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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범의 AI 혁신 스토리] 대학, AI 금지보다 평가를 바꿔라

입력 2026-09-29 09: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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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서울대, AI 시대 융합보안 인재 육성 협력

(서울=연합뉴스) 박윤영 KT 대표이사(왼쪽)와 서울대학교 유홍림 총장이 지난 19일 서울대학교 총장공관에서 열린 AI 정보보안 분야 인재 양성 및 산학 연구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6.5.20 [KT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끝)


앞선 두 편의 칼럼에서 필자는 초·중·고 교육에서 학생의 성장 단계에 따라 인공지능(AI)과의 거리를 달리해야 한다고 썼다. 인간이 먼저 갖춰야 할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서 AI의 답을 검증하는 법을 익히고, 지식과 판단력이 충분히 쌓인 뒤에야 AI와 함께 더 복잡한 문제에 도전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대학에서는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필자는 대학의 AI 사용 원칙을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에서 '원칙적 허용, 필요한 경우 제한'으로 바꿀 때가 됐다고 본다.


아무 때나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학생이 반드시 스스로 해내야 하는 학습, 개인정보와 보안이 걸린 작업, 연구 윤리상 별도 통제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제한이 불가피하다. 다만 뚜렷한 교육적·윤리적 이유 없이 AI를 썼다는 사실만으로 학생을 의심하는 시각은 이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2024년 기준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조사에서 4∼6년제 대학생 726명 가운데 91.7%가 과제나 자료 검색에 AI를 써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전국 131개 대학 중 71.1%는 생성형 AI 가이드라인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다.


◇ AI를 막기보다 과제를 바꿔야


원칙을 이렇게 바꾸면 곧바로 불편한 질문과 마주한다. 지금의 과제와 평가 방식을 그대로 둘 수 있느냐는 것이다.


AI가 몇 분 만에 써내는 요약문이나 보고서, 정형화된 코딩 과제를 내주고 'AI 사용 금지'라고 적어두는 방식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학생의 AI 사용을 탓하기 전에 그런 과제가 아직도 학생의 이해와 사고력을 제대로 재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그래서 과제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AI를 쓸 수 있는 과제라면 최종 결과물 못지않게 과정을 봐야 한다. 학생이 어떤 질문을 만들었는지, 무엇을 AI에 맡겼는지, 어떤 답을 의심해 버렸는지, 무엇을 근거로 최종 판단을 내렸는지가 평가 대상이 된다. 전공지식과 기초역량 자체를 확인해야 한다면 시험·구술·실습처럼 AI 사용을 통제한 환경에서 확인하면 된다.


호주 시드니대가 이런 방향을 제도로 옮긴 대표적 사례다. 이 대학은 2024년 11월 이른바 '두 갈래 평가'를 발표하고 2025년 1학기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했다. 평가를 학생 개인의 성취를 직접 확인하는 '보안 평가'와 AI 등 도구 사용을 전제로 한 '개방형 평가'로 나눈 것이다. 개방형 평가에서는 담당 교수가 AI 사용을 통제하거나 제한할 수 없도록 학업 윤리 규정도 고쳤다. 대신 보안 평가는 과목 단위보다 학위과정 전체를 기준으로 설계해, 학업 중간중간과 졸업 시점에 학생이 목표한 역량을 갖췄는지 확인하도록 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등도 같은 틀을 받아들였다. 감독 평가가 정말 안전한지, 개방형 평가가 학습의 증거로서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제도를 그대로 들여오자는 얘기는 아니다. 눈여겨볼 것은 발상이다. AI를 썼는지 잡아내는 데 힘을 쏟기보다 무엇을 평가하려는지부터 다시 묻자는 것이다.


◇ 허용과 별개로 '불편함'은 남겨둬야


여기서 경계할 점이 있다. AI 사용을 허용하는 문제와 배움의 과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문제는 별개다. 사용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해서 대학 교육이 AI가 주는 편리함을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배움에는 때로 의도된 어려움이 필요하다. 교육심리학에서 '바람직한 어려움'이라 부르는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자료를 읽고, 실패한 뒤 다시 판단하는 과정까지 AI가 매끄럽게 대신해준다면 결과물은 나아질지 몰라도 학생에게 무엇이 남을지는 알 수 없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연구진이 지난해 6월 공개한 연구가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연구진은 보스턴 지역 대학생 등 18∼39세 54명을 챗GPT 사용, 검색엔진 사용, 도구 없이 쓰기 세 집단으로 나눠 에세이를 쓰게 하고 뇌파를 측정했다. 도구 없이 쓴 집단의 뇌 영역 간 연결이 가장 강하고 넓었고 챗GPT 집단이 가장 약했다. 챗GPT 집단은 몇 분 전 자신이 쓴 글을 인용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고, 글에 대한 주인의식도 낮게 나타났다. 동료 심사를 거치지 않은 예비 논문이고 표본이 작아 과잉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도 결과물의 완성도와 배움의 깊이가 따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보여준다.


그래서 대학은 어떤 과제에서는 AI를 적극 쓰게 하되, 어떤 과정에서는 일부러 학생이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도록 '불편함'을 남겨둘 필요가 있다.


대학의 역할을 두고 피해야 할 이분법이 하나 더 있다. 대학이 취업을 준비하는 곳이냐, 학문을 탐구하는 곳이냐는 질문이다.


대학을 직업훈련기관으로 만드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이 연구자가 되겠다고 가정하는 것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 많은 학생은 졸업 후 기업과 공공기관, 전문직으로 진출한다. AI가 이미 일터의 도구가 된 만큼 이들에게 자기 전공에서 AI와 함께 일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대학의 당연한 몫이다.


'챗GPT 사용법' 같은 공통 교양과목 몇 개를 더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경영학도는 경영과 의사결정 속에서, 공학도는 설계와 분석 속에서, 법학도는 자료조사와 논증 속에서 AI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디서 틀리는지를 배워야 한다. 대학에 필요한 것은 범용 AI 활용법보다 '전공 속의 AI'다.


윤리도 마찬가지다. 'AI 윤리' 교양과목 하나에 가둘 일이 아니다. AI의 답을 어디까지 믿을지,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질지는 각 전공의 실제 상황 안에서 다뤄야 한다. '무엇을 AI에 맡겨도 되는가?'라는 질문은 곧 각 분야에서 인간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느냐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공지식은 여전히 중요하다. 자기 분야를 알아야 무엇을 물을지 알고, AI의 답이 틀렸을 때 알아차리며, 무엇을 AI에 맡기고 무엇을 사람이 판단할지 가를 수 있다.


AI 시대 대학은 지식을 덜 가르쳐도 된다는 결론이 성급한 이유다. 지식의 쓰임새가 '답을 외워 재현하는 것'에서 'AI의 답을 판단하고 활용하는 토대'로 옮겨가고 있을 뿐이다.


◇ 연구자의 길…"AI는 저자가 될 수 없다"


학문 탐구를 이어가려는 학생에게는 학부에서 대학원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준비가 필요하다. 대학원에서는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만큼이나 새로운 질문을 세우고, 연구 방법을 설계하고, 결과를 검증하고, 어디까지를 지식으로 주장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AI는 문헌을 요약하고 코드를 짜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질문이 연구할 가치가 있는지, 분석 결과가 무엇을 뜻하는지, 오류와 편향을 어떻게 확인할지, 최종적으로 무엇을 주장할지는 연구자가 정한다. AI를 썼다면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연구자가 진다.


학술 출판계와 해외 대학은 이미 이런 원칙을 규정으로 만들었다. 네이처를 비롯한 스프링어 네이처 계열 학술지는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을 저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저자에게는 연구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데 AI에는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AI를 사용했다면 논문의 연구 방법 부분에 기록하도록 했다. 문법이나 맞춤법을 다듬는 수준의 교정은 예외다.


영국 대학은 박사학위 논문에 AI 사용 내역을 밝히도록 하고 있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은 생성형 AI를 포함해 지도교수단 밖에서 받은 도움을 논문 신고서에 기재하게 하고, 구술시험을 논문이 후보자 본인의 작업인지 확인하는 최종 관문으로 삼는다. 버밍엄대는 구술시험에서 연구 과정에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설명하라는 요구를 받을 수 있다며 AI와 주고받은 기록을 남겨두라고 권고한다. 킹스칼리지 런던은 AI 사용을 신고하고 논문 내용 전체에 책임을 진다면 사용 자체를 불이익 사유로 삼지 않는다고 밝혔다.


학부에서 AI와 함께 전공지식을 활용하는 법을 배웠다면, 대학원에서는 AI와 함께 새로운 지식을 만들되 그 지식을 사람이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변화는 말처럼 쉽지 않다. 과제를 새로 설계하고 학생의 학습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기존 방식보다 교수에게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수백 명이 듣는 대형 강의라면 더욱 그렇다. 교수 개인의 열정이나 희생에 맡겨서는 오래갈 수 없다. 대학이 교육 설계와 평가를 지원할 인력과 제도, 교수 재교육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이 문제는 다음 칼럼에서 교사와 교수의 역할 변화와 함께 다시 다룰 예정이다.


AI가 답하는 시대라고 대학의 역할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가 더 선명해진다.


AI와 답 만들기 경쟁을 벌일 사람을 기르는 데서 대학의 존재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대학이 길러야 할 사람은 AI가 내놓은 답을 이해하고 의심하고 활용할 줄 알며, 필요할 때는 스스로 생각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 판단과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다.


임기범 인공지능 전문가


▲ 한국특수정보인증원 최고 AI 책임자(CAIO)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대학교(aSSIST) 객원교수 ▲ AI경영학회 상임이사 겸 학술분과 위원장 ▲ 전 ㈜컴팩 CIO ▲ 전 신한 DS 디지털 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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