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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건축환경연구소 광장제공, 사진가 김중만 작품
지난 칼럼에 이어 국민주 공모로 1988년 창간한 신문에 주주로 참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새 신문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도깨비 같은 전화를 받는 일은 뜸해졌다. 나는 문화부 기자의 취재 대상이 아니라 새 신문의 주역 그룹에 들어간 덕분에 나에게 의견을 묻거나 인터뷰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상대적 박탈감이랄까 하여튼 상대방이 높아짐으로써 상대적으로 나는 지위가 낮아진 셈이다.
대신에 명칼럼니스트로써 깃발을 휘날리는 '그'(직전 칼럼에 언급한 인간 도깨비 여기자)의 글을 읽으며 멀리서나마 혼자 옛일을 추억하곤 했다. 그러다가 또 한참 세월이 지나고 이제 그의 기명칼럼 앞에는 얼굴 사진이 함께 실리게 됐다.
세월이 그렇게 지났는데도 글발은 예전보다 더 장난이 아니었다. 누군가도 이야기했듯이 '간단명료하고 정곡을 찌르는 글'을 사진과 함께 읽는 일은 이제 일주일에 한 번씩 느끼는 혼자만의 즐거움이 됐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정말 오랜만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가 신문사를 그만두고 마포 어딘가에 후배들이 오피스텔을 얻어 집필실이란 걸 마련해주었다는 거였다.
그날 저녁 당장 달려가 봤다. 신문사를 그만뒀다는 소식이 좀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후배 두 사람이 방을 지키고 있었다. 명호라나 명숙이라나 그런 이름들이었는데 이들이 집필실 지킴이라고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서 현관 초인종이 울리자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나 뛰어나가며 "충-성"을 외치는 것이다. 나는 여자들이 이러는 것 처음 봤다.
그리고는 넷이서 밖으로 나가 마포 어디 골목 속의 술집에서 소주잔이 돌려졌다. 몇 순배가 돌아가자 말투와 어조와 이야기들이 슬슬 과격하게 바뀌기 시작하더니 이내 자기들의 랭귀지로 방언을 시작하는 것이다.
잘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세상 대부분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거론되며 비겁한 놈으로 매도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하 도깨비들도 새끼를 치는구나.
이들이 한의사로 위장한 새끼 도깨비들이로구나….
나는 그제야 알았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 유인태가 앞서 언급한 인간 도깨비 여기자를 집으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유인태가"라고 말해서 미안하지만 - 이래 봬도 조용히 말하거니와 유인태, 김근태, 박원순, 손학규, 노회찬, 정운찬, (아, 사형수 이철도 있다) 이들이 모두 내 후배들이다.
그리고 유인태는 가장 귀여운 후배다.
하여간 이 연약한(?) 인간 도깨비 여기자가 유인태를 빈손으로 돌려보냈다는 사실에 나는 다시 그 옛날 추억이 되살아났다. 오랜 세월 겨우겨우 봉합된 마음의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것처럼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도깨비에게 홀린 당시의 느낌.
어지간한 남자라 해도 높은 사람이 무슨 부탁을 하겠다고. 그런 식으로 찾아오면 아마도 현관 바닥에 꿇어앉아 손등에 입 맞춘다고 할 것이다. 하다못해 구두 콧잔등에라도 입 맞추며 충성심을 전해달라고 했을 텐데.
"그냥 끝까지 언론인으로 남는 사람도 있어야지"라고 했다던가? 아니 "기자는 기자여야지."라고 했다던가?
정말 듣기 아름다운, 눈물 나는 이야기였다. 인간 도깨비 기자가 작성한 '자장면과 삼판주' 칼럼에 나오는 나의 돌아가신 은사처럼 '은퇴는 은퇴여야지'라며 건교부나 서울시의 어떤 자문위원회, 심사위원회에도 안 나가시던 어른은 우리 사회에 드물었다.
오죽하면 일부 젊은 교수들이 부교수만 되면 어디 위원회 같은데 끼어 보려고 교수실은 비워둔 채, 여러 군데 줄을 대고 명함을 돌리는 시대다.
3공, 5공 때는, 최근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언론인 망국'이란 말이 돌아다닐 정도로 기자 출신들이 나라를 들었다 놨다 했다.
그러고 또한 삼 년이 지난 시기에 그 후배들이 무슨 시대적인 사명감으로 이상한 학교를 열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물어물어 찾아와 보니 그때 마포에서 본 세 도깨비가 수십 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더 알찬 논리로 무장하고, 더 세련된 기술로 위장하고, 더 무지막지한 번식력으로 그 세력을 확장할 것 같은 낌새였다.
아니 이들이야말로 총보다 무섭고 칼도 두렵지 않다는 '펜'을 수십 개라도 품속에 감추고 다니는 무서운 족속들인데 이렇게 많이 모여 있으니 어찌 무슨 일인들 못 하겠는가?
말하자면 이것은 나에게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였다.
아무쪼록 당시 나는 이 이상한 학교가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라가 돼 큰일들을 이루기를 바랐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선 그 대운하부터 못 하게 해주시고, 더 나아가 우리 국토 다 말아먹는 건설동맹의 마피아들을 모두 혼쭐내어 쫓아 주세요."
손오공처럼 머리털을 뽑아 입김을 휙 불면 똑같은 원숭이가 3천 마리 태어나듯이 이 학교 학생 수가 숫자로도 번성하시길 바랐다.
"그 졸업생이 이 나라를 모두 뒤덮을 만큼 창궐하여 그 떼거리가 왜구보다도 공산 오랑캐보다도 더 넘쳐나서 독도 이름도, 동해 이름도 되찾아주시고, 고구려 이름도 제자리 찾게 해주세요. 그리하여 한·중·일을 통일하고 (문화적으로 말이요) 제국주의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리나라가 세계 11위에서 세계 4위가, 아니 기왕이면 1위가 되게 해주세요."
지금은 인터넷과 SNS인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세를 불릴 수가 있다고 들었다. 또 그래서 한국의 건축문화가 세계의 건축문화를 계도하게 해달라는 희망도 담아봤다.
"제가 설계를 맡아있는 옥인동 재개발 계획도 좀 잘되도록 도와주세요. 한국에서 새로운 주거모델을 만든다고 하니까 혼자서 너무너무 힘이 들어요. 그리고요 춘향이, 장금이, 논개, 사임당, 난설헌, 황진이, 매창, 홍랑 등의 매력 있는 복제인간도 많이 만들어 여러 곳에 철철 넘치게 해주세요. 모두들 용비어천가를 부른다고 나도 따라 부르는 건 아닙니다. 나는 오히려 노랠 부른다면 정읍사를 부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읍사가 절로 나온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인간 도깨비 여기자는 한겨레신문 김선주 논설주간이다.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 독립기념관·코엑스·태백산맥기념관·국립국악당·통일연수원·남양주종합촬영소 등 설계.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삼성문화재단 이사, 서울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 등 역임. ▲ 한국인권재단 후원회장 역임. ▲ 서울생태문화포럼 공동대표.
* 자세한 내용은 김원 건축가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꿈을 그리는 건축가', '못다 그린 건축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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