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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 합의 잘되면 괜찮은가…"현행 제청방식은 '유신헌법' 유산"
"대법관 증원 앞두고 더욱 중요…'후보추천위 실질화' 대안으로 거론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6.8.21 cityboy@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서면 제청 논란으로 그간 대법관 인선에서 이어져 온 대법원장과 대통령의 '밀실 합의' 관행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문제의 본질은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 중 어느 쪽이 우선하느냐가 아니라, 대법관 인선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기 어려운 현행 구조 자체를 그대로 둘 것인지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대법관 수 증원을 앞두고 특정 권력자의 의중에 좌우되지 않고 사회적 약자와 각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이 조희대 대법원장과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에 대한 증인 출석 요구의 건 처리에 반대하며 퇴장해 자리가 비어 있다. 국민의힘 법사위원 자리에 증인 출석 요구의 건 의사일정 추가 서면 동의(動議)서가 놓여 있다. 2026.8.21 nowwego@yna.co.kr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관 인선은 후보로 천거돼 심사에 동의한 이들 가운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3명 이상을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이들 가운데 1명을 골라 대통령에게 제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후 인사청문 절차를 거쳐 국회 동의를 얻으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다만 실제 과정을 들여다보면 추천위원회 이후 청와대와 사법부가 최종 제청 후보를 놓고 물밑 조율을 거쳐 제청·임명해온 것이 관행이었다.
이번에는 양측이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제청을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됐고, 이런 과정에서 '밀실 합의' 관행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명하는 현행 인선 방식의 뼈대는 1972년 유신헌법에서 만들어졌다.
독재정권이 대법원장을 통해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1987년 개헌으로 국회 동의권이 추가됐지만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이 집중된 구조는 그대로 남았다.
2003년 노무현 정권 출범 직후에는 새 정부의 사법개혁 요구와 서열 위주 낡은 사법부 인선 관행이 충돌했다.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제청자문위 회의 도중 퇴장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어 박시환 당시 서울지법 부장판사(전 대법관)가 대법관 인선 관행에 항의하며 사표를 내자 전국 법원의 단독판사들이 규탄하는 연판장을 돌리며 이른바 '4차 사법파동'이 벌어졌다.
이듬해 김영란 당시 대전고법 부장판사가 헌정사상 첫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이후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과 민주성을 높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이어졌고 2011년 법원조직법 개정으로 현재와 같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법제화됐다.
법원 내부 서열 중심 인선에서 벗어나 외부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도록 한 방식이다.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6.8.4 ondol@yna.co.kr
이런 제도적 보완에도 최종 제청 과정은 여전히 대법원장과 대통령 간 비공식 조율에 의존해왔고, 이번에는 조율 무산으로 대법관 인선 구조의 한계가 표면화했다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결국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코드가 맞을 때는 물밑 조율을 통해 대통령 의중이 반영된 인선이 이뤄지고, 엇갈릴 때는 지금과 같은 행정부와 사법부 수장의 갈등으로 번지는 구조인 셈이다.
이헌환 아주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현행 방식은 대법원장과 대통령의 의사가 충돌하면 조정하는 방법이 없도록 만들어진 제도"라며 "서로 자기 의사를 고집해서 포기하지 않는다면 제도 자체를 바꿀 생각을 해야 하는데 '누가 이기나 보자'고 하는 게 지금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대통령이 편향된 대법관을 임명하고자 할 때 이를 사실상 막을 장치가 별로 없는 게 현행 구조의 문제점"이라며 "사법부 신뢰를 약화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법관 증원법으로 향후 대법관 수가 14명에서 26명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절차를 보다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선택 고려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대법관 수가 2배 수준으로 늘어나서 대법원을 새로 구성하는 판"이라며 "대법원장 혼자서 결정해도 안 되고, 대통령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을 이번 사태로 인식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대법원 구성을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짚었다.

(서울=연합뉴스) 이동해 기자 = 서영교 법제사법위원장이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조희대 대법원장과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8.20 eastsea@yna.co.kr
현실적 대안으로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역할을 실질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헌환 교수는 "전체 국민 의사를 투명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추천위를 구성한다면 추천된 후보에 대해선 대법원장은 형식적 제청권만 가지고 대통령도 국회 동의만 있다면 임명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며 "제청과 임명 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추천위가 현재처럼 제청 인원 3배수 이상의 후보를 추천하는 대신 1∼2배수의 후보로 압축하고, 대법원장은 추천위 결정에 기속돼 그중 최종 후보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현행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이 추천위의 3배수 이상 추천을 '존중'한다고 정한다.
김선택 교수도 "추천위가 3배수 이상을 추천하게 하면 (제청·임명권자의) 선택의 폭을 넓혀서 본인이 염두에 둔 인물을 심기도 편해진다"며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완벽하게 합의될 수 있는 후보 2배수 정도만 추천위가 올리고 그중 1배수를 제청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경우 영향력이 막강해지는 추천위 역시 구성과 운영 방식을 함께 손봐야 한다.
현재 추천위는 10명의 위원 중 선임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이 당연직 위원으로 들어가고 대법관이 아닌 법관 1명도 비당연직 위원으로 포함돼 대법원장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원장 역시 위원 가운데 대법원장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나아가 현재 14명인 대법관이 2030년까지 26명으로 대폭 늘어나는 만큼 차제에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추천위를 구성·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평가다.
김 교수는 "2년 뒤부터는 대법관이 한꺼번에 늘어나는데 각 후보추천위를 사회적 약자나 여성, 장애인 등 몫으로 풀을 짜서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고 전했다.
개헌을 통해 근본적으로 대통령이나 대법원장의 영향력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차진아 교수는 "헌법에서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삭제하고 대통령의 임명권도 형식적으로 만들어 대법원장을 포함해 모든 대법관을 국회에서 선출하고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게 해야 한다"며 "대법관 인선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사법부 코드인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al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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