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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의 창] 밀정 누명에 총살당한 독립운동가 김 아파나시 삶 재조명

입력 2026-06-05 09: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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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마을,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총살 19년 만에 복권된 고려인 청년혁명가




연해주 항일독립운동 선구자 김 아파나시 선생

[광주 고려인마을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스탈린 대숙청의 희생양이 돼 일본 밀정이라는 누명을 쓰고 총살당한 고려인 독립운동가 김 아파나시(1900∼1938) 선생의 삶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공동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을 통해 스물두 번째 인물로 김 아파나시 선생의 삶과 항일 독립정신을 재조명한다고 5일 밝혔다.


1900년 연해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민족의 현실을 가슴에 품고 성장했다.


그는 1917년 러시아 노령 니콜리스크에서 한인 학생들을 중심으로 청년단체를 조직해 민족해방운동에 나섰고, 이듬해 열린 한인청년학생 전 시베리아대회에서는 중앙위원회 비서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연해주 한인 청년들을 대표해 블라디보스토크 지역 청년 지도자들과 연대하며 해외 독립만세운동 확산에 앞장섰다.


또 러시아어 항일 신문 '학생의 목소리'를 발간해 일제의 침략상을 국제사회에 알렸으며, 블라디보스토크 만세시위에도 참여해 조국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이후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중심인물로 활동하며 한국 독립 문제와 러시아 거주 한인들의 자치권 확보를 위해 헌신했다.


그러나 1935년 스탈린 정권의 대숙청이 시작되면서 김 선생은 "반혁명 세력의 지령을 받아 일본 첩보기관을 위한 간첩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평생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독립운동가였지만 오히려 일본 밀정으로 몰렸고, 결국 1938년 5월 25일 총살당했다.


스탈린 사후인 1957년 11월 19일 소련 정부는 김 선생에 대한 판결이 부당했음을 인정하고 공식 복권했다. 총살된 지 19년 만에 되찾은 명예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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