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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조건들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사람은 누구나 잘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은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중국 고전 <서경(書經)> '홍범편(洪範篇)'은 인간의 5가지 복(福)을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으로 제시했다. 이 중 마지막인 고종명은 자연의 이치를 따라 고통 없이 평온하게 생을 마감하는 상태를 말한다. 실제로 우리 조상들은 잘 죽는 것을 무병장수나 부귀와 같은 반열의 복으로 여겼다. 잘 사는 것의 완성은 잘 죽는 데 있다는 통찰, 그 무게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고종명은 오늘날 '웰다잉(Well-dying)'으로 불린다. 정현채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명예교수는 20년째 '죽음학' 강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2018년 방광암 진단을 받았는데, 일찍이 죽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덕분에 겸허히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는 저서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에서 근사(近死)체험과 삶의 종말경험 등을 설명하며 죽음의 공포를 줄이고, 삶의 마지막을 평온하게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죽음을 직시하지 않는 사회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는 요원할 뿐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죽음이 여전히 입에 올리기 꺼려지는 금기(禁忌)에 가깝다.
제도적으로 웰다잉을 이루는 두 개의 축은 연명의료 중단과 생애말기 돌봄 체계(호스피스)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치료를 멈추는 선택은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니다. 지난해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는 8만1천220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84%가 연명의료에 반대한다는 조사도 있다. 이러한 인식 변화 속에서 삶의 연장이 아닌 삶의 질을 택하려는 경향이 확산하고 있다. 그것이 고종명의 현대적 구현이다. 죽음을 억지로 미루지 않고 남은 시간을 인간답게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사회적 합의를 얻고 있다.
그러나 웰다잉을 위한 사회적 조건들은 부족하다. 지난해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 8만1천220명 중 호스피스 시설에서 임종을 맞은 이는 2만3천816명으로 약 30%에 그쳤다고 한다. 나머지 5만7천404명은 요양병원과 응급실을 전전하다 고통과 불안 속에 숨졌다는 것이다. 올해로 7년째 연간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웃돌고 있다. 정작 이를 감당할 호스피스 병상과 완화의료 인프라는 턱없이 미흡하다. 유럽완화의료협회 기준 인구 100만 명당 50개가 필요한 호스피스 병상이 한국엔 37개에 불과하고, 관련 예산은 수년째 동결 중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도 크다.
연명의료 중단이라는 '출구'만 열어놓을 게 아니라, 그 이후를 책임질 '경로'도 설계해야 한다. 호스피스 병상 확충, 가정형 완화의료 확대, 요양병원의 역할 재정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동시에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고종명은 개인의 덕목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주는 조건이기도 하다. 삶의 품격은 존엄한 죽음으로 완성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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