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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안기부 시절 포상 조사…'안보 기여' 고문기술자 등 대상
밀실 조사에 '제식구 감싸기' 우려도…"행안부가 컨트롤타워 맡아야"

[국정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경찰에 이어 국가정보원도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 고문과 간첩 조작의 공로로 포상을 받은 수사 관계자들의 서훈을 취소하기 위한 전면 조사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1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은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래 직원들에게 수여된 훈·포장 등의 공적 사유에 대한 전수조사에 최근 착수했다.
국정원은 서훈 취소 대상자가 추려지는 대로 국무총리실에 보고하고 행정안전부에 취소를 요청할 계획이다. 현행 상훈법과 정부표창규정에 따르면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훈·포장과 표창은 취소할 수 있다.
경찰도 고문과 간첩 조작의 공로를 인정받아 수여된 상훈을 취소하기 위해 지난달 초부터 1945년 창설 이후 경찰관이 받은 훈·포장과 표창 등 7만여개를 전수조사 중이다.
2018년부터 행안부가 '거짓 공적'을 이유로 서훈을 취소한 고문·간첩 조작 가담자 62명 중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소속은 28명이다. 1980년대 '납북 어부 간첩조작 사건' 등 8개 사건이 서훈 취소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중정과 안기부가 군사정권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른 점을 감안하면 너무 적은 규모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69회 국무회의 안건록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실제 중정이 창설된 1961년부터 노태우 전 대통령이 퇴임한 1993년까지 국무회의에 제출된 '영예 수여 내역'을 모두 살펴본 결과, 고문 가해자들을 대상으로 무더기 포상이 이뤄진 기록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1969년 9월 12일에는 "구주(유럽)와 일본을 통한 북괴 대남 적화 공작단 사건을 수사하여 관련자 김규남 외 18명을 검거·송치함으로써 국가안전 보장에 기여했다"며 중정 관계자 10명에게 훈·포장이 수여됐다. 박정희 정권 시절 대표적 공안조작 사건으로 꼽히는 이른바 '유럽 간첩단 사건'이다.
박노수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김규남 민주공화당 의원은 동베를린에서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지령과 공작금을 받아 간첩 활동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1972년 처형됐다. 법원은 43년 만인 2015년 중정의 고문 사실을 인정하고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으나 가해자들의 서훈은 아직 유지되고 있다.
수사를 지휘했던 신모 5국장과 박모 수사단장은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보국훈장 수훈자는 국가유공자 신청 자격이 주어져 자녀 교육 지원과 취업 가점, 주택 특별 공급 등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당시 전기고문과 구타 등을 앞장서 실행하고 역시 보국훈장을 받은 수사관 모모씨는 이후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 다수의 간첩 조작 사건에도 개입한 인물로 거론된다. 모씨처럼 어렵게 정체가 드러난 '고문 기술자' 상당수도 서훈이 유효한 것으로 파악됐다.
'의문사 1호'로 꼽히는 1973년 고(故)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 사건에 직접 개입한 인물로 지목되는 주무수사관 차모씨는 그로부터 1년여 전 받은 보국훈장을 유지하고 있다.
법원은 2006년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차씨를 비롯한 조사관들이 3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최 교수를 고문했다"며 "가혹행위에 따라 의식불명 상태에 이른 최 교수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오인한 차씨 등이 건물 밖으로 던졌을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고인의 아들인 최광준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연합뉴스에 "(고문 가해자들에 대한) 서훈 취소가 필요하다"며 "진실을 밝혔으면 그에 따른 결과도 당연히 따라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5년여에 걸친 서울 남산 예장자락 상부 재생사업 공사가 끝나고 녹지공원이 생겼다.
사진은 3일 서울 중구 남산 예장자락 사업현장의 '기억6'. 과거 이 장소에 있었던 옛 중앙정보부의 지하 고문실을 재현했다. 2021.2.3 kane@yna.co.kr
시민사회에서는 국정원의 뒤늦은 전수조사를 환영하면서도 '밀실 조사'로 흐를 수 있다며 경계하는 분위기다. 정보기관 특유의 폐쇄성과 수직적 위계질서 탓에 '제 식구 감싸기'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국정원은 연합뉴스에 "재심 무죄 판결 등으로 추가 서훈 취소 검토가 필요한 사례들을 면밀 점검·조치해나갈 계획"이라면서도 정확한 조사 범위와 기준 등은 밝히지 않았다.
2018년 국가폭력 가해 공무원들의 서훈 취소를 이끈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선배들 잘못을 바로잡는 게 쉬운 일이겠느냐"며 "어렵게 온 기회인데 수시관마다 제각각 조사하고 변죽만 울리다가 소리소문 없이 끝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상훈 취소를 경찰과 국정원 등 각 수사기관의 자율에 맡길 게 아니라, 서훈을 담당하는 행안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별도 심사기구를 꾸리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최 변호사는 "기관이 요청한 서훈만 취소할 게 아니라 행안부가 나서서 공적 조서를 자체적으로 다시 점검하는 유기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며 "행안부가 자체적으로 조사하기 어렵다면 민간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각 기관에서 추천한 서훈을 행안부가 국무회의에 상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훈 취소도 추천 기관이 결정할 부분"이라며 "서훈 취소에 대한 제도상 안내 등 지원하는 역할을 넘어 총괄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TV 제공>>
away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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