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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역발상의 힘' 김밥축제…13만 소도시의 유쾌한 성공

입력 2026-11-08 0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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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밈'을 지역축제 모범사례로 승화…3년 연속 초과 방문 성황


역발상·수요자 마인드·약점 보완으로 민심 잡기…눈총받은 여수섬박람회와 대조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지방자치제도가 뿌리내리면서 많은 기초단체에서 지역 축제를 만들었지만 외면받기 일쑤였다. 진부한 전시성 행사란 선입견이 생겼고 일부는 예산 낭비 사례로도 지목됐다. 실패 원인으로는 공무원 중심 '공급자 마인드'가 가장 많이 꼽힌다. 진부한데 관공서 입장에서 안전해 보이는 기획안들이 주로 결재선을 통과하니 지역별 특색도 희미한 천편일률 행사들이 즐비하다. 어딜 가든 지역 특산물 판매와 트로트 가수 공연이 결합한 형태가 반복되니 굳이 멀리 지역 축제를 찾을 이유가 사라진다.


얼마 전 세 번째 행사를 성황리에 마친 김천 김밥축제는 그래서 돋보인다. 지역 축제가 되풀이한 고질병들을 답습하지 않고 뒤집는 신선한 역발상으로 성공담을 쓰고 있다. 단순히 지역 축제 모범 사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방행정이 지향할 본보기로 거론된다. 심지어 인구 13만여 명의 이 지방 소도시가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며 보여준 행정력을 오히려 중앙정부가 배워야 한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2026 김천김밥축제, 개막 첫날부터 '북적'

(김천=연합뉴스) 23일 경북 김천시 직지문화공원·사명대사공원·친환경생태공원 일원에서 개막한 2026 김천김밥축제에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2026.10.23 [김천시 제공.재판매 및 DB금지]


김밥축제는 탄생부터가 역발상의 산물이다. 사실 경북 김천 특산물은 자두이고, 김밥은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데 김천시의 젊은 층 인지도 조사 과정에서 '김천 하면 떠오르는 것'으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의외로 '김밥천국'이었다. 줄임말을 즐기는 요즘 젊은이들은 프랜차이즈 김밥천국을 '김천'으로 줄여 말하는데, 정작 김천이란 도시는 잘 몰랐다. 어찌 보면 굴욕적인 밈(meme)이지만, 김천시 공무원들은 생각을 뒤집었다. "박힌 이미지는 못 바꾼다. 그렇다면 차라리 역이용해 고장을 알리자."


그래서 김천시는 진짜 '김밥의 천국'을 만들기로 했다. '김천=김밥천국' 농담을 현실로 구현한 것이다. 2024년 제1회 김천 김밥축제는 그렇게 시작됐다. 아무 상관 없는 김밥을 고장의 얼굴로 내세우는 모험이었다. 주최 측도 축제가 잘 될 수 있겠냐는 의구심을 완전히 지울 순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첫 행사 예상 방문객을 최대 2만 명 정도 잡고 준비했다. 그런데 웬걸. 예상치만 와도 성공인데, 그 5배가량인 약 10만 명이 몰려왔다.


당연히 여러 문제가 터졌다. 첫날 낮부터 재료가 떨어진 부스가 속출했고, 둘째 날 역시 오후 2시께 김밥 판매가 종료됐다. 화난 방문객들로부터 "김밥지옥", "김밥 없는 김밥 축제" 등 비난과 조롱이 쏟아졌다. 한정된 판매 부스에 인파가 몰리자 김밥 한 줄 사려고 많게는 2시간씩 줄을 서야 하는 현상에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당연히 교통 문제도 불거졌다. 진입로가 마비되고 배치된 셔틀버스도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다.


정말 주목할 건 이 대목이다. 보통 이런 문제들이 동시다발로 터지면 숨기기에 급급하거나, 비난 여론에 놀라 행사가 폐지되는 게 다반사다. 그런데 김천시는 달랐다. 실책과 혼란을 숨기지 않고 모두 인정한 뒤 문제점을 보완해 이듬해 두 번째 행사를 열었다. 제2회 축제에선 판매 부스를 4배 늘리고 고속 생산 기계를 갖춘 '김밥 공장'도 설치했으며, 부스별 실시간 재고를 알리는 전광판까지 달았다. 셔틀버스는 5배나 증차했다. 불편했다는 피드백을 일일이 받아 개선하고 나니 첫해와 달리 "돈과 시간이 안 아깝다"는 극찬까지 나왔다.


당황스러운 건 이처럼 넉넉히 준비했는데도, 두 번째 축제 때에도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인파가 들이닥쳤다는 점이다. 무려 10만 명분 김밥을 준비했지만, 15만 명이 몰려왔다. 김천 인구마저 넘었으니 사실 도시 전체 수용력을 초과한 셈이다. 이번에도 인기 부스는 오전에 재료가 소진됐고, 교통 혼잡도 심했다. 하지만 김천시는 거듭된 위기를 신속한 현장 대처로 잘 넘겼다. 김밥 공장을 최대치로 가동하고 전광판과 모바일 공지 등을 통해 재고가 남은 곳으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덕분에 김밥을 못 먹고 돌아가는 사례는 사라졌다.




김천은 지금 김밥 축제 중

(김천=연합뉴스) 23일 경북 김천시 직지문화공원·사명대사공원·친환경생태공원 일원에서 개막한 2026 김천김밥축제 현장 모습. 2026.10.23 [김천시 제공.재판매 및 DB금지]


올해 3회 축제는 어땠을까. 김천시는 드러난 약점을 더 보완해 행사 기간을 사흘로, 행사장도 세 곳으로 늘렸다. 셔틀버스도 10대 증차하고 수요응답형(DRT) 전용 택시도 도입했다. 판매 부스를 포함한 참여 업체도 전년보다 약 70% 이상 많아졌다. 예상 방문 인원을 무려 15만명으로 넉넉히 잡은 데 따른 조치다. 그랬는데도 또 예상치를 넘는 17만 명이 전국에서 모였다. 하지만 기간을 하루 늘리니 인파가 분산됐고 스마트 주문·결제 도입으로 대기 시간도 줄자 이번엔 큰 차질이 없었다.


이런 광경은 최근 폐막한 여수세계섬박람회가 국비 포함 총사업비로 무려 700억 원 이상을 쓰고도 부실 행사로 비난받은 것과 대비된다. 관람객 흥미에 집중한 김밥축제와 달리 섬박람회는 지자체 치적 홍보와 과대 서사에 치우친 공급자 마인드로 논란을 불렀다. 김밥축제가 구조물 건설 대신 마스코트, 기념품, 이색 메뉴 등 아이디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한 것과 달리, 섬박람회는 토목공사에 거액을 쓰고도 빈곤한 콘텐츠와 허술한 연출로 빈축을 샀다. 게다가 불만과 민원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컸다. 섬박람회는 시작부터 콘텐츠 부실, 교통·운영 허점, 바가지 문제 등이 불거졌는데도 보완 대신 변명과 책임 회피로 일관해 민심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역발상, 수요자 마인드, 투명하고 신속한 민원 대처, 철저한 복기와 보완이 만든 소도시 김밥축제의 성공 사례는 다른 지자체는 물론 중앙 부처들도 배울 게 많다. 무관한 소재로 지역 경제를 살릴 행사를 만들고, 이를 성공적으로 지속하는 건 쉽지 않아서다. 심지어 지역 이미지를 실추하는 밈을 수익성 사업으로 탈바꿈시킨 건 후한 평가를 줄 만하다. 무엇보다도 지자체 특유의 '특산물 집착'과 엄숙한 공직사회 분위기에서 탈피해 젊은 층의 'B급 감성'을 과감히 수용한 건 지금 돌아봐도 놀랍다. '자두 축제' 대신 '김밥 축제'를 택한 김천의 결단은 현재 순항 중이다.




김천 김밥축제에서 파는 다양한 김밥 요리

[김천시 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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