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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글을 남기니 슬픕니다…늘 기억하는 기쁨을 봉헌하며"
서울대 중앙도서관, 박완서 타계 15주년 맞아 조성

(서울=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17일 낮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마련된 '박완서 아카이브'에 들른 이해인 수녀가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2026.4.18. honk0216@yna.co.kr
(서울=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저는 '꽃삽'에서 선생님의 추천 글을 받고 엄청 기뻐했던 해인 수녀입니다! 2011년 1월 22일 천상 여정에 드실 때까지 사랑을 많이 받은 클라우디아 수녀가 여기에 글을 남기니…슬픕니다. 늘 기억하는 기쁨을 봉헌하며."
이달 17일 정오께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마련된 '박완서 아카이브'에 들른 이해인 수녀가 남긴 방명록이다.
방명록은 글이 전부가 아니었다. 꽃이 향기를 내뿜고 높은음자리표가 노래를 불렀다. 여기에 더해 백합과 다슬기, 불가사리가 어우러져 생명을 틔웠다.
이렇듯 조화로운 방명록에는 이해인 수녀가 박완서 작가로부터 받은 영향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해인 수녀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박완서 작가로부터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주변의 자연과 사물과 인간을 끊임없이 관찰하면서 애정으로 대하는 우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이해인 수녀는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출간 50주년과 산문집 '해인의 바다' 발간을 맞아 출판기념회 등 행사를 소화하기 위해 서울에 머무르던 중 박완서 아카이브를 찾았다.

(서울=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17일 낮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마련된 '박완서 아카이브'에 들른 이해인 수녀가 남긴 방명록. 2026.4.18. honk0216@yna.co.kr
이해인 수녀와 박완서 작가의 인연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준비하던 이해인 수녀는 홍보물에 실을 원고를 박완서 작가에게 부탁했다. 평소 그의 문장을 흠모했기 때문.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박완서 작가는 폐암 투병을 하던 남편 호영진씨를 간병하는 와중에도 1천자 분량의 원고를 써 보냈고, "남편이 오늘내일하는데 이걸 썼다"며 생색을 냈더랬다.
같은 해 박완서 작가는 남편과 아들을 떠나보냈고, 마음의 빚이 있었던 이해인 수녀는 자신의 수녀원으로 박완서 작가를 초대했다. 박완서 작가가 겪은 사별의 아픔은 일기집 '한 말씀만 하소서'에 담겼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책에 추천사를 쓰며 교류를 이어갔다. 다만 박완서 작가는 이해인 수녀가 부탁한 마지막 추천사는 쓸 수 없었다.
이해인 수녀는 "제가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라는 산문집을 내게 됐고 박완서 작가가 추천사를 써주시기로 했었다. 그런데 책이 4월에 나오는데 그해 1월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생전에 써주신 편지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완서 작가 맏딸이자 수필가인 호원숙씨와 김수진 서울대 중앙도서관 기록문화유산팀장의 부축을 받으며 서울대 중앙도서관 '박완서 아카이브'로 이동 중인 이해인 수녀의 모습 [이해인 수녀 측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할 때 2008년 대장암 투병을 하던 이해인 수녀를 만나러 박완서 작가가 부산에 오간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해인 수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항암 치료를 받으니 밥을 안 먹게 된다'고 했더니 박완서 작가가 암에는 흰살생선이 좋다며 도미 조림을 여러 번 사주셨다"며 "그때 저보고 절대 먼저 가면 안 된다고 그러시다가 당신이 먼저 가셨다"고 했다.
그는 "저를 굉장히 아껴주시고 연예인 얘기도 하고 큰언니처럼 교감을 나눴는데 먼저 돌아가시니 너무 허전하다"며 "박완서 작가는 저에게 든든한 '빽'이었다"고 회상했다.
박완서 작가가 타계할 당시 가장 좋아하는 고인의 작품으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꼽았던 이해인 수녀는 15년이 지난 지금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오는 고인의 작품으로 '나목'을 골랐다.
이해인 수녀는 "작품의 모델이 된 박수근 화가도 그렇고 저도 태어난 곳이 강원 양구군"이라며 "나목은 박완서 선생님 개인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민족의 역사다. 또 선생님의 등단 작품이라 마음이 헤아려져 애정이 더 간다"고 말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기록문화유산팀이 개교 80주년과 박완서 작가 타계 15주년을 맞아 조성한 '박완서 아카이브'는 당초 이달 말까지 전시될 예정이었지만, 관람객 발길이 이어지면서 전시 기간이 2개월 연장됐다.

이해인 수녀와 박완서 작가가 생전 주고받은 편지 [서울대 중앙도서관 기록문화유산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onk02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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