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스벅 사태' 이어 또 갈라진 사회…학교 앞엔 근조·응원 화환 나란히
청소년 '혐오 놀이' 사회문제로…"민주시민교육 몇 시간 받는다고 안 바뀌어"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 앞에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배재고 야구부 일부 학생 선수들은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광주제일고와 경기 중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 구호는 지난 달 스타벅스 코리아가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맞춰 텀블러 할인 이벤트를 하며 '5·18 탱크데이'라고 홍보했던 사건을 연상케 해 공분을 샀다. 2026.7.1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광주제일고등학교(광주일고)와의 경기 중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응원 구호를 외쳐 거센 비판을 받은 서울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6일 광주를 찾아 사과하기로 하면서 이번 사태가 수습 국면을 맞게 될지 주목된다.
이른바 '스벅 탱크데이' 파문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해 사회 전반으로 파장이 커진 만큼, 두 학교가 화해한다고 해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전망이다.
청소년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확산한 역사·지역 등 혐오 표현 문제 역시 불거지면서 교육계에선 관련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징계위 회부·6개월 출전 정지…"혐오표현 철퇴"·"과한 처분"
서울시교육청과 전남광주교육청에 따르면 배재고 야구부 소속 학생선수 36명 전원과 일부 학부모, 교사 등 80여 명은 이날 오후 3시께 광주일고를 방문해 피해 학생 선수들에게 사과한다.
이들은 이후 5·18민주묘지로 이동해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피해자 묘역에 참배한다. 이 자리에는 김대중 전남광주 교육감과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도 동행한다.
배재고는 당초 지난 1일 광주일고에 방문 의사를 전했으나, 광주일고 측은 학생들의 심리 안정이 필요하고 기말고사 기간인 점을 들어 재고를 요청했다.
그러다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이 "학생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으로 화해하고 싶어 한다고 느껴져 사과 방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논란은 배재고 야구부 학생 선수 일부가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광주일고 더그아웃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라고 외친 사실이 보도되며 촉발됐다.
지난 5월 스타벅스 코리아가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맞춰 텀블러 할인 이벤트를 하며 '5·18 탱크데이', '책상에 탁'이라고 홍보한 사건과 맞물려 공분을 샀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홈페이지 캡처. 재배포 및 DB 금지]
학교는 곧장 사과한 뒤 경위 파악에 들어갔고, 조사 결과 한 학생이 기존 응원가에 '스타벅스'를 넣어 개사한 구호를 외치자 나머지 학생들이 이를 따라 제창한 것으로 확인됐다.
배재고는 선창한 학생과 '탱크 데이'라고 소리친 학생 총 2명을 생활교육위원회 회부하고 징계를 내리기로 했다.
최종 조사 결과에 따라 필요할 경우 동조 학생들의 징계와 교장·교감 등 관리자의 책임을 물을지 여부도 검토한다.
학교와 교육청 처분과는 별도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배재고에 6개월 출전 정지와 함께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의 남은 경기 몰수패를 의결했다.
그러나 이런 대응에도 이번 사태는 교육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일파만파 번져 나갔다.
5·18단체는 물론이고 교원단체, 최교진 교육부 장관 등 교육계 관계자, 시민사회단체가 잇따라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보수단체 등 일각에서는 처분이 과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스타벅스 코리아 사태가 일어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사회적 논란이 재점화됐다.
배재고 앞에는 시민들이 보낸 근조 화환과 응원 화환이 나란히 놓였고, 거리에선 배재고 야구부 처벌 찬반 집회가 번갈아 열렸다.
정치권에서도 야권을 중심으로 배재고 학생들에 대한 처분이 과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중 일부는 5·18 민주화운동이 '성역'이 됐다는 취지의 말을 해 비판받았다.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3일 서울 용산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학생학부모교사인권보호연대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배재고 학생들에 대한 근조화환 테러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6.7.3 jieunlee@yna.co.kr
◇ 학내 '혐오의 놀이화' 수면 위로…"사후약방문 아닌 제대로 된 대책 마련해야"
무엇보다 배재고 사태는 어른들이 모르는 사이 학교 내에 깊숙이 뿌리박혀온 '혐오의 놀이화'를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한 계기가 됐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일을 단발적 사건으로 넘길 게 아니라 학내에 만연한 혐오 표현과 차별 문화, 왜곡된 역사의식을 바로잡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제대로 된 대책 마련 없이는 언제든지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게 교육공동체의 의견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서울교사노조 등 교원단체는 잇따라 성명을 내어 일회성 사과와 제재에 머무르지 말고 근본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현장 교사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경기지역 초등교사 정모(35) 씨는 초등학교에서도 몇 년 전부터 이른바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용어'를 쓰는 아이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었다며 "현장 교사에게만 '알아서 교육하라'고 맡길 게 아니라 교육청과 교육부 차원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제대로 가르칠지 고민하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중등교사 이모(36) 씨 역시 "선생님이 내 반, 내 학교 아이들만 지도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세대의 사회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이 현상을 정부가 가볍게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우선 배재고 전 학생을 대상으로 역사·인권 교육과 차별·혐오 표현 방지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김대중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감이 취임 첫날인 1일 오후 광주제일고등학교를 방문해 최근 전국대회 경기에서 상대 팀인 배재고 선수단의 지역 비하성 응원으로 상처를 입은 야구부를 위로하고 있다. 2026.7.1 areum@yna.co.kr
그러나 관련 수업을 더 듣는다고 해서 굳어진 또래 문화를 고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몇 해 전부터 매년 예산을 들여 '민주시민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교실에 혐오문화가 번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김희정 중등교사노조 위원장 겸 교사노조 대변인은 "무슨 일이 터지면 늘 관련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식으로 대응해오는데, 몇 시간의 특별 교육으로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짚었다.
이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민감하거나 가치 있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고 판단하며 성숙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혜영 서울교사노조 대변인도 "혐오 표현이 학교 밖으로 확산한 뒤에야 이루어지는 사후 약방문식 대응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혐오 표현에 대한 교육은 학교 안에서 일상적으로, 생활지도와 수업 상황 전반에서 지속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주호 교총 회장은 "이번 사태는 운동장 내 일부 학생들의 우발적인 일탈을 넘어 우리 교육 현장 전반에 퍼진 학생 간 혐오와 조롱 문화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교사가 전문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책임 있게 학생을 지도할 수 있도록 제도적 권위를 회복시켜야 한다. 교실의 붕괴는 곧 우리 사회 미래의 붕괴"라고 말했다.
rambo@yna.co.kr
Copyright 연합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