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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유럽인들은 응가를 어떻게 누웠을까, 중세시대에 수세식 화장실은 당연히 없었겠고 ...

이게 뭔지 딱보면 감이 오는데 중세시대의 성<성벽>에 잇는 화장실이다. 노무현이 좋아하는 중력을 이용해 아래층으로 응가를 내려보내는 최신 시스템이다.시원하게 응가를 하면 똥이 아래로 쌓이고 이걸 응가 치우는 사람가 치웠다,그림에 나오는 똥 치우는 사람이 gong farmer임
알다시피 인간의 응가는 숙성되면 존나 지독한 가스<메탄가스>를 풍긴다.뒤질수도 있음, 즉 중세시대 저런일을 했떤 사람들은 목숨이 왔다갔다 했다
그리고 성의 화장실 구조를 보면 성의 역활과 맞지 않는다는걸 알수 있다.성은 방어적인 목적으로 세워진 건물인데 저렇게 성에 구멍<똥치우는 통과 구멍>이 있으면 누군가는 이걸 통해서 성에 잠입하여 적의 모가지를 딸수 잇을거라 생각할수 있다.아니 냄시 나는 저곳을 통해서 잠입 한다고?

가이야르 성
그런데 실제로 그런일이 일어나게됨 ,12세기 영국의 리차드 1세<사자왕>는 난공 불락의 요새라 불리는 가이야르 성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었고 상대인 프랑스의 필립 2세는 이 성을 어떻게든 빨리 점령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하들을 독촉 시켰고 부하들은 냄시가 나는 곳을 찾아 즉 성의 응가 치우는 곳을 찾아서 그곳을 통해 병사를 잠입시켜 성을 함락 시키는데 성공하게된다.
a soldier named Ralph found a latrine chute in use through which the French could clamber into the chapel.>
그리고 중세시대 일반인들<평민이하>은 화장실<공용>을 잘 이용하지 않았으며 집에도 화장실이 없었다.특히 중세시대에는 전기라는게 없었기 때문에 밤에 응가하러 공용화장실에 가는건 무리였다.그래서 사용한게 chamber pot이라는 간이 응가통?이다.

중세시대 응가통
하루동안 푸짐하게 여기에 응가를 모은뒤에 버려야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이런 식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응가통의 응가를 그냥 길바닥에 뿌려댔다. 이걸 치우는 사람도 존재했지만 그들이 항상 매시간 길거리를 치운것도 아니었고 다수의 응가통이 정해진 때에 가득차지 않았기 때문에 중세 유럽의 거리는 똥으로 가득했었다. <특히 안식일에는 muckraker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았었다>라는>
<라는>The streets of medieval London, for instance, became so full of filth (which included the excrement of both animals and humans’) that muckrakers were hired to clean the streets.>
그런데 저렇게 길거리에 응가를 뿌리면 길거리를 걷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된다. 그래서 이들은 똥 던질때 에티켓으로 'Gardi loo'라고 외치고 던졌다.
그리고 알다시피 양산이란게 이 똥을 커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그리고 저렇게 똥을 길바닥에 뿌리는건 당연히 불법이었고 법칙금을 내야했지만 당시 중세 유럽인들은 다 무시하고 뿌렸었다.어차피 눈에 안띄면 그만이니
<The practice of emptying chamber pots into the streets apparently gave rise to some new words in the English language. For example, in order to warn pedestrians below, those who emptied the chamber pots would shout ‘Gardi loo!’, which is supposed to have been derived from the French ‘Prenez garde à l’eau’, which may be translated to mean ‘Watch out for the water>
그럼 여기서 왕족이나 귀족들은 응가를 어떻게 해결 햇을까.당연히 화장실과 개인 응가통을 이용햇는데 왕은 화장실보다는 아무나 들어올수 없는 개인방의 응가통을 사용했었다.<아마도 왕의 비밀이나 목숨 때문일듯>

왕의 개인 응가통
여기서 왕이나 귀족들은 응가통에 응가를 누고 가득차면 스스로 응가를 비웠을까,물론 그렇지 않았다.대신 치워주는 사람이 있었고 왕의 경우 왕의 몸은 국가이므로 왕의 응가를 치우는 직책은 매우 고상?한 직책 이었다.왕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왕을 접대?하는 직책이라 아무나 할수 잇는게 아니었다. 일단 왕의 큰 신임을 얻어야하며 왕이 하는 애기등을 비밀로 지킬수 있는 자여야만 햇으며 대부분 귀족들이었다 ,물론 급료도 매우 높았었다. 왕의 아주 최측근에 해당되는 직책이라 일부 왕실 응가 관리인은 큰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었다.
<The Groom of the Stool (formally styled: "Groom of the King's Close Stool") was the most intimate of an English monarch's courtiers, responsible for assisting the king in excretion and hygiene.
The physical intimacy of the role naturally led to his becoming a man in whom much confidence was placed by his royal master and with whom many royal secrets were shared as a matter of course. This secret information—while it would never have been revealed, for it would have led to the disxxxcredit of his honour—in turn led to his becoming feared and respected and therefore powerful within the royal court in his own right.>

앤서니 데니라는 이사람은 영국 헨리 8세의 응가 관리인<그리 오래 하지 않음>이었으며 핸리 8세의 개인방 열쇠를 가지고 잇엇으며 왕의 도장도 관리했었다.그리고 헨리 8세 임종시 헨리8세의 유언서도 작성했었다
<The King’s Privy Chamber was attended to by a series of men, at the head of these men was the Groom of the Stool>
< Sir Anthony Denny (16 January 1501 – 10 September 1549) was Groom of the Stool to King Henry VIII of England, thus his closest courtier and confidant. He was the most prominent member of the Privy chamber in King Henry's last years, having together with his brother-in-law, John Gates, charge of the "dry stamp" of the King's signature, and attended the King on his deathbed.>
특히 헨리 8세는 변비가 심해서 자주 관장을 햇는데 따라서 헨리 8세의 응가 관리인는 그가 관장을 얼마나 했나를 기록했으며 왕이 관장에 의하여 얼마나 자주 응가통에 올라갔는지도 기록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베르사유 궁전<루이 13세가 자신의 사냥터 별장으로 시작함 즉 처음에는 왕이 사는곳이 아니엇음>에 대해서 언급해야 하는데 보통 왕이 잇는 궁전에는 화장실이란게 있었지만 베르사유에는 화장실이란게 없었다.18세기쯤에 화장실이 설치되었는데 그전에는 화장실이 존재하지 않았었다.그럼 베르사유에 온 왕족이나 귀족 혹은 귀빈들은 어떻게 응가를 해결 햇을까. 그냥 참앗을까
There were hardly any toilets at Versailles and with a court counting several thousand people it turned out to be more than a little problem. The servants, the commoners who came to look at their monarch even the aristocrats would occasionally relieve themselves in corners and courtyards though this was not as often as has later been implied. Visitors - including Horace Walpole - complained about the awful smell that hung over everything; even the gardens were not free for the hideous odour. Thanks to the many reports of ambassadors and foreign visitors the splendid palace became known as one of the filthiest in the world - not exactly what had been expected. >

베르사유궁을 보면 응가하기 딱 좋은 장소가 보인다. 토양에 거름으로도 쓸수 잇겠고 ,중세 시대 당시 베르사유 궁에 온 귀족이나 왕족은 그냥 정원이나 복도에다가 급똥을 싸갈겼다. 일부 자신만의 응가통을 들고 여기에 해결을 하였고 심지어 화장실이 잇는 왕의 궁전<루브르궁>에서도 귀족들이 복도에 응가를 마구 갈겨대었고 물론 이걸 치우는건 하인들이었겠다.< What did the other thousands of people of Versailles use for their toilets? One option was of course the major hallways where people would squat in the dark corners and use as their toilet. At one point, the dauphin and dauphine were housed in apartments off of the major hallway, and a gate was put up around their door to ensure people would not use that area as their toilet. >

존 해링턴 경과 그의 수세식 화장실
그럼 이런 응가 냄새가 풍기는 중세 유럽에 변화를 가져온건 누구였을까.즉 지금의 수세식 화장실을 만든 사람, 세계 최초의 수세식 화장실을 만든 사람은 영국의 존 해링턴 경이었다. 1596년에 만들어졋는데 원래 이런 신문물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이걸 무시해버린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리고 당시 왕족이나 귀족들은 자신만의 화려한 응가통을 가지고 있었고 이걸 자랑스로여겼기 때문에 이런 수세식 화장실이 나와도 잘 쓰지도 않았었다. 뭐 위생적인 관념도 없었던 시절이었고
그리고 사실 수세식 화장실을 처음 고안해낸건 존 해링턴이 아니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실제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탈리아 출신인 그는 프랑스의 왕 프랑수와 1세에 의해 스카웃 되는데 다빈치는 프랑스 왕궁의 똥냄새가 고통스러웠고 왕에게 왕만의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해줄것이라 약속하여 설계를 하게된다.하지만 실제로 만들지 못했고 설치는 포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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