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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미래 돕도록 하는 노력 계속…소모적 논쟁은 경계해야

[촬영 안 철 수] 2025.2.19, 세종문화회관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선임기자 = 1895년 10월 8일. 지금으로부터 131년 전 오늘은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의 왕비 명성황후가 시해된 날이다. 조선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하려던 일본은 러시아와 가까워지는 조선의 중심에 명성황후가 있다고 판단하고 제거에 나섰다.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군 경성수비대와 낭인들이 경복궁 안에 있는 건청궁 곤녕합에 난입해 '국모' 명성황후를 참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 일제는 이후 증거 부족을 이유로 관련자들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아직도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을미사변'으로 불리는 이 참극은 항일의병 봉기의 원인이 되었으며, 고종이 이듬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역사적 비극은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다. 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논쟁과 다양한 기억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싸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주장과 예술적 창작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이 역사 왜곡 논란 속에서 관객 수 200만명을 돌파했다. 4일 영화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암살자(들)'은 3일까지 누적 관객수 204만 명을 넘겼다. 이로써 올해 개봉한 작품 중에 9번째로 200만명을 넘긴 작품이 됐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영화관에 걸린 '암살자(들)' 포스터. 2026.10.4 jin90@yna.co.kr
영화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재일교포 문세광이 박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과정에서 육 여사가 총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을 소재로 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가미해 풀리지 않은 의문점을 중심으로 진실을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야권에서는 영화가 박 대통령의 암살 기획 음모론을 띄워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영화 상영 중단이나 외국 영화상 출품 금지 요구에다 출연 배우들에 대한 항의 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다.
두 사건의 성격은 다르다. 하나는 국가가 주도한 주권 침탈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테러 성격을 띤다. 그러나 국제 정세와 국내 정치의 격랑 속에서 국가 지도자의 배후자가 희생됐다는 점에서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공유한다.
구한말 일본의 침략 야욕 속에서 열강 세력을 끌어들이며 주권 수호를 모색하던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참살당한 비극은, 주권이 흔들리고 국력이 약할 때 국가와 국민이 어떻게 짓밟히는가를 보여준 뼈아픈 역사로 기록됐다.
육 여사 피격 사건에 대해, 당시 한국 정부는 문세광이 일본 내 조총련의 지원과 북한의 지령을 받아 범행한 것으로 발표했으나, 일본 정부는 연계 사실을 부인하며 양국 갈등이 고조되기도 했다.

(옥천=연합뉴스) 박건영 기자 = 시민들이 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고 육영수 여사의 충북 옥천 생가에서 역사 왜곡 논란을 빚고 있는 영화 암사자(들)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2026.10.5 pu7@yna.co.kr
두 사건은 모두 국민적 감정에 커다란 상흔을 남겼다. 비극의 역사는 학술적 연구, 문학이나 영화와 같은 예술로 거듭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더 밝혀야 할 사실을 찾고, 잊혀가는 기억을 미래 세대에 되새겨주고 있다. 과거가 미래를 돕도록 하기 위한 일들이다.
지금 우리는 역사적 비극 앞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정치적 진영으로 가르기 위해 쌓은 벽에 갇혀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역사적 사실은 사실대로 밝히고, 해석은 자유롭게 하되 정치적 이해관계가 사실 자체를 압도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역사 논쟁 그 자체가 아니라, 짜놓은 갈등 구조에 역사적 사실을 마음대로 대입해서 정쟁의 도구로 삼는 소모적 논쟁이다.
h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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