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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프레이저·포먼…베테랑 외교관이 조명한 '세기의 챔피언들'

입력 2026-10-27 0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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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철 전 민주콩고 대사 신간 '챔피언들'…'정글의 혈투' 역사적 현장 방문도


"챔피언들이 삶의 링에 선 우리에게 주는 원초적 이야기"




책 '챔피언들' 표지

[책과나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성진 기자 = 주먹은 인간이 손에 쥔 가장 오래된 무기라고 한다. 주먹을 사용해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겨루는 복싱은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스포츠라고 할만하다.


지금보다 볼 것이 훨씬 적었던 1960∼1970년대 전 세계는 전설적인 3대 헤비급 복싱 선수에 열광했다. 무하마드 알리,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이 바로 그들이다.


주콩고민주공화국 대사 등을 역임한 베테랑 외교관 출신 작가 조재철의 신간 '챔피언들'은 복싱 황금기를 이끈 세계 헤비급 챔피언 3명을 중심으로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와 고독, 투혼과 우정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헤비급 복서로 꼽히는 알리, 가난과 차별·신체적 한계를 딛고 정상에 오른 프레이저, 배고픔과 결핍 속에서 일어선 헝그리 복서 포먼이라는 3명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알리에게 프로 무대 첫 패배를 안긴 프레이저, 프레이저를 무너뜨리고 정상에 오른 포먼, 그리고 예상을 뒤엎고 포먼을 꺾은 알리. 세 사람은 이렇게 서로 엮이며 복싱 역사에 영원히 남을 명승부를 펼쳤다.


저자는 1971년 뉴욕 맨해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알리-프레이저 1차전 '세기의 대결'과 1974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치러진 알리-포먼의 '정글의 혈투', 1975년 복싱 사상 최고 경기이자 20세기 가장 위대한 경기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는 알리-프레이저의 재대결 '마닐라의 전율' 등 역사적인 경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974년 '정글의 혈투'에서 알리를 코너에 몰아 붙인 포먼(가운데)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비단 경기뿐 아니라 선수들의 승리 뒤에 가려진 좌절과 고뇌, 링 밖에서 이어진 또 다른 싸움도 조명한다.


대표적으로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알리는 개신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이름도 출생 당시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에서 무하마드 알리로 바꾼다. 알리의 이슬람 개종·개명은 기독교가 다수인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과거 아프리카를 '악어와 싸우고 진흙집에 사는 곳'이라고 깎아내렸던 알리는 흑인 인권 운동에 가담한 뒤 "아프리카에는 사자와 코끼리 외에도 볼거리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할 정도로 아프리카에 대한 큰 인식 변화를 겪었다.


또 그는 종교적 신념과 양심을 이유로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해 복서 면허가 정지되고 챔피언 타이틀도 박탈당한다.


육중한 헤비급과는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풋워크를 선보였던 알리지만 경기에서 약 2만9천번의 펀치를 맞았다고 직접 밝혔다. 경기와 스파링을 포함하면 그 횟수는 약 20만번으로 추산된다.


알리는 링에서 내려온 지 3년 만인 1984년 파킨슨병을 공식 진단받았다. 당시 42세였던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32년 동안 이 병과 싸워야 했다.


복싱 선수로 반복적으로 머리에 충격을 받은 것이 발병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는 추측이 뒤따랐다.


프레이저는 알리를 꺾고 받은 WBC 챔피언 벨트를 반(反)아파르트헤이트(흑백인종차별정책) 투쟁 끝에 27년이 넘는 수감을 마치고 미국을 방문한 넬슨 만델라에게 선물했다. 만델라 역시 아마추어 복서 출신으로 복싱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공격과 후퇴의 책략을 사용하며 시합에서 페이스를 조절하는 법에 매료됐다고 한다.


책에서는 세계 챔피언들과 한국과 인연도 소개돼 눈길을 끈다.


알리는 1976년 5월 리처드 던과 경기에서 나온 바늘로 찌르는 듯한 자신의 결정타를 '아큐 펀치'(Accu-punch)라고 불렀는데 이 펀치를 '미국 태권도의 아버지'라고 불린 이준구 사범에게 배웠다고 밝혔다.




세계 복싱의 '전설' 무하마드 알리의 1976년 모습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알리는 1976년 6월 사흘간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김포공항에서 서울 시내까지 진행된 알리의 카퍼레이드에 경찰 추산 45만명이 모여 알리를 환영했다.


그는 장충체육관에서 주먹으로 38선을 때려 부숴 한국인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도 했다.


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남아공 백인 선수 아널드 테일러를 꺾고 챔피언으로 등극한 홍수환도 소개된다.


홍수환은 승리 뒤 고국의 어머니와 전화에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외쳤고 어머니가 "대한민국 만세다"라고 답한 것을 지금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 측에서 사전에 머나먼 남아공 측에 애국가를 제공하지 못한 바람에 현장에선 한국 동포들이 직접 육성으로 부르는 애국가가 링 위에 울려 퍼지기도 했다.


30여년 간 외교관으로 근무한 저자는 복싱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복서들의 자서전과 전기, 언론 보도, 다큐멘터리와 영화 등 다양한 자료를 참고해 링 위의 승부와 함께 그 너머의 인간적인 면모를 충실하게 그려냈다.


저자는 "이 책은 승패가 분명하게 갈리는 사각의 링 위에서 승리를 다투면서도 그 치열한 대결을 넘어 인간적인 연대와 존중의 가치를 발견해 간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버티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이들의 삶이 오늘도 저마다의 삶의 링에서 살아가는 분들에게 작은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책과나무. 391쪽.


sungjin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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