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봉

작금의 상황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입력 2026-07-27 0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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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보다가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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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저때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혼자 횡단보도 건너던 정청래 의원을 기억합니다.

기자나 보좌관 없이 혼자 길을 건너는데, 저는 너무도 급작스러워 ‘어, 어, 어??’하다가 가던 길 가게 되었더랬죠.

그래서 저번 당대표 선거 때 드디어 당대포가 당대표 할 때가 왔구나! 하고 한 표 드렸습니다만,

대통령과의 연이은 엇박자와 불협화음으로 인하여 아주 실망스럽습니다.

저도 87년 생으로서,

MB 찍었습니다. 그때 청계천 복개와 버스 중앙차로를 보고도 누가 MB를 안찍습니까?

그것이 앞전부터 준비된 것이라 해도, 아시잖아요 막타치면 먹는거

제가 고딩때 유행하던게 2가지 있었읍니다.

하나는 이때 드라군이 출동한다면 어떨까? 드! 라! 군!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였습니다.

대학 논술을 조선일보 사설 보고 할 때였습니다.

초딩때부터 NIE 하면 당연히 조선일보로 공부했습니다.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암튼, 가카의 첫번째 공적은 어디 뭐 가로수를

'불도저'처럼 밀어버리셨던 것이었습니다.

지금 바라보자면 기껏 한다는 것이 십장마냥 밀어버리는 것인가 싶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역시 시원시원 하구나! 였던 것이었습니다.

스무살이었던 저는 25살, 제가 취준무렵이면 경제 대통령으로서 제게 좋은 취업 시장을 열어주리란 기대로 투표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광우병 사태, 명박산성을 지나

저는 교환학생으로 듕귁에 다녀오게 됩니다

그때 뭐가 있었죠, 나꼼수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외국 생활해보신 분들은 알겁니다.

한정된 인터넷 환경에,

다음, 네이버 뉴스 기사 다 읽고,

한국의 길거리를 뛰어다니던 무한도전 너무도 소중했습니다.

그러다가 나꼼수가 나옵니다.

충격이었죠,

제가 뽑은 대통령인데...

그리고 항상 조선일보 등으로, 무언가 한겨레 경향은 거부감이 들던 충청도의 범생이 출신 청년은

그 기사 몇 줄 뒤의 비하인드를 태어나서 처음 듣게 됩니다. 군대 다녀와서의 이야기입니다. 24살이었나, 25살이었나

나꼼수부터 시작하여 딴지일보의 그것은 알기 싫다, 하이피델리티, 그리고 부끄럽지만 마사오의 아부나이 니혼고까지

(덕분에 이꾸의 반댓말은 쿠루라는 것과, 나카다시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챙겨 듣게 되고,

귀국하여 잡은 자취방의 윗집이 주인 노부부가 사셨는데 아저씨가 코를 방이 울리도록 골아서

그때부터 팟캐스트를 챙겨듣게 됩니다.

지금까지도 무언가를 듣지 않으면 잠을 잘 못잡니다.

그렇게 시작한 팟캐 생활이

xsfm, 이이제이 등으로 옳기면서 피가 끓게 됩니다

중간에 정치 신세계도 들었어요

권순욱의 샤우팅이 시원하다 느끼던 문꿀오소리었는데

듣다 보니 뭔가 이상하더라구요

유재일도 듣다가 손절했습니다.

듣던 중에,

아는 형님이 한국 들어오셨을 때 유재일을 만났다길래

그 양반도 뭔가 있는가보다 했는데,

결국은....

그러다가 국민 tv였던가요

목사아들돼지 김용민의 분장쇼도 재밌게 보고

매불쇼도 처음 시작하게 되고… 이뿐이꽃분이…

루저로서 최욱님께 메시지도 보냈는데

제가 남자라서인가 감사합니다 라고만 하시던…

경춘선폐선부지님은 뭐하고 계실지…

sbs에서도 팟캐스트 잠깐 발담궜을 때

김용민의 뉴스굥장이었나요

암튼 거기서 처음 끝년이가 나왔더랬죠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연합뉴스 틀어서 거기에 박가영 아나운서가 나올라치면

저거 끝년인데 ㅋㅋㅋㅋ 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저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출근준비하며 듣고 싶어서

직장생활 중 부모님 집에서 독립하여 자취방을 잡았고

ㄹ혜 탄핵 때에는 광화문도 상경하여 나가고,

차에는 KFC 이미지도 붙이고 다녔더랬습니다.

그리고 문대통령이 취임하고 김정은이랑 만나던 해,

2018년 저희 부모님은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차를 사셨고

그 차는 제가 지금 물려 받아서 잘 타고 있습니다.

코로나를 겪고,

내게는 이런 친구가 있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영상을 곱씹어보며 수없이 눈물 흘리고

이녀석아 뒤로 빠져라, 바위로 계란치기다!

하던 연설이 지금도 귀에 선합니다.

양산에서 잠깐 일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봉하마을도 가고

담배는 29살부터 끊었는데, 이후로 처음 담배도 사서 괜히 막혀있는

부엉이바위 가는 길 철조망에 꽂아 놨더랬습니다.

아, 문재인-안희정-이재명-최성 경선 붙었던 18대 대선의 이야기... 저는 그때 문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권리당원이 되었습니다. 안희정의 충청 대망론은 ㅈ끝 때문에 날아가고...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 경기도지사의 행정력은 익히 들어 알았습니다만, '손가혁'은 그 의도는 알겠으나, 단어 자체에서부터 혐오감이 들더군요.

때문에 문대통령이 검찰을 박살낼 줄 알았습니다.

문재인의 '인'이 자축인묘의 인, 호랑이 인이라기에 괜히 더 기대 했지만

결국은 서생 출신인 조국 장관은 두 달도 못가서 처참히 깨집니다.

그리고 굥이 정권을 잡고,

2월 출산 예정이었던 만삭 아내와 잠을 자려던 차,

12월 3일 내란을 라이브로 봅니다.

잠이 안오죠

아기가 태어나야 하는데

마치 박정희 장기 독재 시절 태어난 아기처럼

우리 아기도 그러한 암흑기에 자라게 되는 것인가

영화 변호인의 임시완처럼 잡혀가게 되는 것인가

다행히 계엄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당시 이재명 대표가 라이브를 하여 시민들의 힘을 모은 것이 크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는 민주당을 지지하고 그 대통령을 응원합니다.

헌데, 문대통령 때에는 고민정부터 해서 대통령의 행보들을 거의 종교급으로 찬양했던 것 같은데...

고민정 대변인의 인터뷰들은 항상 뭔가 간증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고민정 아나운서는 남편이 시인이시죠. 제가 한 때 문학 소년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가족관계는 제게 괜히 호감으로 다가옵니다.

아나운서임에도 가 수수한 느낌의 고민정 아나운서의 이미지도 정말 좋았구요..

쨋든,

정청래 의원도 그간 얼마나 많은 활약을 했습니까. 저는 저번 당대표 선거에서는 당연히 정청래 의원이 되는 판이었다고 봅니다.

허나, 윤석렬이도 나갔다 오면 ㅅㅂ 바이든이 날리면 해도 지지율이 올라가는 해외순방을 다녀왔는데도 당에서는 다른 노이즈로 덮어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검경수사권 조정까지....

뭐, 서로 다른 소리를 낼 수는 있습니다만,

작금의 서로 물어 뜯는 상황은 너무도 아쉽네요.

한선교-정은아의 좋은아침의

한선교도 정치판에 오더니 얼굴이 바뀌고

안철수도 얼굴이 많이 바뀌었죠. 표독스러운 느낌이랄까요

뭐, 노선, 주장 뭐 그런건 복잡해서 차치하더라고

그간 위와 같은 예시들을 보았을 때,

유작가님의 최근 행보는 너무도 안타깝고 마음 아프고 그렇습니다...

정말 팬이었는데,

제가 처음 이북리더기 사서 다운 받아 봤던 것이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였는데...

저희 아버지는 썰전의 유시민 때문에 정의당에 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비례대표)

이토 메인에도 같은 진영 스피커들에 대한 비난조의 게시물이 많이 보여서

일요일 저녁 마무리로 막걸리 한 잔 하다가 적어봅니다.

안타깝다는 말 한마디 하기 위해,

저는 님들이 얘기하는 그런 뉴재명이고 뭐고 그런거 아니고

그냥 평범한 지지자고 시민임을 너무도 길게 적어야만 하네요

안타깝습니다.

어서 서로 헐뜯는 이 국면이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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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7 01: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