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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형 대통령제” 논의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권력의 분산’이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나누면 권력 남용을 줄이고 협치를 촉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권력분산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권력을 나누는 순간, 권한의 충돌과 책임의 분산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권력을 얼마나 나누느냐가 아니라, 권력을 나누면서도 국가가 결정하고 집행하며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이다.
현행 대한민국 대통령제의 장점부터 보자.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되고, 헌법상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따라서 행정부의 최종적인 정치적 책임자가 비교적 명확하다. 대통령이 국정을 잘못 운영하면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이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만큼 독주와 권력 남용의 위험도 존재한다. 그러나 ‘강한 권한과 명확한 책임’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대통령제의 중요한 장점이다.
반면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과 총리에게 정치적 권력을 나누는 구조를 상정한다. 대통령은 외교·국방·안보 등 국가적 영역을, 총리는 경제·복지·교육·행정 등 국내정책을 담당하는 식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에서 정당성을 얻고, 총리는 국회 다수파를 기반으로 정당성을 얻는다. 대통령과 총리의 소속 정당이 다를 경우에도 권력을 분산하여 협치를 제도화할 수 있다는 것이 대표적인 장점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권력분산의 장점은 주로 ‘독주를 막는다’, ‘견제를 강화한다’, ‘협치를 가능하게 한다’는 추상적인 표현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 제도는 추상적인 권력이 아니라 예산, 인사, 법률, 외교, 국방, 행정 집행이라는 구체적인 권한으로 작동한다. 특히 예산은 정부가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물질적 기반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다른 정당이고, 국회 다수당이 총리 측이라면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국방·외교 정책과 총리가 추진하려는 복지·경제 정책 사이에서 예산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견제’와 ‘마비’를 구분하는 일이다.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하거나 권한을 남용할 때 국회와 다른 기관이 이를 막는 것은 정상적인 견제다. 그러나 대통령과 총리가 단지 서로 다른 정당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의 정책과 예산을 차단할 수 있다면, 그것은 견제라기보다 상호 봉쇄에 가까워진다. 국가에는 결국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예산이 확정되지 않으면 정부 운영이 어려워지고, 외교·안보 정책 역시 누군가의 최종적인 판단을 필요로 한다.
이 문제는 삼권분립과도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삼권분립은 입법·행정·사법이라는 기능을 나누고 서로 견제하도록 하는 원리다. 반면 분권형 대통령제는 행정부 내부에서 대통령과 총리라는 두 정치적 권력 중심을 만드는 제도다. 두 사람의 권한은 외교·통상, 국방·방위산업, 경제·안보처럼 실제 정책에서 서로 겹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행정부 내부의 권력분산은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견제보다 훨씬 직접적인 충돌을 낳을 수 있다.

따라서 ‘견제를 많이 할수록 좋은 정치’라는 생각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견제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모든 기관이 서로의 결정을 막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목표는 아니다. 오히려 좋은 헌정질서는 권력을 분산하면서도 최종적인 결정권과 정치적 책임을 명확하게 연결해야 한다. 권한을 가진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하면 국민은 선거를 통해 누구를 심판해야 하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물론 이것이 현행 대통령제가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많은 인사권과 행정권이 집중되어 있다는 비판은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과 국회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문제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반드시 대통령과 총리에게 행정부의 권력을 다시 나누는 것일 필요는 없다.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인사권, 감사·수사기관에 대한 영향력, 행정통제 장치 등을 조정하는 방식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
결국 개헌의 기준은 ‘분권’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권한을 누구에게 얼마나 줄 것인지, 그 권한이 충돌할 때 누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인지, 그리고 결정이 실패했을 때 누가 국민에게 책임질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 특히 대통령과 총리의 소속 정당이 다를 경우 1년 동안 국가예산이 어떻게 편성되고, 국방·복지·외교·인사·법률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실제 상황으로 시뮬레이션해 보아야 한다.
권력 집중의 위험을 줄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권력분산의 비용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권력의 분산’이라는 말은 듣기에는 민주적이고 안전해 보이지만, 실제 헌법 설계에서는 그 뒤에 예산권, 인사권, 거부권, 최종결정권, 정치적 책임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 결국 좋은 헌법은 권력을 가장 많이 쪼개 놓은 헌법이 아니라, 권력 남용을 막으면서도 국가가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며 그 결과에 대해 누군가가 분명하게 책임지는 헌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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