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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재학생·교직원 등 참석…"학교 걱정 내려놓고 편히 쉬시길"
일성여중고 교장 맡아 6만 만학도에 배움의 기회…별세로 학교 존폐 위기

[촬영 윤민혁]
(서울=연합뉴스) 윤민혁 기자 = 여러 사정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한 성인 여성들의 한을 풀어준 '한국의 페스탈로치' 이선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장의 추모식이 45번째 스승의 날인 5일 열렸다.
추모식에는 고인에게 가르침을 받은 졸업생·재학생과 교직원 등 15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인의 아들인 원준(세종대 교수)·혁준(일성여중고 행정실장) 씨도 자리했다.
이날 추모식이 열린 일성여중고 다목적실은 매년 스승의 날이면 학생들이 이 교장을 비롯한 선생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던 곳이다.
검은색 옷을 차려입고 추모식에 참석한 그의 제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고인을 추억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나 묵념 시간이 되자 식장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김신일 전 교육부총리와 김상현 일성여중고 교감 등은 추모사를 통해 고인을 기렸다.
김 전 부총리는 "(이 교장은) 어려운 상황에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던 어린 시절을 잊지 않았다"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이들의 교육에 평생을 바친 것은 이를 갚기 위한 것으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늘나라에서도 평생교육 돕는 일을 하실 것"이라며 "섭섭하지만, 편안히 영면하시길 빈다"고 추모했다.

[촬영 윤민혁]
일성여중고 선생님들에게도 고인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교직원을 대표해 추모사를 한 김상현 교감은 "편찮으신 순간에도 학교는 별일 없는지, 학생들은 잘 지내는지 물으시던 목소리가 선명하다"며 "지금도 전화하면 받으실 것 같고 교장실에 찾아가면 계실 것 같다"고 울먹였다.
이어 "교장 선생님께서 걸으신 길을 저희 교직원들이 잘 이어가겠다"며 "이제 학교 걱정도 내려놓으시고 국경 없는 그곳에서 고향 땅도 마음껏 밟으시라"며 애도했다.
학생들도 눈물 속에 이 교장과 이별했다. 추모식 막바지에 고인의 생전 영상이 나오자 학생들은 고인의 조그마한 몸짓 하나 음성 하나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화면에 집중했다.
재학생 김영자(77) 씨는 "교장 선생님은 아픈 곳과 낮은 곳을 다 헤아리신, 하늘에서 주신 특별한 분 같다"며 "우리한테도 잘해주셨지만, 선생님들께도 가족처럼, 자식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신 분"이라며 고인을 추억했다.
김씨는 "교장 선생님께서 다리가 불편하셔서 도와주고 싶었지만, 재학생이라 거절하시고, 졸업하면 오라고 하셨다"면서 "내년 3월이 졸업이라 도와드릴 생각에 설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버리셨다"며 말끝을 흐렸다.
평생을 배움의 때를 놓친 만학도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했던 이 교장은 지난 10일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63년 당시 야학이었던 일성고등공민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기 시작해 1972년부터 교장을 맡아 지난 2월까지 6만명 넘는 만학도에게 배움의 기쁨을 선물했다.
이후 학교를 양원주부학교와 일성여중고로 발전시키고, 구로공단 등의 여성 노동자를 위한 일성일요학교를 운영하는 등 '한국의 페스탈로치'라 불리며 사회적 존경을 받았다.
그의 별세로 일성여중고는 존폐 위기에 처했다.
평생교육법 개정에 따라 평생교육 시설은 법인만 설립 주체가 될 수 있는데, 법 개정 전 문을 연 일성여중고의 경우 설립 주체가 고인으로 되어 있다.
일성여중고가 존속하려면 설립 주체를 법인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비용 등 여러 문제가 있어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법인 전환이 무산되면 학교는 올해 입학한 학생들이 졸업하는 2028년 2월에는 폐교 수순을 밟게 된다.

[촬영 윤민혁]
m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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