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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을 돌봄] ① '타인의고통'에 대리외상 시달리는 의료·복지현장

입력 2026-08-18 06: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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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속연수 짧고 이직 의향 높아"…정확한 실태조사·현황파악 미흡


"업무량 조정·인력충원 등 직무환경 정비 필요…지원 프로그램도 마련해야"


[※ 편집자 주 = 초고령사회 진입과 1인가구 증가, 가족 돌봄 기능의 약화 등 사회구조 변화로 의료·복지 돌봄에 대한 수요와 종사자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돌봄 종사자가 자살·학대 등 타인의 고통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겪는 심리적 '대리외상'은 여전히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 여겨지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도 부족합니다.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이 소진되면 돌봄체계 역시 지속 가능하기 어렵습니다. 연합뉴스는 의료·복지 현장에서 대리외상을 겪는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돌보는 사람은 누가 돌보는가'를 묻고, 지속 가능한 돌봄을 위해 필요한 지원책을 4편에 걸쳐 짚어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반복적으로 학대당한 아이의 상처를 마주하고, 오랜 기간 사회적으로 고립된 독거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


누군가의 가장 힘든 순간을 함께하는 의료·복지 종사자들도 업무 과정에서 상당한 심리적 고통을 겪지만, 이러한 실태를 보여주는 통계나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는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신건강을 위한 의료와 복지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가운데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정신건강까지 살피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노숙인에게 핫팩 나눠주는 사회복지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 타인의 고통으로 겪는 대리외상, 정신건강 위협


18일 의료계와 사회복지계에 따르면 타인의 외상 경험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겪는 여러가지 심리적 영향을 '대리외상' 또는 '간접외상'으로 일컫는다.


타인이 겪은 극단적인 사건과 그에 따른 괴로운 감정을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심리적으로 함께 고통을 겪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불안, 무감각, 비슷한 자극의 회피, 외상 관련 이미지의 반복적 재경험, 수면장애 등 흔히 알려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유사한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타인에 대한 신뢰감과 안정감 등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며 본인의 정신건강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게 의료진의 견해다.


하지만 이러한 대리외상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찰·소방공무원 등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재난을 마주하며 겪는 직접적인 외상에 대해서는 다양한 조사가 진행되지만, 의료·복지현장 종사자들이 환자와 상담대상자의 정신건강을 돌보며 겪는 대리외상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관심이 적다.


이병철 한림대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소방관이나 재난 현장 인력의 외상은 하나의 사건으로 특정할 수 있고, 시각적으로도 명확한 반면, 상담이나 학대 사례를 다루는 종사자의 대리외상은 특정 사건이 아니라 반복적 노출이 축적돼 서서히 진행된다"며 "'언제, 무엇 때문에'를 지목하기 어렵기 때문에 본인도, 주변도 이를 '손상'으로 인식하기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손상이란 질병이 아니라 각종 사고, 재해 등 외부적인 요인으로 발생하는 신체적·정신적 문제나 후유증을 말한다.




자살 예방을 위해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한 번만 더' 동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 실태파악 어려운 현실…관련 통계도 마땅치 않아


실태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체계적인 조사가 마땅치 않다 보니 타인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이들이 겪는 대리외상은 근속연수나 업무 애로사항 등에 대한 학계 연구·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해볼 수 있을 뿐이다.


2021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전국의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 상근인력 평균 근속연수가 3.3년이었고, 2년 이하 근속자 수가 전체의 57%에 달했다.


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 실시한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보수 수준 및 근로여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4천402명 가운데 이직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31.6%였다. 이직을 희망하는 이유로는 낮은 보수와 함께 많은 업무량이 주요한 이유로 꼽혔다.


최혜진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복지실천연구소 팀장은 "통계연보 등을 보면 (폭언·폭행 같은) 사회복지사의 직접적인 외상 중심으로 피해를 조사한 내용은 있지만 근무 중 겪는 대리외상은 파악이 쉽지 않다"며 "그럼에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현장에서 상당히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사례관리학회 학술지 '사례관리연구'에 2024년 게재된 '자살유가족 상담업무를 수행하는 사회복지사의 대리외상 경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를 보면, 연구진은 자살예방 및 유가족 상담 업무를 하는 사회복지사 5명을 심층면접한 결과 "참여자들은 자살유가족의 아픔과 정서적 취약함을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 중 찾아오는 위기 상황에서 불안, 소진 등 심신에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상담원의 근속연수 또한 평균 4.1년가량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신규 채용된 상담원들이 있어 이 기간이 '길다' 혹은 '짧다'고 판단하기 어렵지만, 업무 특성상 상담원들이 받는 정신적 부담이 매우 큰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올해 하반기 업무보고 자료에서 "자살 고민 등 부정적 대화로 인한 정서 소진, 위기 대응 업무 부담 등으로 (상담원) 이직률이 높다"며 현장의 어려움을 언급하기도 했다.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로 환자 이송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지속 가능한 정신건강 돌봄 위해 기관·정부 나서야"


문제는 의료·복지 현장에서 정신건강 관련 업무를 하며 겪게 되는 심리적 부담을 개인의 직업적 특성으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정신건강과 돌봄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의료·복지 종사자의 대리외상과 소진이 누적되면 결국 돌봄의 질이 떨어지고 전문인력의 현장 이탈도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석왕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회장은 "앞으로 자살·자해, 학대, 가족돌봄의 붕괴, 빈곤과 고립, 임종과 상실 등 감정적으로 매우 무거운 상황에 지속적으로 (사회복지사 등이) 개입해야 하는 사례도 늘어날 것"이라며 "지속 가능한 정신건강 돌봄체계는 돌봄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제공하는 사람의 지속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의료·복지 종사자 개인은 물론, 소속기관과 정부가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준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소방을 제외한 의료·복지 종사자 직군의 정신건강 보호 제도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확보해 과도한 외상 노출을 방지할 필요가 있고, 근로자지원프로그램(EAP) 등 비밀이 보장되는 정신건강 프로그램 활성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석왕 회장은 "기관 차원에서는 고위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종사자가 혼자 대응하지 않도록 하고, 사건 이후 의무적인 디브리핑(사후점검)과 전문상담, 회복 지원, 슈퍼비전(상급자의 지원) 등이 체계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심리·정신건강 지원을 위한 안정적인 재정과 표준화된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별도의 지원 체계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직무 환경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게 먼저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병철 교수는 "엄격한 선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 사례에 대한 전문적 자문·슈퍼비전 체계를 갖추는 게 우선이고, 그럼에도 대리외상이 심한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낫다"며 "개인의 정신력 문제로 방치하지 않되, 전문가의 자기관리 영역과 구조적으로 보장해야 할 부분, 즉 인력이나 사례 수 조정을 분리해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in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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