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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의 강 (8월 16일~8월 17일 가강수량) : 시간당 70mm 이상의 극한 폭우를 퍼부을 수 있는 수증기(짙은 붉은색)가 ‘대기의 강’을 형성해 한반도를 향해 띠 모양으로 밀려들고 있다. (출처: C3S)
시간당 최고 124.5mm의 폭우가 쏟아진 거제 시내를 급격히 불어난 물이 휩쓸고 있다. (8월 17일)
대기의 강 따라 밀려든 하늘의 급류‥이틀간 927mm 신기록
광복절 연휴였던 지난 일요일과 월요일 사이, 이틀 만에 거제에는 927.6mm의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거제의 연평균 강수량이 1930mm 정도니까 1년 내릴 비의 절반가량이 이틀 사이에 쏟아졌습니다.
이틀 동안 내린 비로는 기상 관측 이후 신기록입니다. 기존 신기록은 2002년 8월 30일~31일 사이에 강릉에 쏟아진 884.5mm입니다. 환경부 홍수통제소는 이 비를 확률상 500년에 한 번, 기상청은 200년에 한 번 발생할 수 있는 극단적인 폭우로 분석했습니다. 거제와 통영 일원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습니다.
이런 비가 쏟아지려면 두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폭우 강도가 극한 호우 수준으로 매우 강해야 하고 폭우 지속 시간이 길어야 합니다. 우선 폭우 강도가 강해진 핵심 원인 중 하나는 ‘대기의 강’을 따라 밀려든 막대한 수증기입니다.
서태평양과 중국 남부로부터 남해안까지 연결된 하늘의 급류가 상층 한기와 충돌하면서 극한 폭우가 발생했습니다. 폭염으로 뜨거워진 바다는 더 많은 수증기를 공급했습니다. 폭우 구름이 빨리 빠져나가지 못하고 남해안에 장시간 정체된 건 우리나라 동쪽에 버틴 고기압이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상청은 설명했습니다.

거제 강수량 편차 (mm): 8월 15일까지 거제에 내린 비는 예년보다 725mm가 부족했지만, 8월 16-17일 이틀간 쏟아진 비로 예년보다 218mm 많은 수준까지 급상승했다. (출처: 기상청)
기록적 가뭄에서 기록적 폭우로‥기후 급반전 강타
또 하나 놀라운 건 폭우가 쏟아지기 전과 후의 극명한 대비입니다. 7월 들어 비가 급격히 줄면서 거제의 강수량은 폭우 직전 예년 이맘때보다 725mm나 부족했고, 경남 지방의 가뭄도 빠르게 악화됐습니다. 그러나 8월 17일을 거치며 강수량은 그래프에서 깎아지른 절벽처럼 치솟았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예년 수준을 200mm 가량 웃돌고 있습니다. 이번 비로 '심각' 단계였던 6개 시군의 저수지 상황은 정상화됐거나 경계 또는 주의 단계로 낮아져 위기가 완화됐습니다. 반면, 비가 많이 오지 않은 정읍, 김제, 군위 등의 가뭄이 '심각' 단계로 악화됐습니다.

가뭄 단계(저수율 기준): 이번 폭우로 거제와 남해안 지방의 가뭄 '심각' 단계는 일단 해소됐다. 그러나 정읍 김제, 군위 등 전북과 경북 지역의 가뭄이 심각 단계로 악화됐다. (출처: 농업가뭄센터)
그래프에서 급경사를 그리며 떨어지던 강수량이 깎아지른 절벽처럼 솟아오른 저 구간이 중요합니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기후 전문가들은 '기후 급반전(whiplash)' 또는 '기후 급변'이라고 부릅니다. 기후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는 걸 말하는데, 이 경우에는 가뭄에서 폭우로 급반전했습니다.
올여름 거제에서 벌어진 상황은 기후 급반전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교과서처럼 보여줍니다. 만약 누군가 지금 시점에서 단순히 거제의 총 강수량만 본다면, "예년 수준을 다소 웃도는 수준으로 충분한 비가 왔군" 하고 생각해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총 강수량만 보면 정상으로 보이는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극심한 가뭄과 폭우라는 두 가지 재난이 연달아 닥치며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습니다. 바로 이 점이 기후 급반전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뭄에 대비해 저수지를 채워도 위험하고, 폭우에 대비해 저수지를 비워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로 기후 급반전 증가‥"증가 속도 더 빨라질 것"
기후변화로 지구의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세계적으로 기후 급반전 현상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기후 급반전 중에서도 가뭄에서 폭우로, 폭우에서 가뭄으로 반전되는 것을 '수문기후 급반전'이라고 합니다.
아래 그림은 지구의 기온이 오를수록 수문기후 급반전 현상이 얼마나 더 자주 나타나는지 계산한 그림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20세기 후반 이후(1975-2015년) 전 세계 육지의 수문기후 급반전은 이전(1940-1980년)보다 31% 증가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그림에서 또 하나 주의 깊게 봐야 할 점은 급반전 빈도가 선형으로 증가하지 않고 기온이 높아질수록 상승폭이 점점 더 커진다는 겁니다. 기후에서 어떤 현상이 비선형적으로 증가할 때는 어느 한 가지 기후 요소가 다른 기후 요소와 상호작용하며 폭발적으로 강화되는 되먹임(피드백) 현상이 작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폭염-가뭄 되먹임은 관련기사 참조)

기온이 상승하면 연평균 수문기후 급반전 빈도가 비선형적으로 급증하며 육지의 증가율이 바다보다 가파르다. 일 년에 0.1회는 10년에 한 번꼴이다. 한국, 시베리아, 캐나다 북부, 아시아 내륙 등 대부분 지역에서 급반전이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남아프리카 등 소수 지역만 빈도가 감소할 전망이다. (Swain et al., 2025)
기후 급반전은 지금까지도 빠르게 증가했지만, 앞으로는 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구의 기온이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구의 기온 상승이 억제되지 않고 산업화 이전보다 3도 가량 상승할 경우 기후 급반전은 이전보다 113%나 급증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기후 급반전 원인은? 대기가 더 많은 물을 흡수했다 일시에 쏟아부어
연구진은 기후 급반전이 급증하는 이유는 기온이 상승하면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엔 기후변화보고서는 기온이 1도 상승하면 대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가 7% 증가한다고 밝혔는데, 산업화 이전보다 기온이 1.5도 정도 상승한 지금은 10% 이상 증가했습니다.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을 수 있게 된 대기는 실제로 더 많은 수증기를 빨아들이려고 하는데 이 힘을 ‘증발 요구량’이라고 합니다. 대기가 수증기를 빨아들이는 힘이 증가함에 따라 세계의 토양과 식생이 더 빠르게 마르고 가뭄과 산불 위험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 세계 육지 면적의 75%에서 가뭄 확산 속도가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대기가 빨아들인 수증기가 증가했다는 건 대기가 일시에 짜낼 수 있는 물이 늘어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폭우 강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수준의 폭우보다 극단적인 폭우 강도가 더 빠르게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우리나라의 폭우 횟수 변화: 폭우 강도가 강한 구간에서 증가율이 더 커지는 현상이 확인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폭우 횟수를 보면, 시간당 10~40mm 사이의 폭우 횟수는 지난 50여 년간 22% 가량 늘었습니다. 그러나 40~70mm 구간에서는 2배, 70~100mm 구간에서는 3배나 늘었고, 시간당 100mm 이상의 극한 호우는 10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폭우가 강할수록 증가율이 더 커지는 추세가 뚜렷합니다.
평소에 더 많은 물을 빨아들였다가 한번에 더 많은 물을 토해내는 기후의 변화가 기후 급반전 증가의 근본적인 배경이며, 육지-대기-해양의 되먹임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한 가지 재난 대비로는 못 막아‥복합 재난에는 복합적 대응으로"
폭우와 가뭄이 동시에 강해지는 세상에서는 한 가지 재난에 대한 대비만으로는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다는 게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방재 전문가 정창삼 교수(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는 정부와 지자체가 다양한 재난 시나리오를 만들고, 미리 고민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지난해 강릉이 도시 전체의 수원을 '오봉저수지' 한 곳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가뭄 비상 사태를 맞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정 교수는 저수지와 하천, 지하수 등 수원을 다양화해 가뭄의 충격을 줄이는 동시에, 하천 준설, 제방 보수, 우수관로 개선, 지하 빗물 저장소 설치 등 다양한 폭우 대책도 서둘러 병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복합재난이 닥쳤을 때 시나리오별 대응 계획을 마련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는 매우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시나리오별 대책을 미리 고민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매우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김승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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