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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노인] ②"나이 많은 게 죄네"…'노인혐오'로 싹튼 불신과 배제

입력 2026-07-30 07: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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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이상 노인 5명 중 1명 "차별 경험"…대중교통·식당 등 파고들어


이중근 대한노인회장 "단순 차별금지 넘어 노인권리보장법 등 필요"




어르신 위한 키오스크 교육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서울 종로구 롯데리아 동묘역점에서 열린 디지털 약자 어르신 키오스크 교육에 참여한 서울재가노인복지협회 소속 어르신들이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는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2022.10.17 nowwego@yna.co.kr


(서울=연합뉴스) 전재훈 윤민혁 기자 = "나이를 곱게 먹어라"


72세 여성 최모씨가 최근 버스 정류장에서 침을 뱉는 젊은 사람들을 말리다 들은 말이다. 그는 "너무 서러웠다"며 말끝을 흐렸다.


최씨는 '일상생활에서 나이 때문에 혐오를 받는다고 느낀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식당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하던 때를 떠올렸다.


시력도 안 좋고 손짓도 어설퍼 시간이 오래 걸리자 뒤에 있던 젊은 사람들로부터 '노인들은 꼭 저런다', '언제까지 저러고 있느냐'는 뒷말이 날아들었다.


최씨는 "꼭 들으라는 듯 욕하는 젊은 사람을 자주 마주친다"고 말했다.


모든 젊은이를 일반화하는 건 아니라고 최씨는 강조했다. 다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과거 노인을 존중하는 대상으로 여겼던 '경로사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대 노인은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배제 당하는 연령주의와 존엄성이 훼손돼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있었다.


혐오와 불신은 동전의 양면처럼 작용했다.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한 80대 남성은 초등학생 아이가 음료 뚜껑을 열어달라고 해서 열어줬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몇 분 있다가 애 아빠가 와서는 '노인네가 열어준 음료수를 먹고 애가 배가 아프다는데 무슨 짓을 했느냐'고 따졌다"며 "내가 늙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의심하고 막 대했을까 싶었다"고 토로했다.




탑골공원의 노인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 나이만으로 차별받는 시대…노인 10명 중 1명 "일상에서 차별 경험"


같은 노인이라도 연령이 높을수록 차별에 쉽게 노출됐다.


서울시복지재단이 2년 주기로 진행하는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80세 이상 노인 중 17.4%가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일상에서 나이 때문에 차별을 경험한 적 있다고 답변한 노인 비중도 꾸준히 10%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 노인 기준 '연령 차별' 경험률은 2016년 12.3%, 2018년 13.4%, 2020년 27.4%로 증가했다가, 2020년 8.9%, 2024년 9.8%를 기록하고 있다.


차별을 경험한 상황으로는 '대중교통 사용 중'(36.5%), '상업시설 사용 중'(35.3%), 직장(26.7%), 공공기관 이용 중(12.8%), 의료시설 이용 중(9.5%), '가족에 의해'(7.1%) 순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특정 연령 이상의 출입을 거부하는 '노 시니어 존'(No Senior Zone) 딱지가 붙은 상업시설이 등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 식당은 '49세 이상 정중히 거절합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일부 카페, 식당 등에서도 중장년·노년층 출입을 거부해 논란이 됐다.


이러한 극단적 사례를 제외하고도 은연중에 노인을 배제하는 곳도 도처에 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65세 이상의 회원가입을 막은 헬스장, 70세 이상에게 회원권 판매를 거부한 골프장 등에 차별 시정 권고를 한 바 있다.




'49세 이상 정중히 거절합니다'라는 문구를 건 식당

[트위터 캡처]


일상을 파고든 키오스크와 앱사용, 온라인 쇼핑도 노인에겐 크나큰 '벽'으로 느껴진다.


상당수 노인은 카카오택시를 부르지 못해 길에 서 있으면 빈차를 잡기 힘들고, 앱으로 명절 기차표 예매도, 영화표 예매도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2024년 서울시복지재단 실태조사 기준 온라인 쇼핑을 할 수 있다고 답한 노인은 전체의 17.6%, 무인주문기 활용이 가능한 노인은 31.8%에 불과했다.


노인층의 대표적 여가문화 공간이던 경로당 이용 노인은 12.9%였다. 2022년 대비 23.4% 줄어든 것으로 노인끼리 교류하는 기회는 줄고 있는 셈이다.


노인 4명 중 1명은 '주 1회 이상 빈도로 연락하거나 만나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한 지하철역에서 시니어 안전관리요원으로 근무하는 60대 정모씨는 "젊은 사람이 많은 카페나 식당에서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있으면 눈치가 보여서 무인 카페나 동네 정자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이어 "나이 많은 게 죄라도 된 것 같아 서글프다"고 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대한노인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 "단순 차별금지 정책 넘어서 노인권리보장법 제정 필요"


전문가들은 노인을 혐오와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단순히 노인 혐오를 금지하는 방식이 아닌, 노인 복지정책 확대 및 교육 등을 통한 '연령 통합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종, 성별 차별과 다르게 노인 차별은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라며 "사람을 생산성의 관점으로만 보기 때문에 비생산적인 노인을 필요 없는 존재, 짐 등으로 인식하며 혐오가 생겨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외국처럼 노인을 공경의 대상 등 어려운 존재가 아닌 수평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하기 위한 캠페인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혐오가 문제라고 해서 이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거나, 해당 연령의 권리를 구제하도록 하는 기구를 별도로 만들면 다른 세대의 반발을 부르면서 혐오 정서를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이를 떠나서 건강, 고용 상태, 교육 수준 등을 기준으로 정책적 도움을 주는 '연령 통합 사회'로의 전환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지원 정책과 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은 "한국은 노인 인구 1천만을 넘긴 지 오래"라며 "단순한 차별 금지 정책을 넘어선 노인 복지 및 노인 학대 예방, 노인 교육 등 체계적인 '노인권리보장법' 제정과 '국가노인권리보장원' 설립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아동정책의 종합적 수행, 아동복지 관련 사업의 효과적 추진을 위해 출범한 '국가아동권리보장원' 등과 같은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노인들도 시대 변화에 따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노인이 사회적 부담이 되는 대상이 아니라 경륜 있고 모범적 어른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며 "젊은 사람보다 좀 더 참을 줄 알고, 양보할 수 있고, 체면을 지킬 줄 아는 게 '어른다운 노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ke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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