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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영화 10편

입력 2023-11-21 09: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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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영화란건 그 사람의 상황, 그리고 인생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있느냐에 따라 매번 변해야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고정적인 명단은 있을 수가 없고 인생영화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을지 모른다.

 내 표현대로 하자면 '지금 내 뇌라는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가 무엇이냐가 적절하지 않나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리스트는 지금 내 뇌속에서 상영되는 리스트라기보다는 짧은 내 영화 인생에서 좀 짙은 족적을 남긴 영화들의 목록이다.

나에게는 미개척지였던 "영화"라는 드넓은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우연히 맞닥뜨렸을 때 경탄을 자아냈던, 

그리고 이후 영화 생활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던 영화들.

소위 누구나 인정하는 만신전에 오를만한 영화는 이 목록에서 찾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영화의 목록이 아니라, 

영화라는 세계를 아이처럼 거닐며 남긴 내가 지나온 좁고 짧은 길에서 오래 머물어 깊이 패인 발자국들을 듬성듬성 되돌아봄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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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2016, 대미언 셔젤)

 나의 첫코는 라라랜드였다. 자크 드미나 프레드 아스테어의 뮤지컬 영화를 보게 된 계기 정도가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처음으로 영화를 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영화라서 늘 애틋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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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클럽> (2001, 소노 시온)

 <라라랜드> 이후 이런 저런 영화를 찾아보던 내가 진심으로 영화를 보게된 건 <자살클럽> 이후였다. 당시 나에겐 너무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한 영화였고, 누갤에서 추천받고 본 영화라 이후 누갤질도 시작하게 되고.... 슬슬 퇴물 소리를 듣고 미투 이후 감독생활마저 위태로운 듯한 지금도 그는 나에겐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이다. <자살클럽>보다 좋은 작품들이 많지만, 영화에 더욱 빠지게 한 이 첫만남이 내 영화인생에서 더 중요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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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느냐> (1942, 에른스트 루비치)

영화에 매혹되고, 누갤에 투신한 뉴비는 고전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이건 고유한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제의에 가깝다. 이런 저런 고전을 견뎌내듯 찾아보다가 에루와의 첫만남이 <죽사>였다. 카프라나 와일더도 좋지만 나는 <죽사>가 완벽한 스크루볼이라고 느꼈다. 지금도 내가 본 훌륭한 영화 열 편을 꼽아도 아마 나는 <죽사>를 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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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½> (1963, 페데리코 펠리니)

아방가르드의 세계로 한발. 소위 예술영화에서마저 모든 씬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의미풀이 해석놀이를 하는 식의 감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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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고이네르바이젠> (1980, 스즈키 세이준)

모호하고 상징적인, 현실의 껍데기를 쓴 연옥 속을 헤매는듯한 세계 속에 질식하듯 매혹되다. 일본 영화의 연대기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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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응자> (1970,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카메라의 눈을 어렴풋이나마 인식. 미장센, 쇼트, 구도에 대해 생각하게 됨. 폴 슈레이더의 강의를 번역하며 <순응자>와 <소이쿠바> 카메라워크의 대단함을 새삼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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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들과 함께한 여름> (1988, 오바야시 노부히코)

<하우스>로 처음 만난 이후로 그런 스타일의 감독이구나 싶었던 노부히코였지만. 이 영화를 보고 너무 놀랐다. 노스탤지어와 판타지, 지금은 고인이 된 이 감독이 일생을 필름에 아로새겨온 그 두 화두가 내 마음 속에 너무 깊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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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유키테, 신군> (1987, 하라 가즈오)

어느날 갑자기 영화로부터 칼로 자르듯 멀어졌다. 그리고 어찌어찌 다시 영화의 세계를 헤메러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오쿠자키 켄조를 본다.

불길이 인다. 그 그르렁대는 불길의 혓바닥같이 에너지 넘치는 하라 가즈오의 다큐는 어떡 극화보다도 드라마틱한 감정을 끄집어낸다. 이 영화를 본 후 나는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를 보는 삶이라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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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의 정원> (1987, 야마모토 마사시)

영화를 보다보면 누군가는 나만의 걸작, 숨겨진 보석을 운운하며 자신의 감식안을 뽐내고싶은 유혹에 빠질 때가 있다. 나에겐 이 영화를 본 후에 그런 건방진 유혹이 생겼던것 같다. 형언하기 힘든 매력과 요약하기 힘든 스토리를 가진 이 매혹적인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찬양해야 할까. 결국 누구도 설득해내지 못하는 변변찮은 문장들로 영화의 굴곡을 훑고 나서 만족하는건 내 촉각일 뿐인데. 아주 담백하고 상투적인 이야기로 갈음하자면, '맞는 사람에겐 인생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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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 더스트> (1994, 이시이 소고)

어째서인지 일본 영화가 많은 목록이다. 좋아하는 일본 감독이 많다. 이시이 소고는 '좋아하는 감독들' 중 하나, 방구석 영화팬의 감독 리스트에서 '원 오브 뎀'인 편이었다. 모두가 그보다 훌륭하다거나 인기있는 일본감독의 이런저런 이름을 대고싶어할 것이다. 나에겐, 폭발하는 에너지의 초기작에서 조금씩 차분해지는 과정을 거치는, 그러나 가라앉다 못해 정 반대로 음에너지가 음습하게 물결치기도 하는 (<경심>,<물속의 8월) 좀 독특한 필모가 인상적인 감독이며 하지만 촬영에 있어서는 늘 역동적이고 독창적인 시도를 해온 감독이었다. 

적잖은 필모를 띄엄띄엄 순서도 두서 없이 보다보니 (이름을 포함해) 변화해온 이 감독에 대해 완전한 상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한 편 한 편 볼 때마다 이상하게 그의 이름이 두드러지게 각인된다. 

얼마 전 <엔젤 더스트>를 보고 나서는 (아직 특히 그의 근작들을 많이 못봤지만) 이 영화가 그의 정점이라는 생각이 들고, 또 이 영화가 무시무시한 걸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착 가라앉은 녹색조의 악몽과도 같은 영화는 수사물과 누아르의 외피를 쓰고 최면이나 사이비 종교 등을 일종의 주술적인 도구로 끌어오지만, 중간의 한 씬이 직접적으로 암시하듯 미장아빔의 지옥도에 빠진 세계와 인간을 오싹하게 그려내는 공포영화다. 

그런데 역시 걸작이지만 <역분사가족>, <폭렬도시> 등을 만들던 감독이 어떻게 이렇게도 멀리 떨어진 걸작을 만드는지가 탐구하고 싶은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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