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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고교 예방교육 의무화했지만 현장은 '시간때우기'에 급급
지도서는 판박이·전문강사 실력은 천차만별…"원점부터 갈아엎어야"
마약권유 거부하는 실전연습 필요…"학생 맞춤형·소규모 교육 전환해야"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정윤주 윤민혁 기자 = "창체(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마약 예방 영상을 틀어주는데, 솔직히 다들 자거나 학원 숙제하느라 듣는 사람이 없어요."
중학교 2학년 홍모(14)군은 "'마약은 이래서 안 좋다, 마약은 이래서 안 된다'는 다 아는 내용이 나오니 다들 관심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재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유해 약물 오남용 예방교육은 의무다.
2023년 4월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이 마약 성분이 든 음료를 건네받아 마신 사건이 충격을 주자 그해 10월부터 교육부가 고시를 개정하면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예방 교육 전문 강사를 양성해 전국 학교에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이런 대책이 '보여주기식 행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수업 시수만 채우고 제대로 듣는 학생은 없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마약 나쁜 거 모르는 사람 있나요"…학년마다 같은 내용 반복
교육부 고시에 따라 학생들은 해마다 유치원·초등학교 5차시, 중학교 6차시, 고등학교 7차시 등 마약류 오남용 예방 수업을 들어야 한다.
지난해 초·중·고·특수학교 등 전국 1만2천78곳 중 단 한 곳을 제외한 1만2천77곳이 약물 오남용 교육을 마쳤다.
2022년·2023년·2024년에는 전국 모든 학교에서 관련 교육이 이뤄졌다.
고시 개정 이전에도 사실상 전 학교에서 교육은 이뤄지고 있었던 셈이다.
21일 연합뉴스가 교육부 배포 교사용 지도서를 분석한 결과 학년만 나뉘었을 뿐 약물 오남용 및 중독을 설명하는 내용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지도서는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고학년, 중학교, 고등학교용으로 분류됐다.
중학교용 지도서 목차는 약물 오남용 및 중독, 고카페인, 담배, 알코올, '공부 잘하는 약'으로 잘못 알려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 식욕 억제제, 마약류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고등학교용 지도서는 마약류 항목에 메스암페타민과 마약성 진통제 설명을 추가한 정도다. 일부 페이지는 삽화뿐만 아니라 설명 문구까지 똑같다.
결국 해마다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면서 학생들 관심도는 떨어지는 구조다.
고등학교 3학년 정모(18)군은 "영상을 보게끔 하는데 '마약은 이래서 위험하다'와 같이 똑같은 이야기만 한다"며 "솔직히 마약이 나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하나 마나 한 이야기 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교육부 교사용 약물 지도서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진도 나가기도 급급"…업무에 떠밀려 무기력한 교사들
교사들도 마약 예방 교육이 수업 시수만 채우는 방식으로 이뤄져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 지역 중학교 교사 전모 씨는 "교육부에서 제공한 영상을 활용해 창체 시간에 교육하는데데 형식적으로 느껴진다"며 "'이거 작년에 본 영상이에요'라거나 '이미 아는 내용이에요'라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강원 지역 고등학교 교사 이모 씨는 "아이들에게 마약 예방 교육을 몇 회 했는지 보고하는데 횟수만 채우는 느낌"이라며 "교육당국도 실제 교육이 어떻게 이뤄졌고 아이들이 잘 이해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수업 준비와 행정 업무에 떠밀려 마약류 예방 교육에까지 공을 들이기 어렵다는 지적도 교사들 사이에서 나왔다.
전 씨는 "지도서가 배포된 줄도 몰랐다"며 "교육청에서 평소에도 공문이나 자료를 많이 보내서 선생님들이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했다.
교직원 대상 마약류 안전 교육도 효과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남 지역 고등학교 교사 백모 씨는 "그렇지 않아도 수업에, 업무에, 상담에 교사 업무가 상당히 바쁘고, 애초에 마약에 대한 기초 소양도 부족하다"며 "몇시간 교육받고 와서 학생들에게 마약 안전 교육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말했다.
인천의 한 고교 교사 한모 씨도 "진도 나가기도 급급한데 성교육, 도박예방교육, 학폭 예방교육 등 다른 안전교육도 많아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며 7차시를 나눠 학기별 3.5시간씩 해도 마약 예방 교육만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체험해보니 별거 아니네"…VR·AI 체험교육 '역효과' 발생
일부 교육 방식이 오히려 청소년의 약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일례로 식약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구와 게임 등을 활용해 마약류의 위험성을 알리는 교육을 도입했다.
이 중 마약 투약 상황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가상현실(VR) 기기나 인공지능(AI) 활용 교육이 문제로 거론된다.
이경주 한국중독예방센터 대표는 "체험 후 속이 울렁거리는 불쾌한 경험을 하면 마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 같지만, 청소년들은 오히려 '별거 아닌데'라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 번 각인되면 잔상이 남기 때문에 아예 기억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을위한마약중독예방재활센터 답콕(DAPCOC) 박상규 사무총장도 "마약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아이들도 체험 후 '별거 아니네, 재미있겠는데?'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교육 자료나 포스터, 언론 보도 등에 알약이나 주사기 등 마약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반복해서 노출되는 데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이러한 시각에 대한 반론도 있다.
김대규 한국마약예방교육연구소장은 "'마약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더 관심을 가진다'며 교육을 꺼리는 시각이 있지만, 아이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다 알고 있다"며 "교육 때문에 마약에 노출된다는 것은 어른들의 착각"이라고 말했다.

관세청에 적발된 마약류 밀수품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전문강사 1천400명 양성했지만…"강의 질은 천차만별"
정부도 마약 예방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전문 강사 양성에 나서고 있다.
식약처는 2024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산하기관으로 편입된 것을 계기로 '마약류 예방 전문인력 식약처장 인증제'를 도입했다.
약사·간호사·교사 등 관련 지식을 갖춘 인력을 대상으로 온라인 교육 및 필기·실기 시험, 실습 등을 거쳐 강사로 인증하는 방식이다.
인증제를 통해 배출된 강사는 지난해까지 126명이다.
마약퇴치운동본부가 이전부터 위촉해 활동해온 강사들도 보수교육을 받으면서 현재 전국에서 활동 중인 마약류 예방 전문강사는 1천400여명 수준이다.
학교는 전문강사 파견을 요청해 수업 시수를 메울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강사 규모가 전체 수업 시수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정부 예산으로 전문강사가 직접 강의할 수 있는 규모는 전체 학생의 33% 수준"이라며 "초등학교 5차시 중 1∼2차시 정도를 전문 강사가 맡고 나머지는 보건교사가 강의하거나, 동영상을 시청하는 방식으로 채워진다"고 설명했다.
강사가 파견돼도 개인별 전문성과 강의의 질이 천차만별이기도 하다.
인천 지역 고등학교 교사 한모 씨는 "1학년 대상 교육에서 검찰 마약 수사관이 예방보다 처벌에만 초점을 맞춰서 강의했다"며 "반면 퇴직 교사가 강의하니 '할아버지가 해주는 이야기'로 받아들여 교육 효과가 떨어지는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약사를 보냈더니 약물 지식만 늘어놓거나, 교사 출신은 학생과 상호 작용은 잘하지만, 약물 지식이 부족하다는 피드백도 있다고 식약처 관계자는 전했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현재 교육 프로그램을 보면 전문성이 부족한 인력이 많아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며 "사실상 종류가 무한대인 합성마약에 대한 교육은 없고, 마약 유통·판매에 대한 내용도 부족하다"고 짚었다.

[연합 AI 제작. 재판매 및 DB 금지]
◇ 친구 권유 거부하는 '실전교육' 필요…학년별 맞춤교육 필요
너무 오랜 시간 굳어져 관성화한 예방교육을 교재, 강사, 교육 방식 등 모든 분야에서 원점에서부터 갈아엎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는 "같은 역사 교육이라도 초등학생에게 이순신 장군을 설명할 때와 중고등학생에게 설명할 때가 다른데, 지금 마약 예방 교육은 대상과 관계없이 '마약은 위험하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학년생에겐 그림과 웹툰을 활용해 쉽게 설명하고, 고학년 대상으로는 내용의 질을 높이는 등 학년별 맞춤 교재와 교육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중독으로 범법자가 됐다가 재활로 극복한 사례도 교육을 통해 소개해야 한다면서 "위험성을 알리는 동시에 잘못된 길에 들어서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함께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른이 아닌 교육받는 청소년 입장에서 뼈대를 세워야 한다는 제언도 잇따랐다.
김용섭 조선대 행정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우리가 이렇게 많이 교육했습니다'라고 해도 질을 높이지 않으면 상황은 나빠진다"며 문제 발생 시 실제로 대처할 수 있는 방식을 알려주는 '생활 기술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구가 마약을 권유할 때 거절하는 상황극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 교수는 "친구가 은어를 써가며 교묘하게 권유하는 상황을 상황극으로 체험하게 하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며 "또래 집단에서 소외될까 봐 거절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많기 때문에 실전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마약을 하면 인생이 망가진다'는 '공포 교육'보다는 마약을 투약할 경우 인생에서 진로와 꿈을 찾는 데 방해가 된다는 걸 인식시켜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김대규 한국마약예방교육연구소장도 "청소년 시기에 약물에 노출됐을 때 미래에 꿈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보라고 강의한다"며 "마약이 나쁘고 중독된 후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건 10대들이 다들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인원을 강당에 모아 강의하는 집합교육보다 소규모를 대상으로 한 강의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교육 환경에서는 3시간, 6시간을 몰아서 교육해도 학생들이 듣지 않는다"며 "형식적인 집합 교육보다 소규모의 내실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jung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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