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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문화체육관광부 집계 기준 2025년 K-콘텐츠 수출액은 149억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이제 K-콘텐츠와 K-컬처는 언어와 국경을 넘어 지구촌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향유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본인 제공]
지난 칼럼에서 우리는 건강의 시작이 뱃속 정원, 즉 장내 세균 생태계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매일의 식탁에서 '오래된 친구'(장내 세균)들에게 무엇을 먹이느냐가 곧 건강을 좌우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정원을 부지런히 가꾸는 일은 끝내 무엇을 위함인가.
흔히들 오래 사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바라야 할 것은 '오래'가 아니라 '건강하게, 그리고 오래'다. 병상에 누운 채 수명만 늘리는 일은 축복이 아니다.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한다. 그것도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함께 해야 할 일이다.
◇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 들어섰나
그동안 우리는 경제 제일주의와 편리성을 앞세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초경쟁 사회를 달려왔다. 그 청구서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미세먼지와 화학물질 오남용, 세계 최고 수준의 항생제 사용량, 가습기 살균제 참사, 그리고 분노조절장애의 만연이다.
가장 아픈 지표는 자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펴낸 '한눈에 보는 건강 2025'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연령표준화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3.2명으로, 38개 회원국 평균(10.7명)의 2배를 웃돌았다. 한국은 2003년 이래 줄곧 이 부문 1위라는 불명예를 벗지 못하고 있다. 풍요를 좇는 사이, 정작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건강한 연결은 황폐해진 셈이다.
결론은 분명하다. 생각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안전하고 더불어 사는 삶, 남을 배려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인간다운 삶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놀랍게도 이 방향 전환은 우리 뱃속 정원을 가꾸는 일과 한 몸이다.
◇ 장내세균을 살리는 다섯 가지 길
거창한 비법은 없다. 장내세균(마이크로바이옴)을 살리는 길은 결국 잘 사는 법과 다르지 않다.
우선 건강한 식사를 실천해야 한다. 식물에서 온 음식으로 '오래된 친구'를 먹이는 일이다. 그다음으로는 적당한 운동이 필수다. 또한, 적정한 수면과 이상적인 체중 유지도 따라와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유대의 유지다. 외로움은 마음만이 아니라 장내 생태계까지 황폐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 다섯 가지를 어린이에게 지켜주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항생제 남용, 플라스틱의 홍수, 광고로 넘쳐나는 매체, 기후 온난화, 끊이지 않는 갈등이 아이들의 장내 정원을 위협한다. 그래서 더욱 강조하고 싶다. 아이의 건강을 챙기려면, 먼저 부모의 장내세균부터 건강해야 한다. 부모의 정원에서 물려받은 씨앗이 아이의 평생 건강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다. 우리 몸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이는 '지구상 생명체 중 누가 주인인가'라는 물음과 일맥상통한다. 누구나 주저 없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요 주인이라고 답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이 세상의 주인은 박테리아이고, 인간은 그들이 마련해 둔 먹이 대상 가운데 조금 복잡한 생명체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적어도 장(腸)이라는 무대에서는 세균이 주인이고 인간은 숙주다. 숙주가 자기네를 제대로 먹여주지 않으면, 이들은 곧장 여러 가지 병을 일으켜 존재를 증명한다. 수십조 마리의 미생물을 거느린 우리는, 어쩌면 그들의 정원지기에 더 가깝다.
◇ 2천 년을 이어온 '똥의 의학'
주인을 갈아 끼우는 치료도 이미 현실이 됐다. 장내 생태계가 무너진 사람에게 건강한 사람의 분변을 옮겨 균형을 되살리는 분변 미생물 이식(FMT)이 그것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정의에 따르면 이 치료법은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추출해 질병이 있는 환자의 장에 주입해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복원하는 방법이다. 주로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 감염(CDI)과 같은 난치성 장 질환에 활용되며, 90% 이상의 높은 완치율을 보인다.
역사는 의외로 깊다. 기원후 4세기 중국 동진 시대의 의사 갈홍(葛洪)은 식중독과 심한 설사 환자에게 분변액인 '황룡탕'(黃龍湯)을 먹여 낫게 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우리 역사에도 흔적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554년 열병이 심해진 중종에게 내의원이 '야인건수'(野人乾水)를 처방한 사례가 전한다. 야인건은 인분을 뜻한다.
오늘날 FMT는 비강·위내시경·캡슐 등 상부 위장관 경로와 대장내시경 같은 하부 위장관 경로로 정교하게 전달된다. 현재 가장 확실한 적응증은 앞서 언급한 항생제 치료가 듣지 않는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 감염이며,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과민성대장증후군(IBS), 간 질환, 비만을 포함한 대사질환, 정신질환, 암 면역치료, 염증성 관절염까지 연구가 뻗어 있다.
'오래된 친구'를 되돌려주는 일이 곧 치료가 되는 시대인 셈이다.
2천500년 전 히포크라테스에서 4세기 갈홍의 황룡탕을 거쳐, 오늘 한국인의 장내세균 지도에 이르기까지 의학은 한 가지 진실을 가리킨다. 건강의 시작도, 그리고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길의 출발점도 결국 뱃속 정원에 있다는 것이다. 그 정원을 누구의 손으로, 무엇을 먹여 가꿀지는 매일의 섭생과 발걸음, 그리고 곁에 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 서울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역임 ▲ 영국 옥스퍼드의대 연구원·영국생리학회 회원 ▲ 세계생리학회(International Union of Physiological Sciences) 심혈관 분과 위원장 ▲ 유럽 생리학회지 '플뤼거스아히프' 부편집장(현) ▲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현)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학제학과 의생명과학전공 초빙석좌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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