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불편하시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독일은 정보기관에 깊은 트라우마를 가진 나라다. 나치 정권의 게슈타포는 정보와 수사, 체포와 구금을 한 손에 거머쥔 억압기관이었다. 패전 뒤 서독은 나치와 단절하기 위해 정보기관의 권한을 분산·제한했다. 국내 방첩은 연방헌법수호청(BfV), 국외 정보는 연방정보국(BND)에 맡겼다. 동독은 달랐다. 비밀경찰 슈타지를 통해 직장과 학교, 가정까지 내밀하게 들여다봤다. 1990년 통일 독일은 슈타지를 해체했고, 서독의 정보기관 체계를 계승했다.
독일 메르츠 정부는 지난달 내각 회의에서 BND와 BfV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제한적이나마 '행동하는 정보기관'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해외 사이버 공격자의 시스템에 침투해 정보를 빼내는 데 그치지 않고, 데이터 삭제나 공격 시스템 교란·무력화 등 적극적 방어에 나서는 것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수색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대량 정보 분석도 확대하기로 했다. BfV에는 중대한 위협을 막기 위한 방해 조치도 허용된다. 배경엔 러시아가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스파이 활동과 사이버 공격, 허위정보가 뒤엉킨 하이브리드전이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우방국 정보기관에 비해 뒤처진 작전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유럽 주요국도 정보기관의 눈과 귀를 키우고 있다. 영국은 MI5·MI6·GCHQ 등 정보기관이 대규모 데이터와 인터넷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혔다. 프랑스는 외국의 개입과 테러 등에 맞서 디지털 정보수집과 감청 능력을 확충해왔다. 네덜란드 정부도 국내 정보기관 AIVD와 군 정보기관 MIVD가 외국발 사이버 공격에 보다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작전권을 강화하는 법안을 의결·제출했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각종 위협을 추적할 수 있도록 눈과 귀에 손발까지 보태자는 취지다. 대신 의회와 사법·독립기관의 감독 장치를 둔다. 힘을 주되 고삐도 함께 죄겠다는 의미다.
유럽 국가들이 정보기관에 힘을 싣는 동안 한국은 힘을 빼고 쪼갰다. 정보기관의 흑역사는 우리도 가볍지 않다. 정보기관은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으로, 군은 보안사·기무사·안보지원사·방첩사로 이어진 계보가 있다. 정권의 성향에 따라 권한을 축소했다가 다시 강화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정보 수집 기능은 폐지됐고, 대공수사권은 경찰 보안수사국으로 넘어갔다. 12·3 계엄 사태 이후 방첩사도 해체돼 그 기능이 국방방첩본부·국방보안지원단·국방부조사본부 등 3곳으로 이전됐다.
우리를 둘러싼 안보 환경은 녹록지 않다. 북한은 대남·해외 정보수집과 공작을 담당하는 정찰정보총국의 직능과 임무를 확대하고 군사정찰·정보첩보 능력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했다. 북한 해킹조직은 국가기관과 첨단기업을 노려 기밀과 핵심기술을 빼내고 있다. 중국발 산업·기술 스파이와 사이버 공격 위협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과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필요하다. 그렇다고 정보·방첩 역량까지 느슨해져선 곤란하다. 정보기관의 힘을 싣느냐 빼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힘을 누가, 어떻게 감시하느냐다.
Copyright 연합뉴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상품 확인하고 계속 읽어보세요!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