이상이라고 세상에서 굉장히 떠들어대나, 그 집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모 씨의 말에 의할진대 이항구(李恒九·이완용의 차남) 남작의 재산을 합하여 약 100만 원 가량에 불과하다더라.
이완용의 사망 시점과 맞물려 가문의 막대한 재산 규모가 세간의 주목을 받자, 유족 측에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총독부를 통해 기부금을 전달하며 재산 규모가 생각보다 적다고 해명하는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사료.
요약 : 3만원 사이토 총독에게 상납하고, "내가 나라팔아 해 처먹은 것은 100만원 뿐이다." 라고 기사 내달라 유언
도대체 얼마나 해 처먹었을지 감도 안온다.
매일신보는 총독부 어용 신문이었기 때문에, 이완용 가문 측의 "실제 재산은 소문보다 훨씬 적다"는 해명성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
민족반역자, 매국노가 가문 자손들 걱정은 뒤질때까지 엄청 했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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