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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고위험 직종

입력 2026-10-14 08: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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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결말' 더 많았던 대통령직…위험하나 갖고픈 욕망의 블랙홀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세상에는 꽤 위험한 직업군들이 있다. 업무를 수행하다 죽거나 다치고, 회복하기 어려운 질병에 걸리거나 과실로 감옥에 갈 확률이 다른 직종보다 비교적 높은 직업들이다. 예를 들면 군인, 소방관, 경찰, 건설 현장 근로자, 어부, 고압선 작업자, 용광로 작업자 등 실제로 사고 위험이 큰 현장에 투입되는 직종이다.




탄광 붕괴 대비 훈련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정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업무와 관련돼 죽거나 다치거나 병에 걸린 사람을 뜻하는 산업 재해율은 1천명당 6.5명 수준이었다. 업종별 재해율을 보면 광부 및 채석장 인부가 1천명당 17명 안팎으로 가장 높았다. 전체 평균의 3배 가까운 수준이다. 그다음으로 원양·연근해 어부가 1천명당 14명에 육박했다. 운수·창고·배달업 종사자들도 1천명당 10명이 넘었다. 벌목공, 건설현장 근로자, 음식 조리업 등도 높은 재해율을 보였다.


신체 위험을 겪을 확률은 낮지만, 판단 착오나 한 순간 실수로 실형을 살 위험이 높은 직종도 있다. 의사가 대표적이다. 특히 응급의학과, 외과, 산부인과 의사들은 응급 처치나 수술 중 환자 사망 시 업무상 과실죄로 구속되거나 민사 소송에 휘말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건축·토목 기술사와 감리원도 대형 건축물, 교량, 터널 붕괴 사고 시 설계 오류나 감리 부실 혐의로 구속 및 수감 대상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광부, 화학물질 취급자, 고층 건설 현장 작업자, 어선 선원, 철로 정비 및 궤도 작업자 등은 사상, 직업병, 형사 처벌이라는 3대 위험을 모두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업무 수행과 관련해 절반이 훨씬 넘는 확률로 나쁜 일을 겪는 직업이 있다면 믿어지는가. 가장 위험한 직종으로 조사됐던 광부 및 채석장 인부가 업무상 재해를 당할 확률이 1.7%였는데, 평균 10명 중 6명꼴로 비극에 휘말린다면 이 직업은 누구나 기피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직업은 우리나라에서 최고 명예직으로 여겨지며 많은 사람이 이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한다. 바로 대한민국의 국가 원수인 대통령직이다.


헌정사에서 13명의 전직 대통령이 이 자리를 거쳐 갔는데, 이 가운데 절반을 훌쩍 넘는 8명이 재임 중 했던 일들이 불씨가 되어 사망, 탄핵 파면, 하야 및 망명, 형사 처벌 및 수감 등 비극을 겪었다.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뒤에 신변에 이상이 없었던 전직 대통령 5명 중에서도 2명은 임기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사실상 임시 대통령 격이었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고위험 직종을 넘어 신변 이상을 각오하고 맡는 극한 직업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앞에 놓인 낙하산 10개 중 6개가 안 펴질 게 예고돼 있다면, 거액을 준다고 해도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거의 모든 현업 정치인과 지망생들이 꾸는 꿈의 종착역은 대통령이다. 대선 시즌마다 각 당 거물급이 큰 비용은 물론 경쟁 과정에서 입을 상처와 고초를 각오하고 이 험한 직업에 도전한다. 왜 이런 이상한 현상이 계속되는 걸까.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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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위험 경감 편향'(Optimism Bias) 이론으로 이를 설명한다. 인간은 자기에게 나쁜 일이 생길 확률을 실제보다 훨씬 낮게 보는 낙관 편향성과 자아도취 성향이 있다. '전직 대통령들이 감옥에 간 건 본인들이 잘못했거나 무능했기 때문이지만, 나는 그들과 다르게 완벽한 치세로 성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현실적 위험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권력을 강하게 갈구하는 인물들에게서 '어둠의 삼합체'(Dark Triad) 특성이 두드러진다는 연구도 있다. 어둠의 삼합체는 나르시시즘(자기애), 마키아벨리즘(권력목적우선주의), 사이코패시(반사회적 냉혈성)라는 3대 성향이 동시에 합쳐졌다는 뜻이다. 이런 성격의 인물은 자신을 '역사와 국가를 바꿀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로 여기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그 과정에서 다가올 위험에 대한 공포와 중압감도 일반인보다 덜 느낀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의 날개' 이야기도 떠오른다. 이카로스는 너무 높게도 낮게도 날지 말고 중용(中庸)을 지키라는 부친의 경고를 무시하고 눈 부신 태양을 향해 더 높이 날아오르다 날개를 고정한 밀초가 녹아 추락했다. 한계를 잊고 신의 영역인 태양에 가까이 가는 과도한 탐욕으로 자신을 파멸시킨 것이다. 우리 전직 대통령들 상당수도 초고위험 직종을 택한 대가를 혹독히 치렀다. 어찌 됐든 국가를 통치한 대통령들의 비극은 우리 헌정사의 비극이며, 이는 당연히 우리 국민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앞으로는 해피 엔딩이 계속되길 바랄 뿐이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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