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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감 키우려, 결핍 메우려…친구 권유에 재미삼아 시작했다 중독
부모들은 쉽사리 눈치 못채…"위험신호 인지하는 어른 교육이 필요"

[연합 AI 제작.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정윤주 윤민혁 기자 = "에라 모르겠다 따라간거죠"
A(23)씨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약물을 접할 때 생각은 단순했다.
그는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를 통해 약물을 알게 됐다.
그는 "10대 때 저를 포함해 제 친구들은 전부 또래 친구 권유로 마약을 시작하게 됐다"며 "친구들 사이에 약물 중독자 1명이 있다고 하면 그 친구에게만 문제가 머물지 않는다. 그 1명을 통해 10명이 중독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A씨도 당시 여자친구로부터 '약물을 접했다'고 고백을 듣고, 주변 사람들한테 이를 털어놓고 상담하며 속상한 마음을 달래려고 했다.
그때 이 말을 듣던 동네 선배가 "나도 약물을 해봤다"고 말했다.
A씨는 "절대 상상도 못 했던 사람까지 경험자라고 하니까 호기심이 발동한 건지 속상한 마음이 든 건지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에 그 형을 따라갔다"고 했다.
그렇게 A씨는 마약에 중독됐다. 주변에 마약 경험자를 잇달아 발견한 경험이 오히려 '한 번 해봐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경계심을 낮춘 것이다.
A씨는 "약을 하는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만큼은 결핍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며 "'친구들이 약을 하니까 나도 해 봐야지' 같은 마음도 들었고, 학창 시절에 느낀 소외감이나 결핍을 메우려다 약물까지 이르렀다"고 털어놨다.
10대들에게 퍼지는 마약이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개인의 일탈' 측면을 넘어서 또래 문화 특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마약류 사용 연령이 낮아지면서 일부 청소년에게 마약은 친구나 선·후배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로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촬영 윤민혁]
◇ 비의료 목적 마약류 경험 청소년 5.2%…흡연 4.2% 역전
전국 중·고등학생 100명 중 5명꼴. 단순 환산하면 20명 중 1명꼴로 한 반에 최소 1명 이상은 비의료 목적으로 마약류를 경험한 적이 있다는 게 연구 결과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전국 중·고등학생 3천384명 중 응답자의 5.2%가 ADHD 치료제, 식욕억제제, 수면제 등 7종의 마약류를 최소 한 차례 비의료 목적으로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청소년 흡연 경험보다 높은 수치다. 평생 한 번이라도 담배를 피운 경험이 있다고 답한 청소년 비율(4.2%)보다 높은 것이다.
다이어트나 학업 목적의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문제와 더불어 최근에는 또래 집단 사이에 끼기 위한 재미 목적의 투약까지 더해져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실제 조사 대상의 5.5%는 '마약류 사용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자아 긍정 수준이 낮은 집단(629명)에서는 이 비율이 6.0%로 더 높게 나타났다.
마약 사용이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나 호기심만으로 볼 수 없는 대목이다.
또래 집단 내 소속감을 강화하려는 욕구가 마약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한 B(25)씨 역시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이 마약을 하는 모습을 보여 약물을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친구들로부터 소개받은 어른들에게 약물을 건네받았다.
B씨는 "다들 아무 생각 없이 마약을 하고, 범죄라는 생각도 잘 하지 않는다"며 "친구들이 '야 이거 좋대'라고 하니 하게 된다"고 했다.
청소년기는 또래 집단의 영향력이 큰 시기인 만큼, 친구의 영향으로 마약에 대한 경계심이 낮아지는 환경에 처하는 것이다.

[연합 AI 제작. 재판매 및 DB 금지]
◇ SNS·게임·클럽 공연 초청이 미끼…"너 이거 해볼래?"가 시작
마약 예방 교육 현장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반복된다.
'대학을위한마약중독예방재활센터 답콕(DAPCOC)' 박상규 사무총장도 "청소년들 대부분이 친구를 통해 마약을 시작한다"며 "주변에 투약·판매하는 애들만 남게 되면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도 그 굴레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마약왕' 박왕열을 수사했던 김대규 한국마약예방교육연구소장(전 경남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장)도 청소년 마약의 시작점으로 또래 관계를 꼽았다.
김 소장은 2021년 경남청에서 몸이 아픈 것처럼 통증을 호소해 부산과 경남지역 병의원에서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아 판매·투약한 56명을 적발했다. 이 중 54명이 10대였고, 이 가운데 33명은 고등학생이었다.
그는 "청소년 대다수가 친한 선·후배, 친구가 약을 제안하면 나쁜 줄 알면서도 관계에서 배척당할까 봐 거절하지 못한다"며 "당시 아이들도 친구가 '맛만 보라'며 준 마약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 마약류대책협의회 민간위원을 역임한 법무법인 진실의 박진실 변호사도 청소년들이 또래의 권유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청소년들이 재미있는 놀이를 찾는 과정에서 마약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으로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학교에서 만나거나 학교 밖에서 소개받아 만나는 친구들로부터 '너 이거 해볼래?'라며 권유받으면 호기심이 동한다"고 "다들 쉽게 시작했다가 빠져들게 된다"고 말했다.
게임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에서 알게 된 또래가 실제 마약을 접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학교 밖 청소년처럼 학교나 가정의 보호망에서 벗어난 청소년의 경우 이런 관계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박 사무총장은 "게임을 하면서 실시간 채팅 등으로 알게 된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약을 권유하기도 하고 록밴드나 힙합 공연 등의 티켓을 무료로 제공해 꼬드긴 뒤 약을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선배로부터 마약을 건네받은 사례도 소개했다.
이 학생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클럽 공연에 초대받았고, 현장에서 '다들 이걸 먹고 공연한다'는 말을 들으며 마약을 건네받았다고 한다. 다행히 부모에게 적발돼 실제 투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수원지검 제공]
◇ '위험 신호' 인지 못 하는 부모들…"어른 교육이 필요"
전문가들은 학교와 가정 등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 전체가 조기에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어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소년의 행동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인지할 수 있는 부모와 교사 등이 위험 신호를 알아채고 상담·치료로 연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모들은 청소년들의 투약 여부를 쉽게 눈치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2∼3년이 지나 중독 상태가 돼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 전언이다.
김대규 소장은 "가정에서 부모들이 '신호'를 알아보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며 "펜타닐 패치를 갖고 있는데 부모는 파스인 줄 알고 '농구하다 다쳤어? 빨리 붙이고 자'라고 하면서 패치가 뭔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에 아이가 집에서 성격이 예민하다고 하면 그런 신호를 봐야 한다"며 "자녀가 살려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 소장은 "학부모에게 위험 신호를 인지하는 방법, 교사에게 학생들을 치료·재활까지 연계하는 매뉴얼을 만들어 교육해야 하고, 경찰에게도 상담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실 변호사도 "학부모나 선생님이 아이들이 마약을 접하며 보이는 신체적 변화를 먼저 알아채야 한다"며 "'얘가 일탈하네'라며 변화를 간과하면 형사 입건이 될 때야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김낭희 연구위원도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마약을 하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아야 한다"며 "술이나 담배는 외적으로 티가 나는데, 마약은 티가 안 난다"고 강조했다.
jung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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