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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기밀이던 1만3천명…"희생에 합당한 보상·예우 필요"
북파공무원 '울분의 세월'…"말도 없이 사라져 가족 쑥대밭"

[촬영 김채린]
(서울=연합뉴스) 김채린 기자 = "휴가는커녕 완전히 격리돼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알려주질 않았고, 반대로 우리가 죽어도 가족한테 통보를 안 했어요."
18일 연힙뉴스와 인터뷰에서 1984년부터 3년간 '북파 공작원'으로 훈련받았던 하태준(67) 특수임무수행자유족동지회 회장은 '헌법 밖'에 머물던 공작원들 삶을 이렇게 회고했다.
최근 북파공작원 출신 주인공을 다룬 배우 소지섭 주연 드라마 '김부장'이 인기를 끌면서 과거 울분에 찬 공작원들의 삶도 재조명되고 있다. 그들은 존재 자체가 기밀이었다.
북파공작원은 남북 대치가 이어지던 1948년부터 군과 정보기관의 지휘 아래 적군 생포·사살, 첩보 수집 등 비밀 임무를 가지고 북한으로 보내졌던 이들이다.
6·25전쟁 시기부터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1972년까지 무려 1만3천여명이 북한에 보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실종 처리된 인원만 7천726명에 달한다.
하태준 회장은 "국가 기관에서 평생 일하고, 먹고 살게 해주겠다며 당장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정부가 주로 포섭했다"고 말했다. 정작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하 회장은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원 후 체력 테스트를 한다면서 끌려간 곳은 외부와 격리된 훈련소였다고 한다.
하 회장은 "가족에게 통보조차 되지 않았다"며 "집안의 막내가 갑자기 말도 없이 실종돼 집안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살인 무기'가 되기 위한 극단적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무자비한 구타와 고문 훈련은 기본이었다. 하 회장은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훈련을 했다"고 회상했다.
북한에서 발각되면 고문을 이겨내도록 훈련한다는 게 명분이었다.
해머로 가슴을 내려찍는 등 상상 이상의 구타도 있었다는 게 과거 공작원들의 증언이다.
결국 훈련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평생 장애를 안게 된 부대원들도 있었다.
생활은 철저히 통제됐다. 공작원 1명당 교관·감시 요원 등 4명이 붙었다.
하 회장은 "감시 요원들은 가족이 죽었다는 걸 알아도 안 알려줬다"며 "가족과 관련된 나쁜 소식은 절대 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현충일인 6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북파공작원 추모행사에서 유족들이 희생자 명단을 살피고 있다. 2018.6.6 mon@yna.co.kr
그러다 사회 밖으로 나온 공작원들이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갑자기 사라졌다가 정신·육체적으로 피폐해져 돌아온 공작원 중에는 가족의 원망을 듣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하 회장이 집으로 돌아오자 놀란 가족들은 "눈에 살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3년간 못 봤던 아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뛰쳐나오던 모친이 쓰러져 그대로 세상을 떠난 한 북파 공작원의 이야기는 지금도 회자하고 있다.
하 회장은 "목숨을 내놓고 일했지만, 국가는 공작원들을 버렸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음지에 묻혀있던 이들의 존재는 2002년 법원이 북파공작원의 존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고, 2004년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이 마련되면서 비로소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러나 생존자와 유족은 충분한 명예 회복이나 보상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특수임무유공자들은 참전유공자나 다른 국가유공자가 받는 정기적인 수당 지급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의료지원이나 보훈병원 감면 등 현물 위주의 복지 혜택에 그치는 실정이다.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김동아 의원이 특수임무유공자들에게 정기적인 '명예 수당'을 지급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하 회장은 "북파공작원처럼 목숨을 걸고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들이 독립유공자 수준으로 예우받기를 바란다"며 "국가가 이들의 공과 희생, 피해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고 그에 걸맞은 예우와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묵은 사회적 편견도 고령의 생존자들을 괴롭힌다.
'북파공작원은 범죄자나 사형수 출신'이라는 시선이 대표적이다.
하 회장은 "사형수나 무기수가 북파공작원으로 채용된 것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많다"며 "실제 공작원 중 범죄자가 33명 정도 있었다고는 한다"고 말했다.
이건 전체 북파공작원 1만여명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 평범한 민간인 청년들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열네 살에 공작원이 된 사람도 있었다"며 "그 나이면 임무 수행 중 죽을 가능성이 훨씬 큰데, 국가가 인명을 경시한 거나 다름없다"며 관심을 촉구했다.

[촬영 김채린]
lyn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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