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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쌍용 크론 (1983~2002) 설정
"동아자동차의 첫 승용차, 그리고 토요타의 야욕"
신진자동차와 토요타는 1960년대 중반부터 기술제휴 관계를 맺고 토요타의 퍼블리카, 코로나, 크라운 등을 한국에 도입했다. 그러나 1972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발표한 주은래 4원칙에 따라, 중국 진출을 목표로 했던 토요타는 당시 반공 진영에 속하던 대한민국의 신진자동차와 예고 없이 계약을 해지하고 대륙으로 철수한다.
주은래 4원칙:
- 대한민국, 타이완과 거래하는 메이커, 무역회사와는 거래하지 않는다.
- 대한민국, 타이완에 투자하고 있는 회사와는 거래하지 않는다.
- 월남전쟁 때 미군에 무기를 지원한 회사와는 거래하지 않는다.
- 미국 기업의 일본법인 혹은 일본 소재 자회사와는 거래하지 않는다.
이후 승용차 부문은 GM과의 제휴로 새한자동차(훗날의 대우자동차)로 분리되어 나가고, 버스 생산 협력 관계였던 하동환자동차공업(훗날 동아자동차, 쌍용자동차)과 지프를 생산하던 신진지프자동차로 나뉘어 각자의 갈 길을 가게 된다. 토요타가 떠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중일수교가 이루어져 주은래 4원칙이 폐지되었지만, 기술제휴는 이미 늦은 뒤였다.
토요타는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뒤에도 한국 고유모델 소형차인 현대 포니, 기아 브리사, 그리고 새한자동차의 고급 세단 레코드(오펠 차량 기반)가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는 것을 보고 군침을 흘리게 된다.
아직 시장이 크지는 않았지만,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야욕이었다.
토요타는 곧바로 새로운 기술제휴 숙주(...)가 되어줄 회사를 찾게 된다.
마침 상용차 부문에서는 닛산디젤, 미쓰비시후소, 후지중공업 등과 제휴 중이지만, 승용차 부문에서 기술제휴사가 없고 승용차 시장 진출을 열망하던 '동아자동차'가 토요타의 눈에 띄게 된다.
협상이 신속히 진행되어 1980년 새해 부로 정국의 혼란 속에서 동아자동차와 토요타의 기술제휴가 성사된다. 음흉한 토요타는 당시 일본에서조차 출시를 앞둔 최신 모델이던 GX50 세단 바디(마크 ll, 체이서, 크레스타)의 설계도 복사본을 동아자동차에게 선뜻 넘겨주고, 동아자동차는 이를 의심없이 환영하며 받아들였다.
(개발 도중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인해 회사가 특장차 '만' 담당으로 지정되면서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으나, 이듬해 제한이 풀려 개발이 재개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제1세대: 동아 크론 (1983~1988)

1983년 7월, 약 2년 10개월의 개발 끝에 동아자동차의 첫 중형 라인업 '크론'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기본적으로 같은 바디를 사용하되 경제형, 중급형, 고급형으로 라인업을 세분화하는 대우자동차 식의 마케팅 전략을 짰다. 파워트레인은 직렬 4기통 1.5L, 1.9L, 2.0L 가솔린 엔진과 4단 수동(1.5L), 5단 수동 변속기가 탑재되었으며, 3단 자동변속기는 2.0 모델에서만 선택 가능했다.
라인업은 크론 1500, 크론 1900 이코노미, 크론 1900, 크론 2000의 4가지로 구성되었다.
가장 큰 특징은 국내 시판 차량 중 유일하게 도어 창틀이 없는 프레임리스 도어가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동아자동차는 이를 적극적인 셀링 포인트로 어필했으며, 중무장을 한 동아 크론은 출시되자마자 사람들의 관심을 한눈에 받게 된다. 토요타의 음흉한 속내를 모른 채 동아자동차의 매출도 함께 상승했다.
1984년, 동아자동차는 거화(신진지프)를 인수하여 본격적으로 4WD 차량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토요타와의 협력 관계와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동환 회장은 창업 이래 '무차입 경영'을 선호해왔으나, 현대 및 대우자동차의 막대한 자금력에 대응하기 위해 외부 자금을 유치해야 하는 상황에 부담을 느꼈다. 또한, 5공 정권의 압력으로 코란도 훼미리의 출시가 불허되면서 막대한 자금이 묶여 자금난에 시달리게 된다.
이 혼란 속에서 1986년 4월, 크론의 첫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졌다.
디자인적 변경으로 '세이프티 팩'을 적용할 경우 범퍼가 기존의 얇은 형태에서 두꺼운 일체형 5마일 범퍼로 변경되었으며, 큰 디자인 변화는 없었다.
실내에서는 원가절감이 이루어지고 스티어링 휠의 형태가 기존 토요타 체이서와 동일한 핸들에서 코란도 지프와 공유하는 스티어링 휠로 변경되었다. 이때 1.6L, 2.0L LPG 중형택시 트림이 추가되었다.

결국 하동환 회장은 동아자동차 매각을 결심했고, 토요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86년 11월 지분을 쌍용정유에 넘기면서 자동차 산업에서 손을 뗀다.
제2세대: 쌍용 크론과 기술 파트너 교체 (1988~2002)

1988년부로 동아자동차는 쌍용자동차로 사명을 변경하였고, 코란도 훼미리도 무사히 출시되어 인기를 끌게 되면서 경영이 안정권에 진입했다. 토요타는 한국 시장 재진입을 노리려 했으나, 유럽 자동차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던 쌍용 김석원 회장은 토요타와의 기술제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결국 김석원 회장의 결정으로 닛산디젤, 후지중공업 및 토요타와의 신규 기술제휴가 모두 중단되면서 토요타의 한국 야욕은 실패로 돌아갔다.
1990년 8월 대규모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전면 그릴이 일부 변경되고 후면부가 크게 변경되었으며, 실내 대시보드도 유선형으로 바뀌었다.

1990년 11월에는 이스즈 라이센스의 Z형 가솔린 엔진을 개량한 최상위 트림 크론 3.0 오메가가 출시되었으며 디지털 계기판이 기본 적용되었다. 기존에 출력 부족으로 말이 많던 1.5L 모델은 삭제되었다.

1992년 쌍용과 벤츠의 기술제휴가 성사되면서 크론의 심장은 벤츠 엔진으로 교체된다. 1993년 11월 1.9L 모델이 단종되고 배기량 2.3L의 벤츠 라이센스 M161 엔진이 탑재된 '크론 S' 트림이 출시되었다. 2.0 트림의 엔진 역시 벤츠 라이센스 엔진으로 변경되었으며, 스티어링 휠은 무쏘의 것으로 바뀌었다.
1996년 11월, 체어맨 개발 과정의 전초전으로 크론 오메가의 3.0L 엔진을 3.2L 벤츠-쌍용 M162 엔진으로 변경한 크론 3.2 오메가 모델이 출시되었다.

1997년 10월 체어맨 출시와 함께 2.3S, 3.2 오메가 모델이 단종되었으며, 라인업은 2.0 가솔린과 2.0 LPG 택시로 재편되었다. 전면부를 약간 뭉툭하고 정제된 디자인으로 변경하고 체어맨과 비슷한 대시보드를 적용한 마지막 페이스리프트가 출시되었다.
단종
1998년 12월부로 쌍용자동차가 대우자동차에 인수되면서 대우 브로엄, 레간자와의 수요 중복으로 1999년부터 생산이 잠깐 중단되었다. 생산라인 매각 예정이었으나 협상이 지연되어 2000년 대우에서 분리된 후 단산이 취소되고 생산이 재개되었다.

재출시된 2000년에 마지막 부분변경으로 호박색 방향지시등이 적용되는 소소한 변화가 있었다. 기존에 선택사양이던 에어백이 기본사양이 되고 체어맨의 스티어링 휠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배기가스 총량제와 안전 규제 강화로 인해 후속 모델 없이 2003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최종 단종되었다. 크론의 수요는 타사 중형 세단들과 윗급인 체어맨으로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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