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삶] "제발, 콘크리트 더미 안에 절 두고 그냥 가지 마세요"

입력 2026-11-09 06:01:01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 20대 여성 생존자 말과 눈빛 간절"


"화재진압 수당 25년간 8만원…적어도 25만원으로 인상 필요"

"소방관·군인·경찰에 국가의 충분한 예우 필요"…김상철 前소방관


[※ 편집자 주= 김상철 전(前) 소방관의 인터뷰 기사는 세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이 두 번째로 소방대원의 구조활동과 보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난 11월 3일 송고한 첫 번째 기사는 소방 예산에서 중앙정부의 비중이 10%에 불과한 데 따른 문제점 등이 주요 주제였습니다. 다음 주 이후에 나가는 세 번째 기사에는 소방관의 인사 문제, 구조적 문제 등이 들어갑니다. [삶]은 자서전적 인터뷰여서 개인의 스토리와 사진 등이 포함됩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김상철 전 소방관

[윤근영 기자 촬영]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1995년 6월 29일 저녁 퇴근 시간 무렵이었습니다. 갑자기 비상이 걸렸습니다. 강남의 삼풍백화점이 붕괴됐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중부소방서 구조대원으로서 동료들과 함께 현장에 즉각 달려갔습니다. 잔여 건물의 2차 붕괴 위험이 있었지만 우리는 곧바로 구조활동에 들어갔습니다.


백화점이 붕괴된지 1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습니다. 새벽에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사람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살려주세요" 같은 가냘픈 소리였습니다. 거듭 확인해보니 생존자가 있는 게 확실했습니다. 구조작업은 위험했습니다. 콘크리트 더미가 무너지면 그 생존자와 구조대원 모두가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로프를 허리에 매고 아주 조심스럽게 작업을 했습니다. 콘크리트 더미 안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면서 조금씩 전진해야 했습니다. 유압 스프레드를 이용해 공간을 만들고, 그게 무너지지 않도록 받침대로 괴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철근과 콘크리트 잔해물 등으로 인한 난관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1시간에 전진할 수 있는 거리는 길어야 30㎝에 불과했습니다.


드디어 누워있는 여성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몸은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지만 찰과상 외에 다친 데는 없어 보였습니다. 이를 확인한 나는 다시 나가려 했습니다. 앞에 장애물이 있었는데, 밖으로 나가서 이를 제거할 방법에 대해 상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 여성(20대)은 간절하게 말했습니다. "제발, 나를 여기에 두고 그냥 가지 마세요." 혹시 우리가 자기를 포기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나는 절대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반드시 구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20시간 넘게 작업을 해서 결국 그 여성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나는 구조 직후 쓰러졌고, 후송돼서 링거를 맞아야 했습니다.


이는 김상철 전(前) 소방관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10월 22일부터 세 차례 진행됐다. 인터뷰 장소는 인천에 있는 김 전 소방관의 사무실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소방관의 사명은 자기 목숨을 걸고서라도 시민의 생명을 구하고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것"이라면서 "소방관은 화재 현장 외에 교통사고, 산악사고, 항공기 사고, 산사태, 계곡과 강, 바다 사고, 태풍피해 현장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한다"고 했다.


김 전 소방관은 "소방관, 군인, 경찰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위험한 일을 헌신적으로 하는데도 국가로부터 홀대받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면서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사명감과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국가는 합당한 예우와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직 시절 김상철 소방관

[본인 제공]


김 전 소방관은 1967년 경기도 일산에서 태어났으며 이 지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특전사에서 5년간의 복무를 마친 그는 1992년부터 32년간 서울과 경기지역 소방서에서 인명구조, 화재진압, 소방 행정 등 여러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년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2001년 홍제동 화재 현장 등에서 구조활동을 벌였다.


김 전 소방관은 틈나는 대로 공부를 해서 한성대학교에서 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나는 대한민국 소방관 김상철입니다', '소방 행정학', '소방 지휘론', '소방 심리학'. '현대사회와 생활안전' 등을 출간하기도 했다.


2024년 서울 서초소방서에서 퇴직한 그는 현재 개인사업을 하면서 소방 문제를 알리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1995년 6월25일 삼풍백화점 붕괴 직후의 모습

[연합뉴스 사진]


다음은 인터뷰 2차 기사 질문-답변


--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중부 소방서 구조대로 활동했는데 그때 상황에 대해 말해달라.


▲ 백화점 붕괴 직후 우리 구조대원 10명은 긴급 출동했다. 거의 최초로 현장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아수라장이었다. 불꽃과 연기가 여기저기에서 피어올랐고, 찌지직 하는 전기 스파크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잔해물들이 계속 투두둑 하면서 떨어졌다. 우리는 지표면에서 20m가량 아래로 주저앉은 콘크리트 더미로 신속하게 내려갔다. 사다리도 설치되지 않은 상태여서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무너지지 않은 잔여 건물의 2차 붕괴 가능성이 우려됐지만 빨리 구조작업을 해야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45일간 인명구조와 시신 수습을 했다.


-- 구조작업이 체계적으로 잘 이뤄졌나.


▲ 초반의 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재난에 대한 대응과 지휘의 체계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휘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많아서 전체적인 통일성이 없었다. 구조대원들은 헝겊 마스크를 쓰고 일했으며,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잠은 거의 현장 아무 데서나 자는 식이었다.


-- 본인은 20대 여성을 직접 구조했다고 했는데.


▲ 백화점이 붕괴된지 1주일 정도는 지난 시점이었다. '기적의 생존자' 최명석(붕괴된지 11일 만에 구조), 유지환(13일), 박승현(17일) 씨가 구출되기 전이었다. 우리는 새벽에 콘크리트 더미를 순찰하고 있었다. 그때가 소음이 없는 시간이어서 생존자 목소리가 좀 더 잘 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주 희미하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사람이 있으면 한번 소리를 질러보세요"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랬더니 "살려주세요" 같은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한번 소리를 질러 보라고 했는데, 가냘프면서 끊기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생존자가 있는 게 분명했다.


-- 구출작업이 시작됐나.


▲ 일단 윗선에 생존자가 있다고 보고했다. 외부에는 비밀로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 사실이 공개되면 언론사 기자들도 몰려오고 해서 현장이 매우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주 조심스럽게 생존자한테 접근해야 했다. 자칫하면 콘크리트 더미가 무너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몸 하나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정도로 공간을 확보한 뒤 받침대로 괴고 다시 공간을 만드는 식으로 해서 앞으로 나갔다. 작업에는 유압 스프레드 등의 장비를 사용했다. 그렇지만 1시간에 30센티미터도 전진하기 어려웠다. 많은 철근을 잘라내고, 콘크리트 잔해물들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두 작업은 내가 담당했다. 가장 호리호리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995년 7월7일 구조대 실종자 발굴작업 모습

119구조대원들이 무너진 삼풍백화점 3층 상판 아래를 파고 들어가 실종자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 결국 생존자한테 도달했나.


▲ 잔해물을 전달-전달-전달 방식으로 빼냈고, 필요한 장비는 같은 방식으로 받았다. 이렇게 해서 나는 어렵게 생존자 부근에 도달했는데, 그는 고개를 돌리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콘크리트 구조물이 위에서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발가락을 움직여 봐라. 어떠냐?", "손가락은 움직여지느냐?", "불편한 데 있냐?"고 물었다. 다행히 그는 찰과상 외에 크게 다친 데는 없는 듯했다. 나는 "살아야 한다", "집이 어디냐?", "나이는 몇살이냐?"라고 하면서 계속 말을 시켰다. 그가 의식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완전히 접근했을 때는 어떻게 했나.


▲ 물건을 건네줄 수 있는 정도의 거리로 근접했을 때 물수건을 줘서 그걸로 입술을 적시도록 했다. 그리고 작은 플라스틱 생수병을 주고는 한꺼번에 마시지 말고 일단 입을 헹구라고 했다. 그다음에 물을 흘리듯이 해서 아주 조금씩 마셔보라고 했다.


--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그 여성과 나눈 대화 가운데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 그는 "진짜 진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그는 기진맥진한 상태여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눈빛은 매우 간절했다. 그는 우리가 자기를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갖고 있었다. 나는 "반드시 구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그 여성은 구조작업 20여시간 만에 콘크리트 더미에서 나왔다. 백화점이 무너진 지 1주일이 넘은 시점이었다.




20대 여성 구조 직후의 김상철 소방관(붉은 옷에 턱에 마스크를 한 사람)

[본인 제공 사진]


-- 삼풍백화점 붕괴로 인명피해가 매우 컸는데.


▲ 502명이 죽고, 6명이 실종됐다. 부상자는 937명에 달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단일 사고 중 인명피해가 가장 컸다. 백화점 측은 완전 붕괴 1시간 전에 위험 신호가 뚜렷하게 있었는데도 사람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다. 백화점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까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때 서둘러 사람들을 내보냈다면 인명 피해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 한국이 이 사고로 얻은 교훈이 있다면.


▲ 교훈을 못 얻은 것 같다. 그 이후에도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여러 대형 사고가 계속 일어났지 않았는가? 형태는 다르지만 결국 비슷한 이유로 발생한 재난들이다. 삼풍백화점 사고는 근원적으로 안전 불감증에다 생명보다는 돈을 중시하는 태도에서 비롯됐다. 정경유착, 부실 공사, 공무원들의 안일함 등 여러 요인도 있었다.


-- 현장에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봤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는 무엇인가.


▲ 붕괴 현장에서 어떤 사람은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그를 멈춰 세워놓고 보니 양복바지를 7벌이나 입고 있었다. 도둑질이었다. 어떤 사람은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나갔다. 마치 촬영 나온 기자인 척하면서 훔쳐 가는 것이었다. 현금지급기들이 부서져 있었고, 백화점 상점에 있었던 귀금속들이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침수 현장서 수색하는 119 구조대

2025년 7월 17일 오후 대구 북구 노곡동에서 119구조대가 보트를 타고 인명 수색을 하고 있다. 이날 갑작스러운 폭우로 노곡동 일대가 침수됐다.
[연합뉴스 사진]


-- 소방관의 업무는 화재진압 외에도 매우 다양한 듯한데.


▲ 소방관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한다. 불길 안의 사람뿐 아니라 물에 빠진 사람도 구조한다. 나는 서울의 정릉 계곡에 물난리가 났을 때 급류에 떠내려오는 사람을 들어 올린 적이 있다. 사람이 떠내려가고 있다는 말을 듣고 119 구조공작차 크레인에 20분간 매달린 채 기다려서는 그 사람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재난이 아니어도 여름철 한강에 빠지는 사람들이 꽤 있다. 술에 취해서는 수영으로 한강 건너기 내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무모한 행위를 안 했으면 좋겠다.


-- 산악 구조도 많이 한다고 했는데.


▲ 맨손으로 암벽을 오르다 추락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안전하게 데려오는 것도 구조대원들의 일이다. 슬리퍼나 구두를 신고 산에 오르는 사람, 술을 먹고 산행하는 사람, 함부로 야간 산행을 하는 사람, 등산로가 아닌 곳으로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분들은 위험한 상황에 빠질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산에 간다면 등산 복장을 제대로 갖추고, 안전한 곳으로 다녀야 한다. 산을 만만하게 봤다가 구조 요청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휴대전화가 안 되는 위치에서 고립되면 더욱 위험해진다.


-- 또 다른 소방서 구조 영역이 있다면.


▲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을 찌그러진 차 안에서 꺼내는 일도 한다. 하수구에 빠진 시민과 반려동물을 구출하기도 한다.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도 있다. 소방대원은 벌집과 대형 고드름을 제거하기도 하는데, 쉬운 일로 보이지만 그 위치에 따라 작업이 위험할 수 있다. 고독사한 분의 집에 들어가 수습하는 것도 소방서 구조대원들이 한다. 이 밖에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여러 일들을 소방대원들은 수행한다.


-- 그 예를 든다면


▲ 어떤 도둑은 가정집에 들어가 돈을 훔쳐 나오다 담과 담 사이에 몸이 끼여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몸이 압박받으니 피의 흐름이 원활치 못했고, 그 결과 몸이 부분적으로 부어서 더 강하게 끼인 상황이었다. 나는 유압장비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담을 부분적으로 파괴해 그 도둑을 구출했다. 물론 그 도둑은 경찰에 넘겼다.




김상철 소방관이 성동 경찰서장으로부터 받은 표창장

[본인 제공]


-- 본인은 인질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고 했는데.


▲ 한번은 서울의 OO 아파트로 출동했다. 이번에는 인질 사건이었다. 현장에 가보니 복도식 아파트의 복도 끝에서 50대 남자가 같은 나이대의 여성을 잡고는 흉기를 들이대고 있었다. 옆에는 그가 갖다 놓은 LPG 통이 있었다. 이런 위험한 상황이 20분 정도 지속됐지만 경찰은 해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 우리 구조대가 움직였다.


-- 어떻게 했나.


▲ 경찰은 그 사람의 주의를 끌기 위해 조금씩 접근하면서 일부러 큰 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 사이에 동료 대원과 나는 그 위층으로 몰래 올라갔다. 그리고 동료 대원이 역레펠(Inverted Rappel) 방식으로 밧줄에 거꾸로 매달려서 몰래 내려갔다. 머리만 약간 내밀어 시야를 확보한 동료 대원은 그 사람이 어떤 자세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나한테 알려줬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상황을 머릿속에 그린 뒤 유리창을 깨고 점프하면서 그를 제압했다. 이는 특전사 시절 대(對) 테러 훈련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동료도 특전사 출신이다.


-- 인질 사건 해결도 소방서 구조대의 업무 영역인가.


▲ 그 자체는 구조대 업무가 아니다. 우리가 출동한 것은 사람이 다치거나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업무에서 월권했으니 나는 소방서에 돌아와서 윗분한테 한 소리를 들었다. 그렇지만 심하지는 않았다.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일로 성동경찰서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소방대원이 경찰서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고(故) 김진석 소방위 영결식에서 경례하는 소방대원들

2026년 10월 17일 화재 진압 중 순직한 부천소방서 '故 김진석 소방위 영결식'에서 동료 소방대원들이 운구행렬에 경례하고 있다.
[공동 취재 사진]


-- 소방관들은 위험한 일을 하는 데 비해 보상이 너무 작다고 생각하는 시민들도 꽤 있는데.


▲ 2001년 홍제동 화재 사건으로 내 고향 친구 장석찬(당시 서부소방서 구조대원)을 포함해 소방관 6명이 순직했다. 그 장례식장에 OOO 당 대표와 최고 위원이 왔다. 그때 난리가 났다. 소방관들은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은 말로만 소방관을 위한다고 하면서 그동안 뭐 했느냐"면서 거칠게 항의했다. 소동이 진정됐을 때 나는 그분들을 마주하고 앉아서는 소방관들의 화재진압 수당 인상 등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당시 인상이 됐나.


▲ 당시 여론도 고조되고 해서 화재진압 수당은 4만원에서 8만원으로 올랐다. 그런데 그 이후 25년간 한 번도 인상되지 않았다.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적어도 25만원 정도로는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도 하루에 1만원꼴도 안 되는 금액이다.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보상해주는 게 맞다고 본다.


-- 본인은 한국에서 제복 입은 사람이 홀대받는다고 했는데.


▲ 나는 군인으로서 5년, 소방관으로서 32년간 근무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게 있다. 소방관과 경찰, 군인 등 제복을 입은 사람이 목숨을 바치면서 헌신적으로 일하는데도 이에 합당한 대우를 못 받는다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국가 돈으로 술과 고기를 먹고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하기도 한다. 사적 이익을 위해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기도 한다. 그러면서 목숨을 걸고 일하는 소방관, 경찰, 군인들에게는 함부로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존중도 없고 대우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니 제복을 입은 사람이 좌절에 빠질 수밖에 없다.


-- 정부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 이미 언급했지만, 사망한 소방관에게 영웅이라고 칭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소방관들이 살아 있을 때 합당한 대우와 예우를 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 소방관 문제 전반을 다루는 TF(태스크포스)를 만들었으면 한다. 정부 관료 뿐 아니라 현직 소방관, 외부 학계 인사와 전문가 등이 두루 참여해서 소방 관련 복지, 행정, 정책 등 여러 분야에서 문제와 해결책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토론했으면 한다.


(인터뷰 2차 기사 질문-답변 끝)




김상철 전 소방관의 저서 '현대사회와 안전문화'

이 책은 단순한 가이드라인을 넘어 30여년간 현장 경험을 토대로 작성한 실생활 안전 지침서라고 저자는 전했다.
[본인 제공 사진]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내 친구 소방관 양주먹 꽉쥐고 숨져…방화복 없어 방수복 입고"(11월3일)


2001년 홍제동 화재로 소방대원 6명이 순직했다. 당시 소방대원들은 방화복이 아닌 방수복을 입고 진화작업을 했다. 특수장갑, 특수화, 특수장갑, 특수헬멧을 착용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신발은 고무장화여서 못 등에 의해 쉽게 뚫렸다. 헬멧은 오토바이용 수준이었고, 장갑은 면으로 만든 흰색 목장갑이었다. 전국 대부분의 소방대원이 이러했다.


현재 소방대원의 복장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상태이지만 예산 부족으로 초래되는 전반적인 위험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소방관이 죽은 다음에 아무리 큰 훈장을 주고 보상금을 많이 제공해도 사망한 사람은 다시 살아오지 않는다.


소방관이 안전해지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방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전문교육, 장비 교체 등을 제대로 해야 한다. 예산확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예산 비율을 현재의 10%에서 90%로 끌어올려야 한다. 2020년 소방직을 국가직으로 전환했으면 이에 합당한 조치를 해야 하는데,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keunyoung@yna.co.kr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5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연합뉴스 콘텐츠 더보기

해당 콘텐츠 제공사로 이동합니다.

많이 본 최근 기사

관심 많은 기사

실시간 검색어

2026-11-09 08: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