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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돈줄 묶고 '세계 랭킹' 강조…'학술 용병' 부추기는 환경(종합)

입력 2026-04-03 12: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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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석학들, '모셔야' 겨우 오는데…대학들 "그럴 돈이 없다"


연 30억원 주며 최우수 인재 2명 유치?…정부당국 탁상행정 지적도




대학교 (PG)

[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박수현 이의진 이율립 양수연 기자 = 대학들이 학술 성과를 위해 외국 학자들의 이름표만 빌려오는 이른바 '학술 용병' 논란의 근본적 배경에는 17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 기조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의 재정 지원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은 말라가는데 돈줄을 쥔 정부가 '글로벌 랭킹' 성과를 강조하자, 비싼 몸값의 석학을 초빙하는 대신 저비용 고효율의 '다작' 연구자를 택하도록 부추긴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비판이다.


◇ "3배는 줘야 하는데"…유치전 허덕이는 대학들


3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대학들이 글로벌 석학 유치전에서 가장 고전하는 부분은 단연 인건비다.


서울의 한 사립대 연구처 인사는 "논문 잘 내는 석학은 기존 교원 급여의 최소 3배는 줘야 하는데 대학엔 그럴 돈이 없다. 결국 겸임(Joint Appointment) 형태로 전임교원의 50% 혹은 25%만큼의 인건비로 데려왔다가 몇 년 뒤 보내는 식"이라고 말했다.


기획 업무를 맡아본 서울대의 한 교수도 "해외 학자를 영입하려면 거처나 적응 문제도 세심하게 지원해야 한다"며 "뒷받침할 재정이 부족하다 보니 들어왔다가도 몇 년 머무르다 훌쩍 떠나버리기 일쑤"라고 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2009년 이후 17년간 이어진 정부의 등록금 동결 기조 속에서 자생적 재원 마련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의 연구비 지원은 사용처가 엄격히 제한된 탓에 고액의 인건비와 정착 지원금은 대부분 대학의 자체 수입인 등록금으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등록금 수입은 반토막 난 수준"이라며 "교육과 연구라는 본연의 업무 재원인 등록금이 계속 동결되니 구조적 문제가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대학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등록금 인상을 시도했으나 학생에게 재정 부담을 전가한다는 강한 반발 속에 큰 폭으로 올리진 못한 상태다.


◇ "애국심 호소? 한국인도 대우 좋은 美·中으로"


대학들 사이에선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할 정부의 석학 유치 지원 사업조차 글로벌 학계의 '시장가'와는 동떨어진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과학기술 인재 확보를 위해 신설한 '브레인풀+ 기관 유치형' 과제의 경우, 해외 우수 연구팀 영입을 위해 연간 30억원을 최대 5년간 지원하면서 '최우수 인재 2명 이상 유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해외 학계가 선도하는 첨단 분야에서 국제 협업 필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이미 각 대학에 집행된 기존 연구비에 더해 인건비를 추가로 보태주겠다는 취지다. 지금까지의 연구비만으로는 글로벌 경쟁 압박 속 우수 인재 유치가 쉽지 않다는 대학 등 학술기관의 사정을 고려해 마련한 공동연구 장려금이다.


하지만 해당 정책의 수요자인 대학들은 취지와 별개로 지원금액 규모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서울 한 사립대는 사업 소식을 전해 듣고 즉각 참여를 결정했다가 보류한 상태다. 연 30억원으로는 석학 2명의 몸값과 체류비, 연구실 구축 등 각종 부대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대학 연구처 담당자는 "연 50억 정도여야 해볼만 하다는 판단"이라며 "정부도 글로벌 인재 유치 단가에 대한 현실적인 답을 내놓지 못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과거엔 한국인 학자면 애국심에 호소해 데려올 수 있었지만 지금은 국내 이공계 연구자들도 대우가 좋은 미국·중국으로 향한다"고 했다.


대학가의 이러한 자조적 반응은 고등교육을 홀대하는 재정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지난해 9월 교육부가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 2025'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고등교육 1인당 공교육비 지출액은 약 2천만원으로 OECD 평균의 68.6%에 불과해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see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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