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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부·김일융 등 재일교포 선수들, 한국 야구 발전에 큰 기여

(서울=연합뉴스)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 총재가 16일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 백인천 전 감독의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2026.8.16 [한국야구위원회 제공. 재배포 및 DB 금지]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한국과 일본에서 족적을 남긴 야구인들이 세상을 등지며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가 됐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데뷔하고 한국프로야구 창설과 함께 귀국해 고국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이름을 남긴 투혼의 야구인 백인천 전 감독이 8월 15일 별세한 데 이어 일본프로야구에서 재일동포 유전자(DNA)를 드러내고 차별에 맞선 위대한 타자 장훈 씨도 9일 눈을 감았다.

(서울=연합뉴스) 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일본프로야구 전·현직 선수들로 구성된 명구회는 10일 "장훈 위원이 9일 오전 일본 도쿄 도내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장훈 위원은 1959년부터 1981년까지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며 최다 안타 기록(3천85개)을 세우는 등 통산 타율 0.319, 504홈런, 1천676타점의 기록을 남겼다.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로 활동했으며 2007년엔 한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사진은 지난 2009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예선 한국과 대만의 경기에 시구자로 나선 장훈. 2026.9.10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특히 장훈은 원자폭탄의 참상을 직접 겪은 피해자로서 평생 전쟁을 결사반대한 평화주의자이자 재일동포 사회의 자부심을 높인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타계는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장훈처럼 일본프로야구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드러낸 재일동포는 없다. 은연중에 상존하는 차별이 두려워서인지 모른다.
다만, 덩치가 좋고 투지가 좋은 선수는 대개 한국계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예전부터 일본 야구판을 돌았다.
후지모토 히데오, 한국 이름 이팔룡(1918∼1997)으로 알려진 그는 부산 태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통산 200승을 거뒀다.
1950년 일본 최초로 프로에서 퍼펙트 투구를 달성했다.
김경홍이라는 우리 이름이 있는 가네다 마사이치(1933∼2019)는 프로 20년 통산 400승을 남겨 일본 유일의 400승 투수라는 기념비를 세웠다.
탈삼진도 4천490개나 남겨 일본 역대 최고 좌완으로 통한다.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일본프로야구에서 1천492경기 연속 전 이닝 출장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가네모토 도모아키(1968∼) 전 한신 타이거스 감독은 어릴 적 김박성으로 불렸으며, 현 히로시마 도요카프 감독 아라이 다카히로(1977∼)는 박귀홍이라는 우리 이름을 갖고 있다.
아라이 감독은 고교 시절 재일동포 야구단 소속으로 국내 고교대회에 출전한 적도 있다.
재일동포 야구 선수들은 일본보다 46년 늦게 한국에도 프로야구가 생기자 뿌리를 찾아 고국으로 향하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투수가 '너구리' 장명부로 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무려 30승, 투구이닝 427⅓이닝 등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마약 투약 등으로 순탄치 않은 말년을 보낸 장명부는 2005년 4월 자신이 운영하던 일본 와카야마현의 마작 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만 54세였다.

[LG 트윈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시진과 더불어 삼성 라이온즈의 원 투 펀치를 이뤘던 좌완 김일융(1951∼)은 니우라 히사오라는 일본 이름으로 일본프로야구에서 19년간 116승을 올리며 두 차례나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른 관록 있는 투수였다.
1971년 프로 데뷔해 1983년까지 일본에서 뛰고서 1984년 삼성 유니폼을 입고 3년간 54승을 거둔 뒤 일본으로 돌아가 1992년까지 활약하고 은퇴했다.
1983년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을 이끈 사이드암 투수 주동식과 포수 김무종, 빙그레 이글스의 고원부 등도 프로야구 초창기를 누빈 재일동포다.
일본에서 고교와 대학을 나와 1984년 OB 베어스에 입단한 최일언(1961∼)은 선수로 78승 57패, 11세이브를 남겼고 지금도 삼성 라이온즈 수석 및 투수코치로 현장을 지키는 지도자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들에 앞서 고(故) 김영덕(1936∼2023) 감독, 김성근(1941∼) 전 감독이 고국으로 터전을 옮겨 한국 야구 발전에 힘을 보탰다.
둘 다 일본 교토 출생 투수 출신으로 김영덕 전 감독은 일본프로야구 난카이 호크스에서 뛰고서 28세에 한국으로 이주해 국내 실업리그를 평정했다.
이후 실업야구와 아마추어 야구 감독을 거쳐 프로 원년 OB 사령탑을 지내고서 삼성, 빙그레를 지휘했다.
김성근 전 감독도 1961년 교통부 야구단 소속으로 한국 무대에서 뛰기 시작해 실업야구 기업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뒤 프로에서 사령탑으로 OB, 태평양 돌핀스, 삼성,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 무려 7개 팀을 이끌었다.
cany99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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