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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비혼 출산·비독점적 연애 등 대안적 형태 확산
제도는 여전히 '정상 가족'에 갇혀…"다양성 인정 논의 필요"

염모(37)씨는 비혼 출산을 위해 지난 1월 덴마크를 찾았다. 사진은 염씨가 유럽의 다른 국가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 [염씨 제공]
(서울=연합뉴스) 정지수 기자 = 경북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염모(37)씨는 결혼하지 않고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기 위해 올 1월 덴마크로 향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병원으로 직행해 인공수정을 한 뒤 당일 귀국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증받은 정자로 인공수정 하는 것은 국내에서 불법이 아니지만, 공식적으로는 난임을 겪는 부부만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다. 염씨가 빡빡한 일정에도 지구 반대편까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처음부터 비혼 출산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무척 좋아했다는 염씨는 배우자로서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며 "나라는 사람이 결혼이랑 맞을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동시에 나이를 더 먹기 전에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던 그는 한 의사의 자발적 비혼 출산 사례를 접하고 용기를 얻었다.
염씨는 4일 연합뉴스에 "꼭 결혼 형태가 아니어도 그냥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이를 먼저 가지고 나중에라도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란 마음도 있었다. 부모님의 반대도 끝없는 설득에 응원으로 바뀌었다.
염씨가 비혼 출산을 결심하고 덴마크에 다녀온 과정을 인터넷 카페에 올리자 "나도 비혼 출산을 준비하고 있다"는 누리꾼의 지지 댓글이 쏟아졌다. 지난 1월의 인공수정은 실패했지만, 염씨는 조만간 다시 덴마크로 떠날 예정이다.
염씨는 "많은 고민과 두려움 끝에 결정을 내렸다"며 "스스로 책임질 준비가 돼 있다면 자신의 선택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염씨의 사례를 구글 제미나이로 생성한 삽화 [DB 및 재판매 금지]
2020년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라는 자전 에세이로 화제와 논란을 불러온 홍승은(38) 작가는 "서로를 돌보는 여러 형태의 이름 없는 관계들이 가족보다 더 친밀할 수 있다"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홍 작가는 11년, 9년을 만나온 두 명의 애인과 8년간 한집에서 살았다.
상호 합의로 한 명 이상의 사람과 연인 관계를 맺는 논모노가미(Non-monogamy·비독점적 다자연애)다.
소유하고 구속하는 연애에 상처를 겪은 홍 작가는 '서로를 통제하지 않는 사랑은 불가능한가'라는 화두를 치열하게 고민하다 새 연인과 비독점적 관계에 합의했고, 또 다른 인연이 더해져 세 사람이 함께 살게 됐다.
홍 작가는 "일대일 연애라 해도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관계가 곪아버리듯, 논모노가미도 형태의 특이성보다 서로 간의 합의와 존중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홍승은 작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가족이 아닌 남남끼리 사는 5인 이하의 가구'를 뜻하는 비친족 가구는 2020년 42만3천459가구에서 2024년 58만413가구로 급증했다.
연인 간 동거나 사실혼, 동성 부부, 룸메이트, 노인이 돌봄 인력과 함께 사는 경우 등이다. 여기엔 시설 등에 집단으로 거주하는 가구는 제외된다.
염씨 같은 자발적 비혼 출산과 혼인신고 없는 출산을 아우르는 혼외출산 비율 역시 2020년 2.5%(6천876명)에서 2024년 5.8%(1만3천827명)로 두 배가 됐다.
이처럼 가족의 형태는 급변하고 있지만 제도는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홍 작가는 동거인이 아플 때 수술 동의 등 보호자 권리를 행사할 수 없던 일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그럴 때마다 평소에 잘 연락하지 않는 원가족에게 연락하는 아이러니를 겪었다"고 말했다.
혈연이나 혼인 관계가 아닌 동거인도 가족에 준하는 관계로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이 21대와 22대 국회에 발의됐으나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프랑스의 경우 시민연대협약(PACS·팍스)을 통해 성별에 상관없이 동거인이 결혼에 준하는 세제 혜택과 건강보험 권리 등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네덜란드의 등록파트너십은 혼인과 가장 유사한 제도로 꼽힌다. 스웨덴은 육아휴직 권리를 부모의 동거인에게도 준다.

[연합뉴스 인포그래픽 생성기 제작]
비혼 여성이 보조생식술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 이른바 '독립출산지원법' 역시 21대와 22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계류 중이다.
특히 종교계 일각에서는 동성혼을 부추길 수 있다며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전형적 형태의 가구가 이미 우리 사회의 큰 축으로 자리 잡은 만큼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유나 가족구성권연구소 대표는 "꼭 비혼 출산이 아니더라도 이혼·재혼 가정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한다"며 "비혼 출산이나 다자연애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돌봄과 양육에 개입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당장 해외와 똑같이 제도를 도입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부분부터 점차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index@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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