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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에 다가가는 동유럽, 멀어지는 서유럽…'미군 유럽 거점' 변화 가능성
폴란드·발트 3국·루마니아 등 미군 유치 사활…흔들리는 나토와 EU 위상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유럽이 심상치 않다. 서유럽 중심 안보·경제 질서가 흔들리는 지각 변동 조짐이 감지된다. 약 70년간 유럽 평화의 버팀목이 돼온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와해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유럽연합(EU)도 회원국 간 안보관과 이해 차이로 내부 균열을 드러낸다. 이제 '하나의 유럽'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으로 점점 치닫고 있다. 특히 이념에 따라 완성됐던 유럽 안보 지도가 이제는 미국과의 관계, 대미 기여도, 지정학적 생존을 위한 실리적 관점에 따라 새롭게 다시 그려지고 있다. 유럽의 안보 중심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새 판 짜기의 서막이 열리는 양상이다.

[구글 지도 캡처]
미국의 안보 우산을 벗어나 독자 노선을 걷고 싶지만 실제 군사·경제 역량은 쇠퇴 중인 서유럽과, 미국을 향해 앞다퉈 러브콜을 보내며 충성도를 경쟁 중인 '동유럽 친미 블록'의 행보가 뚜렷이 대비된다. 이런 현상은 미국과 소련 간 냉전 시대에 익숙했던 기성세대에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상전벽해다. 동유럽 대부분은 소련 연방의 일원이었거나 영향권에 있던 위성 국가들이었고, 반대로 서유럽은 소련의 서진에 맞서는 미국의 맹방이었기 때문이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라는 국제 정치의 금언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 역사적으로 침략과 식민 지배를 겪은 나라들의 민도를 보면 이런 현상의 본질을 읽어내고 대처하는 능력이 선천적으로 부족했다.
무엇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세계전략 수정과 최근 이란 전쟁 여파는 유럽 정세의 변화를 가속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유럽의 나토 우방들이 방위비 지출을 늘리지 않고 자국 방위 비용을 전가한다는 시각을 보여왔다. 이런 갈등 상황에서 터진 이란 전쟁 기간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주요 동맹들이 미국의 지원 요청을 사실상 거절하면서 관계는 더욱 악화했다. 배신감을 토로한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높은 유럽을 대신해 피를 흘려줄 필요가 없다며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군 철수, 스페인의 나토 탈퇴까지 압박할 정도다. 미국의 분노는 일단 주독 미군 병력 중 5천 명을 다른 곳으로 재배치하겠다는 발표로 가시화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를 기다렸다는 듯 동유럽 친미 국가들 사이에선 미군 유치 경쟁이 불붙었다. 옛 소련 연방국이거나 냉전 시절 나토와 맞서던 바르샤바조약기구(WPO) 소속이었던 나라들이다. 발트 3국인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를 비롯해 폴란드, 루마니아 등은 러시아의 위협에서 벗어날 최선의 길이 미군 주둔이라고 판단한다. '미군=생존 보증수표'라는 등식을 믿는다. 특히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주독 미군 감축 움직임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미군 추가 병력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공표했다. 이미 1만명 넘는 미군을 더 늘려 독일을 제치고 유럽의 미국 군사 거점이 되려 한다. 지정학적 위치 탓에 독일, 소련 등의 침공을 겪어야 했던 뼈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러자 경쟁국 리투아니아가 강력한 승부수를 던졌다. 나토 회원국 가운데 처음으로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하기로 한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 기뢰 제거 작전 등에 선도적으로 참여해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미국의 간택을 받겠다는 전략이다. 이란의 반발이나 위협은 아예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앞서 미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주요 동맹국에 기뢰 제거 작전 참여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이들 나라를 배신자로 부르며 나토 탈퇴까지 거론했다. 인구 300만 명이 안 되는 소국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왔고, 대만대표부도 설치했다. 미국의 적인 중국, 러시아에 정면으로 맞서며 미국과 함께하겠다는 의도를 선명히 드러낸 것이다.
흑해 안보 요충지 루마니아도 미국이 사용하는 자국 내 나토 기지를 유럽 최대 규모로 확장하려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불가리아 역시 기지 확충에 나섰다. 두 나라는 서유럽 국가들이 거부한 미국 군사 자산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의 주요 군사 목표 중 하나가 흑해에서의 러시아 견제인 만큼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흑해에서 미국의 양대 우군 지위를 굳힌다는 생존 전략을 구사 중이다. 그리스, 핀란드, 스웨덴의 행보도 주목된다. 그리스는 전통의 우방인 터키, 스페인과 관계가 삐걱대자 미국의 해군기지 확장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며 지중해의 미군 거점으로 급부상했다. 스페인 주둔 미군은 철군 시 그리스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오랜 중립국 지위를 버리고 나토에 가입한 핀란드와 스웨덴은 군사기지 사용권을 미국에 내줬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념으로 묶였던 어제의 친구들은 사이가 멀어지고 있다. 이란 전쟁은 관계 악화의 결정타였다. 미국과 두 차례 세계대전을 함께 치른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과 미군 거점 독일은 "미국의 전쟁에 휘말리기 싫다"며 발을 뺐고, 미국은 이들을 '배신자', '안보 무임승객'으로 규정했다. 이 틈을 과거 옛 소련과 러시아에 시달렸던 나라들이 파고들고 있다. 과거 강대국 간 전쟁에 유린당하고 소련의 압제에 시달렸던 동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힘'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라 믿고 미국이 요구한 방위비 증액과 파병 요구 등을 충실히 따르기 시작했다. 나토와 EU는 그 위상과 영향력 변화가 불가피하다. 유럽 안보 지형도가 이란에서 진행 중인 '실전'에서 누가 미국의 편에 섰느냐에 따라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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