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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보신분 많으실거 같은데....
박영심 할머니의 증언 일부
그들은 박영심을 우타마루(歌丸)라고 부르며, 19호실 방문에 우타마루라는 이름과 번호를 붙여놨다.
해가 뜨면 일본군들이 몰려왔다.아침으로 쌀밥 한공기와 몇 조각의 무우 절임을 먹고 나면 지옥 같은 시간이 시작됐다.하루 평균30여명이 왔고 조금이라도 저항을 하면 일본군은 그녀를 다락방으로 끌고 가 발가벗긴 뒤 매질을 하곤 했다.
일본군들은 보급 받은‘돌격1번’(콘돔)을 들고 왔다.또한 그들은 위안부들을 강간하고 폭행하는 것을‘정벌’이라 표현했다. 2010년 공개된 일본 육군 제6사단 소속의 무토 아키이치 분대장의1938년 일기에도‘오늘은 즐거운 나들이다.이시카와와 둘이서 먼저 조선 정벌에 나섰다.순서는 네 번째였다.도미꼬,경상남도’라고 씌어 있다.
“일본군은 하나와 같이 포악무도한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어느 날 나는 너무 고통스러워 한 장교 놈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그러자 그 놈은 나를 주먹으로 때리고 구두발로 차다 못해 긴 칼을 뽑아 나의 목에 대고 당장 죽일 것처럼 위협하고는‘황군’의 맛이 어떤가 보라고 하면서 자기의 수욕을 채웠다.”
어느 날은 일본군이‘요구대로 따르지 않는다’며 박영심의 배를 칼로 쑤셨다.배의 정 가운데5센티미터에 이르는 자상을 입었고 피가 쏟아졌다.중국인 병원으로 실려가 응급처치를 받고 나서야 살아났다.
일본군들은 위안부들이 임신을 하면 자궁까지 도려냈다.그리고 다시 위안부로‘사용’했다.위안부로 쓰던 소녀들이 병에 걸리거나 영양실조에 걸리면 어디론가 실어갔는데,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그도 아니면 가차 없이 강물에 처넣어 죽이기도 했다.
당해 죽은 경우는 생존자들의 증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그러나 박 할머니의 증언에선 더 끔찍한 사실도 드러난다.
“어느 날‘너희들이 식사도 변변히 못하고 있으니 오늘은 고깃국을 대접하겠다’면서 고깃국을 주었다.. (중략)..놈들은 그 고깃국이‘조선처녀의 고기로 만든 국’이라며 껄껄 웃어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쓰기 시작하면 욕밖에 쓸게 없을거 같아서 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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