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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 만학도에 배움 선물 '한국의 페스탈로치' 이선재 교장 별세(종합)

입력 2026-05-11 10: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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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놓친 여성들의 스승…야학부터 시작해 학력인정 '일성여중고' 일궈




인사말 하는 이선재 교장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개교 71주년 기념 '빛을 향하여 36 (학교! 넝쿨째 굴러온 행복)' 출판기념회에서 이선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11.13 jin90@yna.co.kr



(서울=연합뉴스) 윤민혁 기자 = 학업을 마치지 못한 성인 여성들의 한을 풀어준 '한국의 페스탈로치' 이선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장이 지난 10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이 교장은 1936년 개성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서울로 피란을 온 실향민이다. 10대 시절 주변의 도움을 받아 학업을 이어갔던 그는 자신처럼 공부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배움을 놓친 이들을 돕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그는 1963년 당시 야학이었던 일성고등공민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기 시작해 1972년부터 교장을 맡았다.


이후 학교를 양원주부학교와 일성여자중고등학교로 발전시키고, 구로공단 등의 여성 노동자를 위한 일성일요학교를 운영했다.


일성여중고는 제때 학업을 마치지 못한 40∼80대 여성 만학도들이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과정을 2년 만에 이수할 수 있는 학력인정 평생학교다.


2005년에는 한국 최초의 학력인정 성인 초등학교인 양원초등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평생을 바쳐 배우지 못한 성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 그는 생전 '한국의 페스탈로치'라 불리며 사회적 존경을 받았다.


스위스의 교육개혁가이자 '고아들의 대부'로 알려진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1746∼1827년)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교육을 일반 대중에게까지 확대하려 노력한 교육가였다. 바로 이 점에서 이선재 교장은 페스탈로치와 닮았다.


그는 교육이 남성들의 전유물에 가깝던 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노력했다.


그가 남긴 홈페이지의 학교장 인사에는 "가난한 살림 때문에 또는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배움의 때를 놓친 여성들에게 참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부디 배움의 열차에 동승하셔서 밝고 활기찬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라고 적혀있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한 일성여고 수험생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렇게 배움의 기쁨을 누리게 된 만학도들이 올해 2월까지 6만명 이상.


이들에게 이 교장은 틈만 나면 교실을 둘러보고 늘 인사를 건네는, 누구보다 친근한 선생님이었다.


사회에서 선한 일을 한 학생들은 교장실로 불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책에서 읽은 좋은 이야기들을 매주 학생들에게 들려주며 삶의 이정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껏 6만 만학도에게 기회의 요람이었던 일성여자중고등학교가 사라질 위기다.


지난 2007년 평생교육법이 학교와 재단 법인만 평생교육 시설 설립 주체로 인정되도록 개정됐기 때문이다.


개정 이전에 세워진 일성여중고는 법인으로 전환해야만 존속할 수 있다.


학교 관계자는 "학교를 완전히 법인화하지 않는 한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법인화를 위해 운동장이나 실험실 등 시설들이 갖춰야 하는데 쉬운 상황이 아니다"라고 한숨지었다.


이 교장의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2025년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24∼64세 중등 이하 학력자는 전체의 7%다. 65세 이상 인구를 고려하면 아직 수많은 이들이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 교장은 자신의 꿈을 후세에 맡긴 채, 941명의 일성여중고 재학생들을 남기고 영면에 들었다.


유족은 아들 이원준(세종대 교수)·이혁준(일성여중고 행정실장)씨, 딸 이승은씨, 사위 김성실(전남대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은 13일 자정이며 장지는 동화경모공원이다.


m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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