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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들] 자살공화국, 세종과 구파발 노인을 생각한다

입력 2026-05-08 08: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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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선진국, 그런데 노인 빈곤은 OECD 최악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노인빈곤율이 2년 연속 악화된 것으로 나타난 3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 앞에 어르신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세종대왕은 노인을 각별히 챙긴 임금이었다. 양반과 노비를 가리지 않고 80세 이상 노인에게 쌀과 고기, 술을 내렸고 궁궐에서 양로연을 열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 곳곳에 남아 있다. 고양군 덕수원(구파발 추정)에 살던 107세 노인이 병석에 있다가 임금이 보낸 옷과 음식을 받고 감격해, 그 옷을 몸 위에 덮은 채 숨을 거뒀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6·25 전쟁 직후 헐벗고 굶주리던 한국 사회 역시 노인은 정성으로 대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환갑잔치는 동네 전체의 큰 행사였다. 사람이 예순을 넘긴다는 건 축복에 가까웠다. 집 마당에 천막을 치고 고기를 썰고 국수를 삶았다. 친척뿐 아니라 이웃들까지 몰려와 "만수무강하세요"라고 덕담을 건넸다.


그런데 한국은 잘살게 된 뒤 오히려 노인이 가장 외로운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지금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OECD 최고 수준이다. 특히 80대 이상 남성 자살률은 세계에서 연구 대상이 될 만큼 이례적으로 높다. 잘 먹고 오래 사는 데는 성공했지만, 함께 늙어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노인 자살의 배경에는 가난과 고립이 있다. 지금의 고령층은 산업화 과정에서 자식 교육과 생계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세대다.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마음으로 평생 일했지만,정작 자신의 노후는 준비하지 못했다. 60세 전후 은퇴 뒤 소득은 끊기고 병원비는 늘어난다. 자식들의 발길은 뜸해지고 배우자마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집 안에는 적막만 남는다. 병마의 고통보다 더한 고독은 결국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유언으로 이어진다.


결국 노인을 살리는 것은 관계다. 구청의 안부 전화 한 통, 경로당 점심 한 끼, 복지관 행사 한 번이 삶을 붙드는 힘이 된다. 세종의 양로연도 본질은 같았다. 국가와 공동체가 '당신을 기억하고, 존중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이었다.




노인자살 급증 속 정년연장은 헛바퀴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김동명 위원장을 비롯한 한국노총 관계자들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법정정년연장 연내처리 및 공무원 소득공백해소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2.4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전 세계적으로 이런 망신도 없다"며 자살 예방 대책 강화를 주문했다고 한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 지원 확대 같은 대책이 거론됐는데, 그보다 먼저 왜 이렇게 많은 노인이 삶의 후반전에서 혼자 무너지고 있는지 들여다봤으면 한다. 환갑도 되기 전에 직장에서 밀려나고, 하루 종일 전철과 공원을 맴돌다 몸까지 약해지면 결국 남는 건 외로움뿐임을 국가가 모르지 않을 것이다.


기업의 자본 논리 앞에 멈춰버린 정년 연장 논의를 서두르고,노인과 자식, 손주 세대를 이어주는 공동체 유대 강화책 등 실질적 대안을 내놔야 한다. 지금 중요한 건 인간이 늙어도 사회 안에 남아 있을 수 있게 만드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세종이 구파발 노인에게 정성을 다하고, 실록이 이를 기록했던 이유도 결국 거기에 있을 것이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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