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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최고의 독립운동가(?) 무타구치 렌야
1944년.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일본군 수뇌부는 전세를 뒤집을 비장의 카드로 인도 침공을 계획한다.
그리고 그 작전의 총책임자로 선택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일본 육군 중장 무타구치 렌야.
훗날 한국 인터넷에서 "어둠의 독립군", "일본군 최고의 독립운동가", "연합군 명예 원수" 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전설의 인물이다.
작전회의
참모들
"장군님, 보급이 부족합니다."
"장군님, 식량이 없습니다."
"장군님, 정글입니다."
"장군님, 우기입니다."
"장군님, 산악지형입니다."
"장군님, 적이 더 강합니다."
무타구치
"출발."
참모들
"네?"
무타구치
"적 보급품을 빼앗으면 된다."
참모들
"못 빼앗으면요?"
무타구치
"왜 못 빼앗지?"
이렇게 시작된 것이 역사상 최악의 작전 중 하나로 꼽히는 임팔 작전이다.
전설의 현지조달
일본군 8만 5천 명이 정글을 가로질러 인도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먹을 게 없었다.
일본군
"장군님,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무타구치
"현지조달."
일본군
"현지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타구치
"적 보급창고를 점령하면 된다."
일본군
"점령을 못했습니다."
무타구치
"정신력이 부족하다."
일본군
"말라리아입니다."
무타구치
"정신력."
일본군
"이질입니다."
무타구치
"정신력."
일본군
"굶고 있습니다."
무타구치
"대일본제국 만세."

연합군도 이해 못한 작전
영국군은 싸우면서도 이상함을 느꼈다.
"아니 저 사람들은 왜 보급도 없이 공격해 오는 거지?"
"왜 퇴각도 안 하지?"
"왜 계속 굶으면서 돌격하지?"
사실 일본군도 궁금했다.
결과
전투보다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은 병사가 더 많았다.
약 8만 5천 명이 투입되었고, 5만 명 이상이 전사·실종·부상·병사했다.
일본 육군 역사상 손꼽히는 대참사.
버마 전선은 사실상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다.
무타구치 렌야
"일본군 5만 명 이상 증발"
그래서 붙은 별명.
어둠의 독립군
일본군 최고의 독립운동가
대한독립유공자 1급 후보
연합군 최고 전략가
일본 제국 붕괴의 숨은 공신
[각종 어록]
"임팔은 문제 없다. 3주일이면 충분히 뺏을 수 있지. 그러나 그 다음의 문제가 있단 말이야. 임팔 정도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 자동차, 전차, 대포 따위는 적의 것을 빼앗아가지고 우선 브라마푸트라 강으로 나간다. 여기가 브라마푸트라 강이야. 여기서 캘커타로부터 뻗어나오는 벵골 철도와 아삼 철도를 차지한다. 제대로 들어맞으면 레도도 탈취한다. 아니... 델리의 붉은 성벽까지 진격하지. 어때, 핫하하."
- 임팔 작전 개시 직전의 무타구치 렌야
"포탄은 자동차 대신 소나 말에 싣고 가다가 포탄을 다 쓰면 필요 없어진 소나 말을 먹으면 될 거 아닌가? 이름하여 징기스칸 전략! 소나 말을 이용해 음식으로 쓰면 되지!"
- 보급을 어떻게 하는지의 물음에 대한 대답
"일본인은 원래부터 초식동물이다. 이렇게나 푸른 산에 둘러싸여 있으니, 식량이 부족하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 식량이 너무 부족하다고 우려하는 장교에게
"작전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는 것은 정신력이 부족한 탓이다."
- 탄약과 식량이 다 떨어져 퇴각을 요청하는 장군에게 보낸 전보
"어허!! 자랑스러운 제국 육군 병사가 이 꼴이 뭐냐!? 지금 이걸 보고도 천황 폐하의 자랑스런 제국 육군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건 영혼이 아니라 영혼의 껍데기라고 하는 것이다!!"
- 병에 걸려 쓰러진 병사에게
"뭐라?! 네 이놈!! 그런 것은 질병도 아니다!! 네놈 같은 약해빠진 정신력을 가진 놈이 대대장으로 있으니 이 모양 이 꼴이 나는 것이다!! 이 또라이 새끼야!!!"
- 말라리아로 인해 부대가 씹창났다고 하는 장교에게
"탄환이 없다면 총검이 있잖은가. 총검이 없다면 맨손으로 싸우는 거다. 맨손도 없다면 발로 걷어차라. 발도 없다면 입으로 물어뜯어라. 일본 남자에게는 야마토 정신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일본은 신의 나라다. 신들께서 지켜주신다."
- 탄환이 떨어졌다는 보고를 받은 후
"임팔에서의 패배는 나의 잘못이 아니라 부하들이 잘못 싸운 것이다."
- 임팔 전투의 유족에게 돌린 유인물
"저는 작전이 실패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상부에 부끄러워 보고를 할 수 없었기에 작전을 그대로 진행하며 퇴각명령이 하달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후 일본군의 여러 장성들이 전범재판을 통해 사형 등에 처해졌으나, 이 인간은 임팔 작전에서 일본군에 다대한 피해를 끼치는 등 연합군의 승리에 크게 공헌했기 때문에(…) 불기소 처분, 그대로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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