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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본인 제공]
"모든 질병은 장에서 시작된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2천500년 전에 남긴 이 말은 오랫동안 격언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이 오래된 문장이 놀랍도록 정확한 과학적 통찰이었음을 하나씩 증명해가고 있다.
◇ GI 지수, 만능열쇠가 아니었다
다이어트를 진지하게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개념이 있다. 바로 '혈당지수'(Glycemic Index, GI)다. 음식을 먹은 뒤 혈당이 얼마나 빠르게 오르는지를 수치화한 것으로, 55 이하는 저GI, 56~69는 중GI, 70 이상은 고GI 식품으로 분류된다.
흰 빵, 도넛, 와플, 각종 스낵처럼 혈당을 빠르게 올리는 고GI 식품은 인슐린 분비를 과도하게 자극해 당뇨 위험을 높이고 지방 축적을 촉진한다. 반면 신선한 과일, 저지방 요구르트, 파스타, 두유 같은 저GI 식품은 혈당을 천천히 올려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GI 수치는 어디까지나 평균값이라는 점이다. 즉, 같은 쌀밥을 먹어도 어떤 사람은 혈당이 급격히 오르고, 어떤 사람은 거의 오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초콜릿을 먹어도 혈당 변화가 미미하다.
이 '개인차'의 비밀을 풀 열쇠가 바로 장내 세균이다. 최근 연구는 식사 후 혈당 반응을 예측하는 데 있어서 장내 미생물 구성이 섭취한 칼로리나 탄수화물 양보다 더 정확한 예측 인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같은 음식도 내 몸속 세균들이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뜻이다.
이 발견이 낳은 새로운 개념이 '개인 맞춤 영양'(Personalised Nutrition)이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하나의 식단'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들었던 런던의 한 응급실 의사 이야기는 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너무 바빠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하면서도 살이 빠지지 않아 고민하던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던 스시, 포도, 초콜릿을 모두 끊고 대신 아보카도와 바나나 중심의 식단으로 바꾸도록 권고받았다. 그것은 그저 칼로리를 줄이는 지시가 아니라, 그녀의 장내 세균 분포에 맞게 최적화된 식단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인 체중 감소였다.
이 사례는 곧 하나의 사업으로 이어졌다. 영국에서는 설문과 대변 분석을 통해 개인의 장내 세균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음식을 추천해주는 회사도 탄생했다. 영국 헬스테크 기업 ZOE가 그 주인공인데 런던 기반의 개인 맞춤 영양이 주된 사업 모델이다. ZOE는 설문과 대변(stool) 샘플 키트를 통해 개인의 장내 미생물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맞춤형 식단 조언을 앱으로 제공한다. 킹스 칼리지 런던 교수 출신 팀 스펙터 창업자는 쌍둥이 연구를 수십 년간 진행하면서, 유전자가 동일한 쌍둥이도 같은 음식에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을 발견한 데서 출발했다. 2017년 창업 후 3년간 스텔스 모드로 운영되며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스탠퍼드, 하버드, 킹스 칼리지 런던과 공동으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진행했다. 장내 세균 구성, 혈당 반응, 혈중 지방 수치 등 개인 생체 데이터를 종합해 식이 조언을 맞춤화하며,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다는 점에 기반한다.

[홈페이지 캡처]
일반적으로 블루베리, 체리, 복분자, 자두, 토마토, 포도, 녹차처럼 플라보노이드(Flavonoid)가 풍부한 식품은 유익한 장내 세균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결국 어떤 음식이 나에게 맞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내 몸 안에 살고 있는 세균이다.
◇ 세균이 당신의 식욕을 설계한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장내 세균은 음식 소화를 돕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우리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어떤 기분인지에 이르기까지 직접 관여한다.
장내 세균은 뇌와 직접 연결된 고속도로를 갖고 있다. 바로 '미주신경'(Vagus Nerve)이다. 미주신경은 장과 뇌를 연결하는 통신선으로, 하루에도 수백만 개의 신호가 오간다. 세균은 이 미주신경을 통해 뇌에 신호를 보낸다. 마치 시스템을 '해킹'하듯 말이다.
세균이 보내는 신호는 간단하지 않다. 도파민, 세로토닌처럼 기분과 감정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을 직접 생산하기도 하고, 렙틴·그렐린처럼 배고픔과 포만감을 조절하는 소화 호르몬을 혈액 속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실제로 인체 세로토닌의 약 90%가 장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어떤 세균은 포도당을, 어떤 세균은 지방을 좋아한다. 이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먹이를 더 많이 공급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당을 좋아하는 세균이 장을 장악하면, 숙주인 우리는 끊임없이 단것을 먹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의지력 부족'으로 자책했던 그 순간이, 실은 세균의 요구였을지도 모른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는 흥미롭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 그룹에서 동일한 식사를 오랜 기간 제공한 뒤 분석했더니, 두 집단의 장내 세균 분포가 현저히 달랐다. 우울증 환자에게 유익한 유산균을 꾸준히 투여했더니 증상이 개선됐다는 보고도 있다. 잘 울고 많이 먹으려 보채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장내 세균 역시 서로 다르다.
◇ 뱃속의 '다크 매터'를 돌봐야 할 시간
필자가 영국 옥스퍼드 의대에서 연구하던 시절부터 저명한 미생물 전문가인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제임스 킨로스 박사는 저서 '다크 매터'(Dark Matter,2023)에서 장내 미생물을 우주의 '암흑 물질'에 비유했다. 우주의 암흑 물질처럼, 장내 미생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건강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기분, 식욕, 운동 능력, 심지어 파트너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 보이지 않는 생태계를 보호하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를 해치는 것과 다름없다.

[홈페이지 캡처]
"걷기는 인간에게 최고의 약이다"라고도 했던 히포크라테스의 또 다른 메시지가 새삼 와닿는다. 장내 세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의 하나가 규칙적인 걷기와 다양한 식이섬유 섭취라는 것이 현대 과학이 내리는 결론이기도 하다.
2천500년 전의 현자도, 오늘의 미생물학자도 같은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 건강의 시작은 배 속에 있다. 우리가 그동안 외면해 온 그 수십조 마리의 세균이, 사실은 우리 건강의 가장 충실한 동반자였다.
결국, 다이어트는 의지의 싸움이 아니라, 뱃속 생태계를 어떻게 가꾸느냐의 문제다. (3편에서 계속)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 서울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역임 ▲ 영국 옥스퍼드의대 연구원·영국생리학회 회원 ▲ 세계생리학회(International Union of Physiological Sciences) 심혈관 분과 위원장 ▲ 유럽 생리학회지 '플뤼거스아히프' 부편집장(현) ▲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현)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학제학과 의생명과학전공 초빙석좌교수(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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