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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강국이었으나 스마트폰 보급 후 축구 인기가 압도적
전력난과 부의 양극화 속 창문 너머 TV 훔쳐보는 서민이 다수

[AFP=연합뉴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당신은 행복해질 필요가 있다."
쿠바 수도 아바나의 한 폐건물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 문구다.
미국의 잇따른 봉쇄 속에 전력난과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는 쿠바에서 주민들이 '월드컵'을 보며 잠시나마 시름을 내려놓고 있다.
쿠바 국영 TV가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중계하기 시작한 건 지난 13일(현지시간)부터. 개막한 지 이틀이 지나서야 조별리그 주요 16경기를 송출하기 시작했다.
중계가 시작되자 아바나 시내 곳곳의 작은 카페와 거리에선 브라질과 모로코의 경기를 보기 위해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최근 20시간 동안 정전을 겪은 이스마엘 베라네스 씨도 있었다.
아바나 국립극장에서 근무하는 그는 연료 부족으로 버스가 끊겨 매일 왕복 8㎞를 걸어서 출퇴근한다. 그는 "녹초가 돼 집에 가도 전기도 안 들어오고 더위와 모기 탓에 고통스럽지만, 월드컵이 이런 일상에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안식처가 돼 준다"고 했다.

[AFP=연합뉴스]
미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쿠바는 전통적인 야구 강국이지만 축구와는 그간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월드컵에도 1938년 단 한 차례만 출전했을 뿐이다. 그러나 '야구광'이었던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사망하고, 2018년부터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축구의 인기가 야구를 압도하고 있다.
이처럼 축구가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했지만, 누구나 월드컵 중계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쿠바는 공산주의 국가지만, 이미 빈부 차가 벌어질 대로 벌어져 서민들은 제대로 월드컵을 즐기지 못한다.
대다수 서민은 케이블 TV가 나오는 술집의 비싼 맥줏값을 감당하지 못해 길거리에서 창문 너머로 TV를 훔쳐본다. 반면, 민간 부문 성장으로 달러 소득을 올리는 일부 신흥 부자들은 아바나의 부유한 베다도 지역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월드컵을 즐긴다.

[AFP=연합뉴스]
고소득층도 전력난 탓에 월드컵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AFP통신은 고소득층이 많은 지역마저도 전력난 위기 여파를 피하진 못해, 경기를 보는 도중 TV 수신 화면이 수시로 멈춰서 축구 팬들의 탄식이 이어진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시청에 많은 제약이 있지만, 월드컵은 힘겨운 삶을 견디는 쿠바 주민에게 작은 위안을 안겨주고 있다.
생물학자 빅토르 디아스는 힘겨운 현실을 견디기 위해선 쿠바인들에게 도피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우리가 매일매일 감당해야 하는 모든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다"고 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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