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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문화재단 원혜경 이사장, 35년 재외동포 교육·문화·봉사 외길
이민 1세대 여성 80명 초상 기록부터 독도교육·노숙인 지원까지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훈민문화재단 원혜경 이사장이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프레스클럽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6. 6. 12. phyeonsoo@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언어 장벽을 넘어 열심히 살아온 한인 여성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한 장의 초상에는 수십 년의 도전과 사랑, 이민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미국 뉴저지에서 35년째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쳐 온 훈민문화재단 원혜경(66) 이사장은 1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미주 이민 1세 한인 여성 사업가 80명 초상 사진전을 개최한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교육과 문화, 봉사를 아우르며 미주 한인사회의 구석구석에서 활동해 온 그는 최근 방한해 오는 19일 통일부 제25기 평화통일교육위원 출범식 참석과 미주 한인 여성 사업가 초상 사진집 출판 협의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원 이사장이 최근 가장 심혈을 기울인 사업은 사진작가 박준과 2년 2개월에 걸쳐 진행한 '미주 이민 1세대 한인 여성 사업가 초상 프로젝트'다. 그는 디렉터를 맡아 한인 여성 사업가 80명을 섭외하고 촬영을 이끌었다.
"그날 하루만큼은 최고의 날을 만들어드리고 싶었어요. 언어 장벽부터 사업 운영까지, 열심히 살아온 분들에게 위로를 드리고 기록으로 남기자는 게 취지였죠."
참여자들은 드레스와 전문 메이크업을 갖추고 렌즈 앞에 섰고, 작품은 지난 5월 28∼31일 맨해튼에서 전시됐다. 사진집은 오는 9월 출간될 예정이다.

훈민문화재단 원혜경(왼쪽서 3번째) 이사장이 박준(왼쪽서 1번째) 사진작가, 후원자들과 함께 전시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훈민문화재단 제공]
앞서 지난 2월에는 뉴저지에서 윤동주 시인 서거 79주기 추모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원 이사장은 재미동포 음악인들로 구성된 밴드 '눈 오는 지도'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이 밴드는 2005년부터 윤동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하며 미국, 일본, 중국 등 전 세계에 시인의 정신을 알려왔다. 원 이사장은 이들의 취지에 공감해 매년 추모 공연이 지속되도록 물심양면 지원하고 있다.
원 이사장은 캐나다 유학 이후 대한성공회 신부인 남편의 발령으로 미국에 정착했다. 뉴저지 성베드로 한인 성공회 교회가 운영하는 한글학교 교사로 시작해 교장까지 지냈고, 교회 내 학교의 한계를 느껴 독립해 학교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세종학당'으로 운영했으나, '훈민학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훈민학당으로만 18년, 이전 교회학교까지 합산하면 꼬박 35년이다.
오는 7월 23~25일 재미한국학교협의회(NAKS) 제44회 학술대회 및 총회에서 장기근속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훈민학당은 한국어 교육을 넘어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03년부터 이어온 독도 교육이 대표적이다. 학생들은 독도 경비대원에게 위문편지와 위문품을 보내고, 경비대원들이 답장과 사진으로 화답하면 이를 학교 게시판에 게시해 공유한다.

[훈민문화재단 제공]
원 이사장은 "독도 OX 퀴즈도 학생들이 문제를 내고 진행도 맡긴다"며 "모든 교육 프로그램을 아이들이 스스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고 했다. 이 공로로 2017년 경북도지사상을 수상했다.
맨해튼 거리 축제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독도 부채와 영문 홍보 책자를 들고 나가 외국인들에게 배포한다.
"예전에는 아주 생소해하던 외국인들이 요즘엔 독도를 알고 반응해요. K-문화의 위상이 이 정도로 달라졌구나, 소름이 돋을 정도예요."
한국어능력시험 응시자 중 외국인 비율이 한국인을 넘어선 현실을 직접 목격해 온 만큼, 원 이사장의 목소리에는 깊은 감회가 묻어났다.
윤동주 시 쓰기·낭송 대회도 훈민학당의 자랑이다. 단순 암송이 아니라 직접 시를 창작하게 하며,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로도 쓸 수 있다.

[훈민문화재단 제공]
"주말 한국학교는 언어 습득에만 시간을 쏟다 보니 정서적인 부분이 빈약해요. 그래서 시 낭송과 시 쓰기를 강조하죠."
학생들이 직접 쓴 시는 시화집으로 엮고, 매년 2월 열리는 윤동주 추모 공연 무대에도 오른다.
이민자들의 문화적 갈증을 채우기 위해 2020년 무대 시설을 갖춘 문화공간 '엠사이드'를 뉴저지 버겐필드에 조성했다.
최근 훈민학당과 엠사이드, 윤동주 공연을 아우르는 '훈민문화재단'을 출범시켜 활동을 체계화했다.
교육과 문화만이 전부가 아니다. 원 이사장은 3년째 뉴욕·뉴저지 한인 노숙인 센터 이사장을 연임하고 있다. 뉴욕에는 여성센터, 뉴저지에는 남성센터를 각각 운영하며, 두 곳 합산 상시 입소 인원은 20명 안팎이다.
"처음부터 중독자였던 게 아니에요. 주거를 잃는 순간부터 거리로 나가고, 그때부터 알코올이든 약물이든 중독이 시작됩니다."

[훈민문화재단 제공]
원 이사장은 한인 정치력 신장을 위해서도 오랫동안 발로 뛰었다. 앤디 김 상원의원 후원회장을 수차례 맡으며 한인 커뮤니티를 결집시켰다.
미국 선거법상 개인별 후원 한도가 정해져 있어 팀을 구성해 분담하는 방식으로 후원금을 모았다. "앤디 김을 상원의원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한인들이 정말 엄청 열심히 뛰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차세대 한인 지도자들이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미국에서 태어났어도 부모가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노력 끝에 역사 전문 용어까지 익힌 찰스 윤 전 뉴욕한인회장을 긍정적 사례로 꼽았다.
원 이사장이 무급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데는 개인적 사연이 있다. 40대에 암 투병을 겪고 난 뒤 "노후 자금을 쌓기보다 유익한 일에 쓰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훈민학당 운영과 독도 교육, 윤동주 문화사업, 미주 한인 여성 기록 프로젝트, 노숙인 지원 활동까지. 그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매개로 한인사회를 잇는 또 하나의 '민간 외교'를 이어가고 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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