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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방송 패널로 어록 양산…안타왕 이치로 극찬

(도쿄 교도=연합뉴스) 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일본프로야구 전·현직 선수들로 구성된 명구회는 10일 "장훈 위원이 9일 오전 일본 도쿄 도내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장훈 위원은 1959년부터 1981년까지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며 최다 안타 기록(3천85개)을 세우는 등 통산 타율 0.319, 504홈런, 1천676타점의 기록을 남겼다.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로 활동했으며 2007년엔 한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사진은 1980년 5월 28일 롯데 오리온스 선수로 출전해 한큐전에서 3천안타를 달성해 기뻐하는 장훈. 2026.9.10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우리 시절에는 코치에게 아프다고 하면 약해서 그런 것이니 연습하면 낫는다고 했다. 지금도 재능 있는 선수는 많지만, 연습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꼰대' 같은 '라떼' 발언은 9일 별세한 야구 영웅 장훈(1940∼2026·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의 전매특허였다.
한국인을 차별하는 일본프로야구에서 성공하려면 야구에, 훈련에 미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그대로 녹아 있다.

(서울=연합뉴스) 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일본프로야구 전·현직 선수들로 구성된 명구회는 10일 "장훈 위원이 9일 오전 일본 도쿄 도내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장훈 위원은 1959년부터 1981년까지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며 최다 안타 기록(3천85개)을 세우는 등 통산 타율 0.319, 504홈런, 1천676타점의 기록을 남겼다.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로 활동했으며 2007년엔 한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사진은 지난 2009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예선 한국과 대만의 경기에 시구자로 나선 장훈. 2026.9.10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일본프로야구에서 장훈이 남긴 안타 3천85개, 홈런 504개를 보지 못한 팬들은 은퇴 후 방송 해설위원과 시사·스포츠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로 변신해 20년간 TV 전파를 탄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장훈을 알아갔다.
선수 시절에도 물리적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장훈은 은퇴 후에는 거침없는 입담과 독설로 때로는 경종을 울리고 때로는 비판을 자초했다.
다음은 한국과 일본 언론이 생전에 소개한 그의 주요 어록이다.
▲ "안타를 치는 비결? 공을 끝까지 끌어당겨 보고, 배트를 짧게 쥐고, 중견수 앞으로 받아치는 것. 그것뿐이야."(부챗살 타법으로 일본프로야구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세운 장훈의 타격이론)
▲ "핸디캡을 변명거리로 삼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화상으로 손가락이 변형된 뒤에도 맹훈련으로 역경을 이겨낸 점을 설명하며)
▲ "힘들 때일수록 앞을 보라. 도망치면 거기서 끝이다."(재일동포로서 차별에 맞서 고난을 극복한 신념)
▲ "야구는 어려운 운동이 아니다. 어려운 것은 기본을 계속하는 것이다."(타격 연습과 기본기의 중요성을 논하며)
▲ "홈런은 팬을 즐겁게 하지만 안타는 팀을 살린다."(안타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 "오타니는 만화 속 주인공 같은 선수다."(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투타를 겸업하는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를 평하며)
▲ "한 가지를 하는데도 힘든데 5년 안에 무너질 것이다", "야구는 프로레슬링이 아니다. 저런 몸을 만들면 안 된다."(오타니의 투타 겸업과 상체 근육 키우기를 비판하며)

(서울=연합뉴스) 재일교포인 일본프로야구의 영웅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해설위원이 별세했다. 향년 86세.
일본프로야구 전·현직 선수들로 구성된 명구회는 10일 "장훈 위원이 9일 오전 일본 도쿄 도내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장훈 위원은 1959년부터 1981년까지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며 최다 안타 기록(3천85개)을 세우는 등 통산 타율 0.319, 504홈런, 1천676타점의 기록을 남겼다.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로 활동했으며 2007년엔 한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사진은 지난 2017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 앞서 선동열 당시 대표팀 감독과 인사하는 장훈. 2026.9.10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 "안타를 만드는 기술은 예술이다.", "저런 타자는 한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다.", "배트 끝이 어떤 코스에도 최단 거리로 나간다. 이런 타자는 이 사람밖에 없다."(안타왕 스즈키 이치로의 타격을 극찬하며)
▲ "요미우리의 4번은 타자가 아니라 책임이다."(일본 최고인기 팀 요미우리의 4번 타자가 져야 할 막중한 책무를 강조하며)
▲ "이승엽의 파워는 마쓰이(히데키)보다 위다."(요미우리 39대 4번 타자 장훈이 70대 4번 타자 이승엽과 62대 4번 타자 마쓰이를 비교하며)
▲ "정말 내가 나가시마 씨의 대역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일본 야구 영웅 나가시마 시게오가 요미우리로 이적한 장훈에게 '오(사다하루)가 고립됐다. 내가 있을 땐 상대의 마크가 둘(나가시마와 오사다하루)로 나뉘었지만 지금은 오 혼자 짊어지고 있다. 네가 나 대신 해줘'라고 말하자 감격했다며. 오사다하루와 나가시마는 공포의 'ON'포로 한시대를 풍미했다)
▲ "오짱은 동급생이고 18살 때부터 알고 지냈다. 나와 교제가 깊고 길다."(2024년 오사다하루(王貞治) 데이 때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도쿄돔에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 절친한 친구의 행사에 참석하며. 간토 지방 와세다 실업고를 나온 오사다하루와 간사이 나니와 상고 출신의 장훈은 동갑으로 고교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으며, '동쪽의 오와 서쪽의 하리모토'로 불렸다. 오사다하루는 대만 국적, 장훈은 한국 국적으로 일본인이 아니라는 공통점도 있었다)
cany99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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