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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와 접점 없던 튀르키예 학자 "내 연구물이 학과 영향력에 기여" 제안
"모르는 학자가 학과 명의를" 교수의회서 반발 목소리…교육부는 '뒷짐'

[고려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양수연 기자 = 고려대 한 학과 교수들은 지난 6월 학과로 날아온 이메일에 당황하고 말았다.
생경한 학자의 뜬금없는 제안이 적혔기 때문이다.
그는 튀르키예의 한 대학 조교수였다. 5년 전부터야 학술 데이터베이스 스코퍼스에 논문을 내기 시작한 신진 학자였다.
상위 25%에 드는 저널에 7개 논문을 냈다는 둥 지난해 성과를 줄줄이 읊은 그는 "연구물에 (고려대) 해당 학과 소속이라고 기재해도 되는지 정중하게 문의한다"고 했다.
이어 "내 연구 생산성이 학과의 인지도와 영향력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허락해준다면 출판 예정인 4편에 즉시 소속을 추가할 준비가 돼 있다. 앞으로 모든 연구물에도 기꺼이 소속을 넣고자 한다"고 제안했다.
문제는 그가 공동연구나 초빙이력 등 고려대와 접점이 없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19일 연합뉴스가 확보한 이메일에는 이처럼 다소 황당한 '소속 표기 제안'의 배경을 짐작할 대목도 들어있었다.
이 학자가 또 다른 튀르키예 대학 소속의 A교수와 B교수를 언급하며 "이들과 적극 협업해 여러 공동 프로젝트를 하고 있거나 준비 중"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A·B교수는 고려대 'K-클럽' 구성원으로 확인됐다.
K-클럽은 고려대가 '전 지구적 문제 해결'을 내걸고 180여명의 외국 다작·고인용 연구자를 2023년 하반기부터 영입한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비전임으로 정규 급여는 없다. 대신 고려대 소속이 적힌 논문을 내면 저널 수준에 맞춰 인센티브가 쌓이는 구조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기사와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입니다.
학교 측도 연구물에 소속처를 고려대로 표기할 것을 요구한다.
연합뉴스가 확인한 계약서는 별도 급여 설명은 없으나 이 같은 조건과 함께 상응하는 인센티브 언급이 담겼다.
지난 2월 기준 A교수는 5천여만원, B교수는 2천여만원 상당의 인센티브를 확보했다.
고려대는 K-클럽이 국제 협력 규모를 키우려는 취지로 구상돼 실질적 학술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대학 내부에서는 단기간 대규모 외부 인력이 '느슨한 고용관계'로 영입된 데 대해 의심스러운 시선이 따른다.
명분으로 내세운 연구 교류 성과도 아직 제한적으로 관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스코퍼스 기반 연구성과 프로그램 '사이발'(Scival) 분석에 따르면 A교수는 지난달까지 고려대 소속이 기재된 논문 76편을 냈지만, 국내 교원과 협업한 논문은 한 편도 없었다.
B교수도 역시 32편을 냈으나 사이발에는 국내 교원과의 공저 연구물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가 입수한 전임 교원들의 대의 기구인 '교수의회'의 지난 6월 회의록에는 이에 대한 반발이 담겼다.
당시 한 교수 의원은 "우리 학과 소속이라 밝히는 연구자들이 논문을 제출하고 있는데 학과는 아무 정보도, 소속을 승인한 적도 없다"며 "모르는 연구자들이 학과 명의를 쓸 뿐 아니라 서슴없이 명의를 쓰겠다고 요청하는 메일을 받는다"는 취지로 성토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임시 회의에서는 학부대학장 후보자 임명이 부결됐다. K-클럽 학자 다수가 학부대학 소속임이 문제로 부각됐다.
실질적 연구 협력을 위해 엄격한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들 학자를 단과대·학과 소속으로 임용한다는 학교 설명과 배치되는 정황이었기 때문이다.

[고려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당시 후보자는 관련 질의에 "학부대학이 K-클럽과 연결된 건 일종의 행정적 편의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소관 부서가 아니라 책임 있는 답변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러한 내부 반발 분위기 속에서도 고려대는 프로젝트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정면 돌파'를 선언한 상태다.
학교 측은 그달 교수의회에 "구성원 의견을 반영해 K-클럽이 연구 경쟁력 강화·국제적 위상 제고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도록 내실을 다지겠다"고 회신했다.
다만 교수의회가 요구했던 구체적인 운영 실태는 공개하지 않았다.
고려대가 2023년 하반기부터 동시다발로 영입한 이들 외국 학자군은 지난해 1천∼2천편가량 논문을 스코퍼스에 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스코퍼스에 지난해 고려대 학술 성과로 귀속된 저널 및 리뷰 논문 규모가 8천707편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비중이다.
전년(6천601편) 대비 2천여편 급증으로, 증가분의 절반 이상이 K-클럽 몫으로 조사된 것이다.
K-클럽이 본격 가동된 지난해부터 올해 10월 현재까지 사이발 데이터상 가장 많은 논문을 낸 고려대 교원은 역시 튀르키예 출신 수학자로 200편가량을 출판했다.
2위는 쿠웨이트의 한 대학에 본 소속을 둔 공학자로 192편을 실었다.
3·4위는 국내 교원이었고, 5위는 세르비아 수학·컴퓨터공학 석학으로 150편이었다. 나흘에 한 편꼴로 논문을 쓴 셈이다.
앞서 교육부는 고려대 등을 상대로 이러한 '학술용병 실태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학교 측이 제출한 K-클럽 고용관계·실적 자료를 형식적으로 검토했을 뿐 의혹의 본류인 양적 성과 비중과 지표 기여도 실태를 외면하는 등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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