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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개헌', 제대로 빛을 발할지 걱정하는 시선도
새로운 시대 열기에 초점 맞춰 후속 개헌 바통 이어가야

(나주=연합뉴스) 조남수 기자 =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50일 앞둔 14일 전남 나주시 영산강체육공원에서 시민들이 기표 도장 마크 형상으로 조성된 유채꽃밭을 거닐며 봄기운을 만끽하고 있다. 2026.4.14 iso64@yna.co.kr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선임기자 = 지금의 헌법은 1987년 민주화 운동에 힘입어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골자로 개정된 뒤 39년 동안 개정 없이 유지됐다. '1987년 체제' 헌법은 역사적 사명을 다해가고 있다.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헌법이 제정된 이후 모두 9차례 개정됐지만, 민주화 이전에는 '사사오입 개헌', '3선 개헌', '유신 헌법' 등 독재정권이 집권 연장 수단으로 삼는 일이 잦았다. 9차 개헌 이후에도 시도는 있었지만 제대로 손대지 못한 헌법은 이제 현실과의 간극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동해 기자 = 우원식 국회의장이 3일 국회 집무실에서 발의를 앞둔 헌법개정안을 들고 제정당 원내대표들을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6.4.3 [공동취재] eastsea@yna.co.kr
역사적 과제로 남아 있던 개헌을 이루기 위해 국민의힘을 뺀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6당 의원 187명은 지난 3일 부마 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에 수록하고, 계엄 선포 국회 통제 강화와 국가 균형 발전 의무 등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우원식 국회의장과 발의에 참여한 여야가 단계적 개헌의 첫발을 뗀 것이다. 우 의장은 "한 줄이라도 바꾸는 것으로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많지만 합의 가능한 부분부터 착수하는데 방점을 찍은 셈이다.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면 6·3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제1야당이 반대하고 있어 최종 통과가 이뤄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개헌 투표 실시에 대비해 세계 각국에 있는 한국 공관에서 재외국민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채비에 나섰다.

(서울=연합뉴스) 이동해 기자 = 여야 의원 187명이 발의한 '대한민국헌법 개정안' 공고안이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박물관 기획전시실에 1975년부터 2014년까지 국회 본회의장에 설치됐던 휘장이 전시돼 있다. 2026.4.6 eastsea@yna.co.kr
이처럼 개헌을 위한 절차가 진행되는데도 정작 국민들의 관심은 높지 않은 편이다. 개헌 국민투표 실시에 대해 찬성 의견이 다수라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긴 하지만, 개헌안에 대통령 4년 연임제나 대선 결선투표 등과 같은 민감한 이슈보다 이견이 크지 않은 사안들로 채워진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최대 관심사로 급부상하고, 지방 권력을 구성하는 지방선거와 미니 총선으로 불리는 재보선이 겹치면서 국민적 관심도 분산되고 있다. 개헌 논의가 다른 정치적 이슈를 대부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여겨지던 상황과도 대비된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한 시민단체 대표는 국민투표와 지방선거 동시 추진이 국민적 토론과 숙의를 약화하고 개헌을 '곁다리'로 전락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역사적 개헌'이 제대로 빛을 발할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헌법은 정치·사회·인권을 규율하고 국가 권력을 통제하는데 있어서 다른 어떤 법보다 높은 위상을 가지는 국가 최고 규범이다. 규정과 실제 권력 현실이 일치하지 않은 일부 국가의 '무늬만 헌법'과 달리 한국 헌법은 두 명의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릴 정도로 '살아있는 헌법'이다.

오랫동안 성사시키지 못한 헌법 개정의 물꼬를 트는 것은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국민적 지혜를 모으는 과정은 더 중요하다. 시대착오적 비상계엄을 막고 내란을 극복하는 저력을 보여준 시민들의 민주주의 수호 의지가 개헌의 공간도 열어준 것 아닌가?
개헌의 문이 열리면 통치 체제나 정부 구조 개편, 안보 환경 변화에 따른 새로운 외교·통일 비전, 국민 생활 향상을 위한 기본권 확장, 국제사회에서의 책임과 역할 등 수두룩하게 쌓여있는 과제들을 치열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반영해 나가야 한다.
단계적 개헌의 경우는 첫 단추를 꿴 뒤 정치적 대립을 넘어서지 못해 주저앉으면 '짓다만 집'이 될 수 있다. 이번 1차 개헌이 이뤄지면 사회 각층의 의견수렴과 치열한 토론의 장을 열어 후속 개헌으로 바통을 이어가야 '완성된 집'을 지을 수 있다.
특정 세력의 일방적 추진이나 정치적 이해타산을 앞세운 개헌은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 없다. 그동안에는 독재자의 권력욕이나 민주주의 열망이 개헌을 추진했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1987년 체제' 업그레이드 여정이 목적지에 닿기 전에 길을 잃으면 또 다른 '미완의 체제'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h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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