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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정치의 표본] 민철아 좀 배워라

입력 2026-07-19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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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집념으로 일궈낸 40만원의 기적
2008. 8. 9. 10:14
[머니투데이 배성민기자]

[양태회 비유와 상징 대표, 정청래 전 국회의원]

16년 전 20대 후반의 청년 두명이 40만원을 들고 사업을 시작했다. 한 친구는 학생 운동으로 취업이 어려웠고 대학 입학 뒤부터 야학에 뛰어들어 배우는 것보다 가르치는 일에 더 익숙했던 또 다른 친구는 회사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재수학원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면서 첫 사업으로 학원을 내기로 의기 투합했다.
16년 뒤인 2008년 그들의 여름은 특별하다. 모두 학원을 떠나 다른 곳에서 자리를 잡은 상태지만 그때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 동안 많은 일이 생겼다. 한명은 세상을 바꾸리라 다짐하던 386초선 의원을 거쳐 전 의원이 됐고 다른 친구는 2000억원대 회사의 CEO가 됐다. 25년 지기 정청래 전 의원과 교육업체 비유와상징 양태회 대표의 얘기다.

20대 청년들의 꿈...제대로 가르쳐 보자
1992년 그들이 낸 학원은 서울 마포의 길잡이학원이었다. 어렵사리 긁어모은 돈 40만원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에게 빌린 돈 100만원 가량이 종잣돈이 됐다. 사범대학을 나오지 않아 전문지식은 많지 않았지만 쉽게 공부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다. 대입학원에서 재수를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고 취업이 쉽지 않다는 절박함도 성심성의껏 가르치는데 열중하게 했다.
공대 출신이지만 정 전 의원은 영어를 맡았고 문학도였던 양 대표는 국어를 맡았다. 통계학을 전공한 또 다른 친구는 수학을 담당하기로 했다. 각자 강사 겸 원장이었지만 분필과 함께 칠판지우개, 때로는 걸레와 망치까지 잡아야 할 정도로 1인 다역을 해야 했다.
마포는 학생들이 몰리는 학원가의 중심지는 아니었지만 젊은 학원강사들의 열정과 수업준비는 차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쉽게 가르치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교재에도 신경을 쓰게 됐다. 다른 교재를 베끼며 가위와 풀로만 쉽게 만들던 교재에서 탈피하기로 마음먹었다.

인기 국어 강사가 된 양 대표는 이 과정에서 가르치는 일 외에 새로운 분야를 발견했다. 자신이 만든 교재를 다른 학원에도 팔면 좋을 것 같다는데 생각이 미친 것. 보통 유명 강사는 좋은 교재로 자기 강좌에 수강생이 몰리도록 할 텐데 그는 새로운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다.
빌린 돈 100만원으로 교재 200권을 찍었다. 반응이 나쁘지 않자 500권, 1000권으로 양을 늘려봤고 노량진과 강남의 학원가에서 교재를 팔았다. 1만1000만원짜리 학원 강좌용 국어교재는 수천권이 팔렸고 5000만원 이라는 몫돈이 들어왔다. 수강생 몇백명, 몇천명을 끌어 모으면 될텐데 라고도 생각할 수 있었지만 학원선생 양태회가 출판 사업가로 변신하는 꿈을 꾸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청운의 30대, 변신을 꿈꾸고 일궈내다
수강생과 부대끼고 좋은 교재를 내기 위해 머리를 싸맨 끝에 학원을 낸지 몇년 만에 양 대표는 인기강사 겸 알짜 학원 운영자가 됐다. 하지만 좋은 강의만큼 알찬 교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과감히 교재출판업에 뛰어들었다. 상장사로 성장한 비유와상징이 설립된 것도 이 무렵이다.
교육사업에 본격 진출한 1998년 중등국어 '한권으로 끝내기'를 발간한 지 1년 만에 전국 국어학습서시장을 석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변변한 학원용 교재가 전무하던 1990년대 초ㆍ중반부터 '한권으로 끝내기 국어'의 돌풍으로 학원교재시장을 개척했고 새로운 기획과 개발로 매 학기 교재를 새롭게 만들어 제공함으로써 표지만 바꾸던 기존의 출판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 주효했다고 그는 자부했다.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반품, 재고는 모두 폐기하고 새로움으로 승부했고 채택비와 접대로 상징되는 기존의 유통 관행도 거부했다.
두꺼운 책을 사면 별도로 돈을 들여 책을 분책하는 학생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연구작업을 진행해 특허도 냈다. 번호와 정답만 나열하는 평범한 해답지의 양식도 바꿨다. 양 대표는 비유와상징의 교재들은 본 책보다 두꺼운 해답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해답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답을 아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의 실천으로 다채로운 시각 자료도 덧붙였다.

양 대표가 출판 사업에 뛰어들 때 학원과 지역사회를 지키던 정청래 전 의원도 30대 후반에 새로운 길을 찾았다. 1980년대 말 대선 부정선거 규탄시위와 통일.학생운동 등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그는 1990년대 초 학원을 내며 생활인이 됐다.
그러던 그는 2001년부터 통일운동에 본격 참여(2001년 민족통일대축전 청년대표 등)했고 2002년에는 인터넷 정당(정정당당)에 실무자로 참여하며 정치권으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출범 시에는 386세대의 일원으로 참여하며 일정부분 역할을 했다. 2004년 그는 탄핵 후폭풍 속에 열린우리당 공천으로 마포지역(마포을)에서 국회의원이 됐다.

25년 지기의 40대..2008년 새로운 여름은
학원교재 이후로도 자율학습서(완벽한 자율학습서), 오투과학 등 초ㆍ중ㆍ고등 자율학습서 등으로 양태회 대표의 비유와상징은 2000년대 들어 수위권 교육ㆍ출판업체로 성장했다.
수박씨닷컴 등 온라인교육 사이트도 열었고 교육평가업체 진학에듀도 인수했다. 올해 초에는 회사가 준비한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는 성과도 일궈냈다. 또 설립 10년 만에 비유와상징은 상장업체가 됐다. 40만원으로 학원사업을 시작한 양 대표는 2300억~2500억원대의 가치를 지닌 상장사 CEO가 된 것이다.
하지만 초여름인데도 뜨거웠던 지난 6월에 진행됐던 상장은 무더위만큼이나 회사를 힘들게 했다. 상장을 위한 청약에서는 미달(0.67대1)이라는 최악의 결과가 나왔고 상장 첫날에는 하한가로 추락하는 수모를 맛봤다.
양 대표는 "상장 과정의 어려움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갸 됐다"며 "돈이 좀 들더라도 교육연구소와 다양한 학원사업 등을 통해 사교육업체도 교육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받던 초선 국회의원 정청래는 4월 총선에서 낙선하며 전 의원이 됐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지난 5~6월 의원 시절보다 더 바쁜 일정을 보냈다. 촛불집회에 왕성하게 참여했고 17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간사 경력을 십분 활용하며 KBS, MBC, YTN 등 언론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활동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1984년 대입학원에서 처음 만났던 양태회와 정청래는 뜨거운 열정의 대학시절을 거쳐 20대와 30대를 생활인으로 가장 바쁘게 보냈다. 25년 지기로 40대 중반 장년이 된 그들의 2008년 여름은 여전히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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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학원을 동업으로 창업했는데 대성했음

정치를 시작하면서 학원은 후배들한테 물려줬다고 함

목표를 갖고 열심히 노력한 청년 정치의 표본임

정청래 지역구 마포을에는 젊은 청년 정치인들이 많음

imf때 학부모들이 원장실로 찾아와서 어려움을 호소하면

반액차감 전액차감이 적혀있는 용지를 주고

보여주지 말고 선택해서 체크하고 납부하라고 했는데

전액할인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반액할인 이었다고 함

계산을 해보면 한달에 몇천만원이 마이너스지만

학부모들 사이에 입소문이 타서 수강생이 늘어나

오히려 매출이 올랐다고 함

지금도 타지역에 가면 학원생이나 학부모들이

미리 나와서 기다리기도 하고 만나면 다들 반가워하심

이런 사람이 무슨 자기 정치를 하고 사심 공천을 하겠음

민철이는 남 헐뜯고 징징거리는거 말고 뭘 해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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