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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스캔들' 폭로한 얀 빌럼 판흐루닝언 교수 이메일 인터뷰
"순위 때문에 대학이 시스템을 악용…전 세계 학자들 인식 변해야"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수현 이의진 이율립 양수연 기자 = "논문에 기재되는 소속이 돈으로 거래되는 가치가 되었지만, 규제는 여전히 허술합니다."
이른바 '사우디 스캔들'의 실체를 학계에 처음으로 공론화한 얀 빌럼 판흐루닝언(Jan Willem van Groenigen) 네덜란드 바헤닝언대 교수는 7일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비판했다.
토양학 연구자인 판흐루닝언 교수는 이 분야를 대표하는 글로벌 학술지 '지오더마(Geoderma)'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글로벌 학술기업 클래리베이트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HCR) 명단에 2018년부터 줄곧 이름을 올린 석학이다.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대학이 7만 유로(약 1억원)를 제안하며 '글로벌 학술 데이터베이스에 자교를 소속처로 병기해 달라'고 은밀히 요청한 것도 바로 그의 학문적 영향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판흐루닝언 교수는 제안을 거절했고, 이를 폭로하며 전 세계 학계에 연구 윤리 붕괴의 민낯을 알리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 연구자 소속을 돈으로 거래…연구 윤리 위기감에 폭로
판흐루닝언 교수는 2023년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동료 학자를 통해 자신에 받은 것과 비슷한 제안이 유럽 학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네덜란드 학계 내부에서도 이 문제가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위기감에,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나 역시 그런 메일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그의 고백 이후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El Pais)'의 심층 보도가 이어지면서, 사우디 주요 대학들이 대학 랭킹을 끌어올리기 위해 해외 저명 연구자들을 무차별 매수했다는 의혹의 실체가 드러났다. 실제로 판흐루닝언 교수와 같은 대학의 한 학자는 사우디 대학으로 소속 조작 대가로 14만6천 유로를 챙긴 사실이 적발돼 중징계를 받았다.
내부고발이 부담스럽지 않았냐는 질문에 판흐루닝언 교수는 "잠재적인 부담이나 엇갈린 반응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나는 과학적 부정행위에 맞서 분명하게 목소리 내는 것에 익숙하고, 명백한 부정행위 사례로 보였다"고 했다.
그는 편법적인 '다중 소속' 행위를 막을 실질적인 방어막이 없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판흐루닝언 교수는 "연구자가 실제로는 한 기관에서만 연구를 수행했더라도 해당 논문이 두 기관 모두의 성과로 산정되는 것을 막을 실질적 장치가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또 편법적인 다중 소속 기재가 이른바 '부당한 저자 표시'와 근본적으로 같은 문제라고 말했다. 실질적 기여가 없는 사람이 저자로 이름을 올려 논문 성과를 가로채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질적인 학술 활동이나 교류가 없는 기관을 논문에 소속으로 올려 랭킹 산정에 이용하는 것 역시 연구 윤리 위반이라는 의미다.

[바헤닝언대 홈페이지]
◇ "대학 랭킹 압박이 근본 원인…질적 평가로 바뀌어야"
판흐루닝언 교수는 이 거대한 스캔들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대학과 과학자들의 순위를 매기는 경향", 즉 대학 랭킹을 지목했다. '영향력 지수'가 높은 학술지에 논문을 많이 실어야만 한다는 학계의 압박감과 이를 대학 평가에 직결시키는 시스템이 낳은 편법이란 것이다.
그는 "압박이 존재하는 한, 대학이 시스템을 악용(game the system)하려는 유인은 항상 존재할 것이며, 사우디 스캔들은 수많은 편법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대학가에서 빚어진 '학술 용병' 논란 역시 시스템 편법적 역이용의 또 다른 형태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판흐루닝언 교수는 단순한 징계나 감시망 강화만으로는 진화하는 '꼼수'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소속 기재 내역을 깐깐하게 검증하는 것이 1차적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글로벌 대학 순위에 목매는 근본적인 압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제2, 제3의 학술 용병 논란은 계속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궁극적으로 정량 지표 위주의 평가를 지양하고 연구의 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2012년 학계에서 자발적으로 등장한 '연구평가에 관한 샌프란시스코 선언(DORA)'을 언급했다. 이는 논문이 실린 저널의 위상 대신 연구의 실질적 내용을 평가하자고 촉구하는 국제 선언이다.
판흐루닝언 교수는 규범적 선언 이상의 행동도 촉구했다. 그는 "전 세계 대학들이 이에 진심으로 동참하고, 나아가 연구자와 학계 리더들의 실질적인 인식 변화를 끌어낼 때만 비로소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see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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