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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서 의병투쟁·군자금 모집…2008년 건국훈장 추서

1912년 8월 12일 간도 소영자 중학교 교원과 학생들. 앞줄 오른쪽에서 3번째가 백규삼 성생. [독립기념관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안중근 의사와 함께 조국 독립을 맹세하고 연해주와 중국 동북지역에서 무장투쟁과 민족교육에 헌신한 독립운동가 백규삼(1873∼1917) 선생의 항일 행적이 재조명되고 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공동 추진하는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 및 지원사업'의 34번째 인물로 백규삼 선생을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함경북도 명천군 출신인 선생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러시아어와 중국어에 능통해 연해주와 중국 동북지역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1908년 7월 안중근 의사가 연해주에서 의병부대를 결성하자 지휘부에 참여했고, 같은 해 8월에는 의병 200여 명과 함께 국내 진입 작전에 나서 함경북도 경원군 일대 일본군을 공격했다.
이후 회령 영산 전투에서 패해 연해주로 돌아온 그는 1909년 초 연추에서 안중근·김기룡 등과 함께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는 단지동맹에 참여했다.
항일단체 동의회 서기로도 활동한 그는 1909년 10월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이후 안중근유족구제회를 조직해 성금을 모으고 구명운동을 벌였다.
당시 블라디보스토크 자택에는 단지동맹 관련 문서와 혈서로 쓴 대한독립기 등을 보관해 이를 참배하려는 한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후 훈춘·연추·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영사관과 헌병대 습격을 계획했으며, 1911년에는 연해주 한인 민족운동 단체인 권업회 설립에도 참여했다.
민족교육에도 힘썼다. 1912년 훈춘 한인기독청년회 교육과장을 시작으로 부회장과 회장을 지내며 청년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이동휘·황병길 등과 협력해 독립군 양성을 위한 기반 마련에도 나섰다.
선생은 1917년 1월 7일 훈춘에서 폐병으로 숨졌다. 정부는 공훈을 인정해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나 현재까지 후손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백 선생의 삶이 연해주 한인사회의 조직적인 항일투쟁과 연대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과 역사 기록사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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