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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자 강만길의 강의 형식을 빌린 창작과비평의 『20세기 우리 역사』는 널리 읽힌 한국 현대사 텍스트 중 하나이다. 책은 일제가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1905년 11월 17일 맺은 조약을 을사보호조약이라고 썼다. 1999년 발행된 초판이나 2009년 나온 증보판(1쇄)이나 같다. 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면서 늘 거슬렸던 지칭이다. 보호라니? 그러나 당대 여러 책과 달리 을사보호조약을 작은따옴표 안에 놓았다. '전략적'이었다. 어느 일방의 이름하기라는 점을 그렇게 내보인 것이다. 그 일방이란 당연히 일제이다. 책은 조약이 강제로 체결됐다 하여 당시 사람들이 반발한 사실을 전하며 늑결(勒結)이라는 낱말도 사용했다.
'굴레 늑에 맺을 결' 하여 늑결. 강제로 맺었다는 뜻이다.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맺을 수밖에 없었던 을사보호조약은 점차 을사조약이나 을사늑약(勒約. 굴레 늑에 맺을 약)으로 이름이 바로잡혔다. 이른바 새천년(2000년) 들어 국사편찬위원회 1종도서연구개발위원회가 편찬한 '고등학교 국사'는 "일제는 러일전쟁을 전후하여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열강으로부터 한국의 독점적 지배권을 인정받은 후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려는, 이른바 을사조약의 체결을 강요해 왔다"고 기록했다.

이후 주진오 외 8인이 쓰고 국사편찬위의 검정을 거쳐 ㈜천재교육이 2019년 발행한 '고등학교 한국사'는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를 보내 일본군을 동원하여 궁궐을 포위하고,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에 서명하게 하였다"고 본문에 서술하고 관련 사진에 "고종은 끝까지 조약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조약은 국제법상 무효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되었기 때문에 '을사늑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해설했다. 을사늑약은 어느새, 과거 을사보호조약만큼이나 보편적인 이름이 되었다.
을사늑약 체결 한 달 전인 1905년 10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고종 친서가 최근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발견됐다고 동아일보가 어제(6일) 보도했다. 1882년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에 의거해 미국이 일본의 조약 체결 압박을 저지하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1905년 7월 미국과 일본 간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있었음을 역사에서 배웠다. 미국은 일본에 대한제국 지배권을, 일본은 미국에 필리핀 지배권을 서로 인정하는 비밀조약 말이다. 고종은 까마득히 몰랐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밀리고, 밀약이 늑약을 초래할 줄을. 국가이익은 변한다. 생물이다. 외교도 변한다. 역시 생물이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강만길, 『20세기 우리 역사』, ㈜창작과비평사, 1999
2. 강만길, 『20세기 우리 역사』(증보판), ㈜창비, 2009
3. 지은이 주진오 외 8인, 『고등학교 한국사』(국사편찬위원회 검정본), ㈜천재교육, 2019
4. 국사편찬위 1종도서연구개발위, 『고등 학교 국사 (하)』, 대한교과서주식회사, 2000
5. 유튜브 채널 국가보훈부 을사조약이 아닌 을사늑약으로 불리는 이유! 11·17 순국선열의 날[1분 보훈 Why? EP.30] - https://www.youtube.com/watch?v=B5XUkXcDw8A
6. 동아일보, [단독]고종 '을사늑약 저지' 美에 친서…121년만에 워싱턴서 발견 (업데이트 2026-05-06 10:41 입력 2026-05-06 04:30) -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60506/133866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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