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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몸짓 문법 무시한 AI 아바타, 놀리는 것처럼 느껴져"
청각장애 편의 지원 7% 그쳐…국중박 "안내 멘트 정비 후 단계적 확대"

[촬영 자막 서효주]
(서울=연합뉴스) 서효주 인턴기자 = 지난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
박물관 입구에 설치된 스마트 키오스크 화면을 터치하자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와 음성 안내를 제공한다'는 문구가 떴다.
그러나 수어 해설이 지원된다는 유물 사진을 누르자, 화면 속 AI 아바타는 "수어가 없습니다"라는 손동작을 취할 뿐이었다. 스마트폰 QR코드로 접속하는 모바일 서비스 '스마트 전시관'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배리어프리'(무장애)를 내세운 국중박의 디지털 전시 안내가 정작 농인 관람객에게는 무용지물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선사·고대관 유물 대부분 '수어 먹통'…아바타 "수어 없다" 반복
취재진이 상설전시관 1층부터 3층까지 전 층의 키오스크를 이용해본 결과, '선사·고대관' 4곳에 등록된 유물 75개 중 8개를 제외한 67개의 수어 해설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
전시실별로 살펴보면 '구석기실'(8개)과 '신석기실'(15개)은 각 1건을 제외한 나머지 유물에서 해설이 지원되지 않았다. '청동기실'은 24개 중 22개, '고조선·부여·삼한실'은 28개 중 24개 유물에서 "수어 설명이 없다"는 수어 안내만 돌아왔다.
국립중앙박물관 스마트 전시관의 누락된 수어 해설 영상[http://yna.kr/AKR20260824141000505]
선사·고대관 외에 '디지털 실감 영상관' 1~3관도 19개 유물 중 1개를 제외한 18개의 영상관 소개 수어 해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국중박에 따르면 수어 해설 서비스가 제작된 유물은 수어 통역사 설명 영상 7개를 포함해 277개로, 상설전시관 유물 6천여개 중 5%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도 전시품 교체 등 여파로 현재 키오스크를 통해 수어 해설이 지원되는 유물은 125점에 그친다.
◇ "표정 없고 딱딱해"…농인에겐 무용지물인 AI 아바타
해설이 제공되는 일부 유물조차 AI 아바타의 완성도가 낮아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관꾸미개'(관식·冠飾) 등 유물 해설 영상 속 AI 아바타의 굳은 표정과 뚝뚝 끊기는 부자연스러운 동작 탓에 직관적인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청각장애인 정모(55) 씨는 키오스크 화면을 두고 "수어 설명이 없다는 안내만 반복되니 농인 입장에서는 놀림당하는 기분"이라며 "수어 서비스가 아예 없거나 품질이 떨어지면 박물관 이용 자체를 꺼리게 된다"고 털어놨다.
정씨는 "수어는 손동작 이전에 표정과 몸짓이 문법을 구성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어와 한국 수어의 언어 체계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스마트전시관 모바일 링크 속 수어 해설도 "죄송합니다. 수어가 없습니다"는 안내를반복했다[http://yna.kr/AKR20260824141000505]
김정환 서울특별시농아인협회 협회장은 "이번 사안이 단순한 콘텐츠 누락이 아니라 한국수어를 독립된 언어로 전제하지 않고 공공서비스를 설계·관리해 온 구조적 문제"라고 짚었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으로 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공용어로 인정받았지만, 현장의 인식과 서비스 체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비판이다.
김 협회장은 이어 "키오스크와 모바일 서비스에 수어 메뉴나 AI 아바타가 존재한다고 해서 접근성이 보장됐다고 볼 수 없다"며 "수어 해설의 최종 검수 과정에서 농인 당사자의 실제 이용 가능성을 확인했는지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전문 통역사 영상 도입해야"…국중박 "단계적 확충"
국중박 내 청각장애인의 문화 접근권 소외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손솔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작년 8월 기준 국립중앙박물관의 장애인 관람객 비율은 0.08%에 불과했다. 박물관이 촉각 전시물·음성 해설·점자 안내·수어 영상 등 다양한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운영 중이지만, 편의 지원의 92.6%가 시각장애인에 집중된 반면 청각장애 지원은 7.2%, 발달장애 지원은 0.2%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접근성 기준을 충족하는 기기 개선과 함께 실제 수어통역사가 참여하는 영상 해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디지털 취약계층의 정보 접근 및 이용 편의 증진을 위한 고시에 따라 공공기관은 시각·촉각 대체 수단 등 장애인이 실제로 쓸 수 있는 보완적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며 "이용조차 어려운 기기를 들여놓은 것은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소규모 박물관도 아닌 국중박의 수어 해설 누락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몇 개 유물에 그칠 게 아니라 모든 전시품에 농인·수어통역사가 직접 참여하는 해설 영상을 도입하는 등 농인 관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국중박 측은 예산 한계로 모든 유물에 해설을 제공하기는 어렵지만, 단계적으로 서비스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4년간 스마트 전시관 사업에 약 49억 원이 투입됐으나 수어 콘텐츠 제작을 위한 별도 예산은 배정되지 않아, 기존 사업비 안에서 모든 전시품의 수어 영상을 한 번에 제작하기는 역부족이었다는 설명이다.
국중박 관계자는 "2022년부터 연차별로 수어 해설을 확충해 오고 있다"면서도 "관내 전시품 수가 방대하고 교체 주기도 짧아 모든 유물에 일괄적으로 수어 해설을 구비하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우선 해설이 누락된 유물의 안내 멘트를 '수어 영상을 준비 중입니다'로 교체하고, 앞으로 수어 해설 대상을 단계적으로 늘려가겠다"고 덧붙였다.

[촬영 서효주]
seohyo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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