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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원년 감독' 박영길 "故 백인천 4할 비결은 미친 열정"

입력 2026-08-19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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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원년 사령탑 '유일 생존자' 박영길 전 감독의 회고


최동원 향한 그리움 "슈퍼스타 그렇게 소모되게 둬선 안 됐다"




박영길 전 감독(왼쪽)과 선수 시절의 장효조.

[한국야구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지난 15일 프로야구 원년 사령탑이었던 백인천 전 감독이 영면하면서, 1982년 출범 당시 지휘봉을 잡았던 6명의 감독 중 이제 박영길(85)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만이 유일한 생존자로 남게 됐다.


서영무(삼성 라이온즈) 전 감독이 1984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3년간 투병하다가 1987년 원년 감독 중 가장 먼저 떠났고, 김동엽(해태 타이거즈) 전 감독은 1997년 사고로 허무하게 별세했다.


박현식(삼미 슈퍼스타즈) 전 감독은 암 투병 끝에 2005년 눈을 감았으며, 김영덕(OB 베어스) 전 감독은 2023년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백 전 감독마저 앞선 이들의 뒤를 따르면서, 한국 야구 시작을 함께했던 초대 사령탑은 박 전 감독만 남았다.


박 전 감독은 18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1982년 0.412라는 전무후무한 타율을 남긴 고(故) 백 전 감독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박영길 전 감독(왼쪽)과 이만수

[한국야구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기사를 통해 백 전 감독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는 박 전 감독은 "한마디로 백인천은 야구에 미친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며 "국내 1호로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 20년간 활약한 뒤, 한국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타이밍 좋게 돌아와 우리 야구가 빠르게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롯데 사령탑으로서 '감독 겸 타자' 백인천을 상대해야 했던 박 전 감독은 그의 타격 기술이 단연 으뜸이었다고 평가했다.


박 전 감독은 "나이가 40세가 되면 세계적인 선수라도 순발력이 떨어져 시속 145㎞ 전후의 강속구를 치기 힘들어지는데, 백 감독은 머리 쓰는 타격 기술과 오랜 노하우로 그것을 적절하게 잘 맞춰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체형이 조금 뚱뚱해 보였지만, 자동차로 치면 10만㎞를 뛰고도 관리가 아주 잘 된 차처럼 체력과 요령이 탁월했다"고 덧붙였다.


박 전 감독의 회고는 자연스럽게 1983년 롯데 사령탑 시절 자신이 지휘했던 '무쇠 팔' 고(故) 최동원에게로 이어졌다.




삼성 코치로 일할 당시의 박영길 전 감독

[한국야구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82년에 이어 1983년에도 롯데를 이끌었던 박 전 감독은 시즌 중도에 성적 부진으로 지휘봉을 내려놔야 했다.


박 전 감독은 부산 충무초등학교 교장이자 최동원의 조부인 최성원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한 인연이 있다.


투수를 관리하고 보호하려 했던 박 전 감독은 당시 KBO리그에 만연했던 투수 혹사 문화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투수가 공을 100개 이상 던져 모세혈관이 터지면 회복하는 데 최소 사흘이 걸린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판명돼 있었다"며 "하지만 당시에는 일본에서 400승을 거둔 가네다 마사이치 감독 시절의 일본프로야구식 '완투 후 구원 등판'이라는 낡은 시스템이 만연해 있었다"고 지적했다.


박 전 감독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이 혼자 4승을 거둔 '전설'에 대해서도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박 전 감독은 "롯데는 아무리 우승에 목이 말랐어도 코리안시리즈에서 그렇게 던지고 또 50개씩 던지고 내려오게 무리시키면 안 됐다"며 "내가 계속 롯데에 있었으면 그렇게 소모되도록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1984년 한국시리즈 상대로 롯데를 골랐던 삼성의 '져주기'에 대한 숨겨둔 이야기도 꺼냈다.


롯데를 떠나 당시 삼성 타격코치로 일하던 박 전 감독은 전기 우승을 차지하고 한국시리즈 상대로 롯데와 OB 베어스를 놓고 고민하던 김영덕 전 감독에게 "절대 롯데를 상대로 골라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롯데에는 최동원이 있었지요. 최동원은 연투에 이골이 난 선수예요. 삼성이 그 시즌 최동원 공을 좀 쳤다고는 해도, 그건 하필 최동원이 삼성전에 며칠 안 쉬고 나온 날이 많은 덕을 봤어요. 최동원은 등판하기 전에 50구는 불펜에서 몸 풀고 올라오는 습관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타자들한테 '3회까지는 그냥 공 지켜보기만 하라'고 했죠. 나중에는 김영덕 감독님께 '감독님을 내보낸 OB한테 설욕해야 더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씀도 드렸지만, 결국 삼성은 롯데를 상대로 골랐고 한국시리즈에서 졌죠."




롯데 전직 사령탑인 박영길 전 감독(왼쪽)과 강병철 전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1988년 11월 최동원이 롯데에서 삼성으로 트레이드되기 직전에 삼성 감독에서 물러났던 박 전 감독은 구단의 결정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박 전 감독은 "슈퍼스타는 반드시 자신의 본거지에서 은퇴해야 한다"며 "20만㎞를 뛰어 너덜너덜해진 차를 폐차장으로 보내듯 트레이드한 것은 감독과 단장, 구단 모두의 책임이며 팬이 실망하게 만든 일이다. 내가 감독일 때도 추진됐던 트레이드고, 그때마다 거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동원이 삼성 유니폼을 입고, 김시진이 롯데로 이적한 충격적인 트레이드는 지금도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이적으로 거론된다.


초창기 최동원의 계약과 얽힌 막후 비화도 털어놨다.


박 전 감독은 1983년 롯데가 입단을 앞둔 최동원에게 높은 계약금을 주는 것을 주저하자,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프로야구 롯데 오리온즈(현 지바롯데 머린스)의 가네다 감독을 만났다고 밝혔다.


당시는 가네다 감독이 현직 사령탑이 아닌 구단 자문 격이었다.




박영길 전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가네다 감독으로부터 '최동원은 20년 만에 나오는 투수이며, 군대 문제만 해결되면 일본에서 데려가겠다'는 일종의 품질 보증서를 받아와 구단을 설득했다"며 "그제야 구단이 당시 압구정동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거액을 지불하고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박 전 감독은 삼성의 고(故) 이건희 전 회장을 통해 삼성의 2군 구장인 경산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를 건설했던 뒷이야기도 공개했다.


박 전 감독은 호적상 1941년생(실제는 1940년생)이고, 이 전 회장은 1942년 1월생이다.


6·25 전쟁 당시 이 전 회장은 부산에 피란 왔다가 박 전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박 전 감독은 "당시 이 회장이 대구 수성관광호텔로 나를 불러 야구계의 여러 현안과 타 구단의 상황을 묻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 회장에게 '대한민국 최고 부자 회사가 야구장도 하나 없이 남의 구장을 빌려 쓰고 쫓겨 다니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직언했고, 이 회장의 결단 덕분에 삼성 경산 2군 야구장이 건립될 수 있었다"고 숨겨진 일화를 소개했다.


인터뷰 말미 박 전 감독은 프로야구 초창기의 이면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박 전 감독은 "프로야구 출범 당시 청와대의 부름을 받아 실무를 논의했던 일부터 각 구단 창단 과정의 비화까지 내가 알고 있는 숨은 역사가 너무나 많다"며 "더 늦기 전에 귀중한 사실들을 역사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4b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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