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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에서 외쳐진 한 맺힌 기억

입력 2026-04-25 18: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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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코(배봉기 할머니와 함께 위안소에 있었던

조선인)는 4살 된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왔는데

아이를 생각하면서 울었어.”


지난 12일 일본 도쿄 나카노의 한 모임공간에서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봉기 할머니(1914~1991)의 한 맺힌 기억이 담담하게 전해졌다.

일본 시민단체 ‘일본군 성노예제 부정을 용서하지 않는 4·23 행동’(4·23 행동)이 개최한 ‘당신의 말을 듣다’

행사에서는 배 할머니가 생전에 남긴 증언들을

참가자들이 낭독해 들려주는 자리가 마련됐다.


“꿈을 꿨어요. 그런데 꿈에서는요, 고향에 가도

집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요. 혼자서 밖을 걷다가

돌 위에 앉아요. 혼자서….”


이날 배 할머니의 이야기를 대신 들려준 낭독자

박김우기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사무국 부장은

“배 할머니와 함께 (위안소에 있다가) 세상을 떠난

다른 생존자들을 기억하고 싶다”며

“본명도 알 수 없이 피해를 당했던 6명의 조선인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배 할머니의 삶에는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에 기반한 국가 폭력, 이후 남북 분단과 냉전,

오키나와에서 벌어지는 미국의 군사주의에 기반한

구조적 폭력 등이 응축된 것처럼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배 할머니는 1914년 9월 충남 예산군 신례원리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1944년 11월부터 1945년 3월말까지

오키나와 도카시키섬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에도 자유를 얻지 못한 채

다른 민간인들과 함께 자마미섬과 오키나와 본섬

등의 수용소를 전전했다.

‘전쟁터에서의 일’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키나와에 머물던 배 할머니는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재편입되면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강제 추방 위기를 겪었다.

당시 배 할머니는 자신이 일본 침략전쟁의 피해자로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밝혔고,

그 뒤에야 특별영주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한반도 출신 여성 가운데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밝힌 첫 사례였다.

이 과정에서 배 할머니의 사연이 1975년 일본

현지 언론에 소개됐고, 1977년 4월23일

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에 할머니의 사연이

소개됐다.


4·23 행동은 배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2015년

만들어진 모임이다. 지난 12일 낭독회를 연 데 이어

23일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70여명이 모여

배 할머니를 추모하는 열한번째 연례 모임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1991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했던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낭독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참가자들은 또다른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곽금녀’,

‘강덕경’, ‘길원옥’, ‘이경수’ 등의 이름을 불렀다.

이들은 “일본 정부는 더는 피해자들의 존엄을

공격하지 마라”, “일본 정부가 사과하고 배상하라”

같은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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