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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를 꺾고 다시 결승에 올랐고, 서른아홉 살의 노장 리오넬 메시는 자신의 여섯 번째 월드컵에서도 여전히 경기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몇 달 전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며 이 나라를 대표하는 두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축구와 쇠고기라고 생각했다.
하나가 경기장과 광장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면, 다른 하나는 식탁과 불가에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축구와 아사도(asado)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아르헨티나의 공동체를 완성한다.
바비큐를 뜻하는 아사도는 그 위에서 고기를 굽는 조리법이면서 가족과 친구들이 오랫동안 불가에 모여 음식을 나누는 사회적 의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아르헨티나 쇠고기의 뿌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서쪽과 남쪽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팜파스 평원에 있다.
비옥한 토양과 온화한 기후, 끝없이 이어지는 초원은 대규모 방목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여기에 소를 돌보며 평원을 누비던 가우초 문화가 더해지면서 소와 고기는 단순한 농축산물이 아니라 아르헨티나를 상징하는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후반부터 팜파스의 목축업은 아르헨티나 경제의 성장을 이끈 핵심 산업이었다.

테이블을 다림질하는 스테이크 전문점 종업원 [사진/성연재 기자]
20세기 초 아르헨티나는 온화한 기후와 광대한 방목지를 바탕으로 양질의 쇠고기를 비교적 낮은 비용에 생산하며 세계적인 육류 공급국으로 부상했다.
오늘날 생산 방식이 다양해지고 사료 비육도 확대됐지만, '팜파스에서 자란 쇠고기'라는 이미지는 여전히 아르헨티나 미식의 가장 강력한 브랜드다.
'축구의 신'이 트로피에 가까워질수록 전 세계의 시선은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대표팀의 성적이 곧바로 관광객 숫자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메시와 월드컵이 만들어내는 국가적 서사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강력한 홍보 수단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르헨티나를 찾은 여행자의 상당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파리야'(parrilla)의 연기를 따라가게 된다.
파리야는 이 도시에서 고기를 굽는 철제 석쇠를 뜻하는 동시에, 그 석쇠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전문 식당을 가리킨다.
여행자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반드시 경험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로 스테이크를 꼽아도 지나치지 않다.
현지에서 아사도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팜파스의 가우초 문화와 도시인의 일상을 연결하는 의례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다만 한국의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파인다이닝에서 접했던 스테이크를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아르헨티나식 파리야의 중심에는 화려한 소스나 정교한 플레이팅이 아니라 고기와 소금, 불과 시간이 있다.
장작이나 숯을 충분히 태워 만든 불씨 위에서 굵은소금으로 간한 고기를 낮은 열로 천천히 익힌다.
강한 불꽃으로 표면을 단번에 그을리기보다 지방이 서서히 녹고 육즙이 고기 안에 머물도록 기다리는 방식이다.

한국에는 없는 송아지 흉선 요리 [사진/성연재 기자]
아르헨티나 미식 생태계의 정점에 선 곳 가운데 하나인 부에노스아이레스 팔레르모 지구의 식당 '돈 훌리오'를 방문한 적이 있다.
수년 전, 리오넬 메시가 스테이크를 즐기기 위해 들렀다가 그 소식을 들은 팬들이 몰려 일대가 마비된 바로 그 고깃집이다.
세계 최고의 스타조차 경찰 에스코트를 받아 가며 기어코 맛봐야하는 스테이크.
대체 그 불판 위엔 뭐가 올라가길래 야단일까.
자리에 앉아 첫 번째로 마주하는 '살치차 파리예라'는 똬리를 튼 아르헨티나식 소시지로, 입안에서 경쾌하게 육즙을 터뜨리며 미각을 예열한다.

메시 팬들이 몰려 야단법썩이 되었던 돈 훌리오 [사진/성연재 기자]
하지만 진짜 문화 충격은 다음 타자인 '모예하스'(Mollejas)에서 온다.
어린 송아지에게만 있는 흉선 부위로, 한국에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요리다.
하지만 아사도의 나라에선 다르다.
겉은 삼겹살처럼 바삭하고 속은 푸아그라처럼 녹아내리게 큼직하고 호쾌하게 구워버린다.
고소한 지방의 폭발적인 풍미는 왜 이 부위가 아르헨티나 식탁의 심장인지 단박에 증명한다.
메인 그라운드에는 꽃등심의 하이라이트, '스파이널리스 스테이크'가 등판한다.
농밀한 지방과 짙게 밴 숯불 향의 펀치력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돈 훌리오의 요리사들 [사진/성연재 기자]
그리고 이 압도적인 스테이크의 행진을 완벽한 승리로 이끄는 중원의 사령관은 단연 와인이다.
1천400m 안데스 고지대에서 빚어낸 '에스페란토 아 로스 바르바로스'(Esperando a los Barbaros).
낮의 살인적인 폭염과 밤의 혹한을 견뎌낸 고고도 와인은 쨍한 산도와 탄탄한 미네랄을 품었다.
오크 향으로 겉멋을 부리기보다 안데스의 거친 흙과 바람을 병 속에 날 것 그대로 부어 넣었다.
기름진 고기 한 점 뒤에 들이켜는 서늘한 와인 한 모금은 묵직했던 입안을 순식간에 씻어내며 또다시 고기를 향해 포크를 들게 만든다.
메시가 터뜨린 한 골과 잘 구운 스테이크 한 점, 그리고 와인 한 모금.
어쩌면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그 소박하고도 뜨거운 순간들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지도 모른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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